브런치북 불의 나비 10화

제3막 후천적 속성(3)

불의 나비 10화

by 매화연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했다. 주위에 키 높은 나무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어릴 때부터 속성 제어 연습을 하던 그곳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기존에 차고 있던 은색 팔찌를 뺐다.


속성 제어 훈련은 간단하다.


속성이 내 힘으로 제어가 불가해질 때까지 사용한다. 그리고 제어한다.


나의 힘으로 제어가 되지 않을 때까지 속성을 사용하려면 내가 쓰는 속성을 받아줄 상대가 필요했다. 어릴 때는 박 협회장님이 내 속성을 받아주셨지만, 더 이상은 박 협회장님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면서 훈련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깟 훈련 하나 마음대로 안 된다고 찡찡대던 어린애가 아니니까. 이제는 아픔도 삼킬 줄 알아야 하는, 힘듦을 참을 수도 있어야 하는 어른이니까.


특경부 본부 밑에 위치한 훈련장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훈련장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면 고스란히 본부로 올라가는 진동과 소음에 우리 여동생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잔소리를 퍼부으실 게 분명하잖나.


나는 구석에 놓여 있는 평소 훈련에 사용하던 큰 바위를 들고 왔다.


“바위를 바꿀 때가 됐나. 조금만 있으면 깨지겠는데…….”


처음 바위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분명 자국 하나 없는 반듯한 바위였는데,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지금은 번개 속성으로 인한 흠집이 무수히 새겨져 있었다.


간단히 몸을 풀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본격적으로 속성 제어 훈련에 들어갔다. 나는 바위에 속성을 가하며 점차 속도를 높이고 힘을 더해 제어가 되지 않을 때까지 속성을 사용했다.


차악! 착! 노란색의 섬광을 내는 번개 속성이 마모된 바위에 새로운 흠집이 조금씩 생겨났다.


훈련 중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언제 속성 제어가 불가능해질지 모르기에 항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끊임없이 속성을 사용해 나아가던 그 순간,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번개에 감전된 듯한 느낌이 팔을 타고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어깨까지 도달하였다.


속성이 제어되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폭주하는 속성을 마주했다.


속성을 받아들인다.


속성을 제어한다.


천천히, 침착하게.


다급할 필요 없다. 흥분하면 안 된다. 멀어져 가는 정신을 꽉 붙잡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속성을…….


손에 머물던 번개 속성이 조금씩 불안정해지더니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속성이 제어되지 않는다.


내 몸이 속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속성이 내 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찌릿한 통증을 참고 바위에 속성을 더 가하기 시작했다.


착! 차악, 착! 노란색의 섬광은 점차 줄어들고 내 휘하에 있는 속성의 힘은 약해져 간다.


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팔이 마비가 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때였다. 거대한 노란빛이 눈에 아른거렸다.


“하아, 하아…… 또 왔네, 저 망할 자식.”


노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존재가 나를 향해 터벅터벅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빛에 휘말려가는 정신을 계속해서 똑바로 붙잡았다.


“야, 이젠 고집 그만 부리고 인정해라. 네가 그렇게 발악하고 부정해도 넌 내 속성이라니까? 더 이상 박 협회장님의 속성이 아니라고. 이 짓도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벌써 이십 년째다.”


거방진 압도감에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고 몸이 짓눌린다. 나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꽉 쥐었다.

“넌 안 힘드냐? 난 힘들다, 이제. 그러니까 우리 화해하고 좀 같이 잘 살아보자고 사이좋게, 엉?”


내가 어떤 수를 써도 절대 자신의 의지를 굳히는 일이 없으리라는 듯 그 녀석이 거칠게 나에게로 걸어왔다.

“아니, 나 싫어할 거면 그냥 오질 마, 인마.”


딱 한 걸음.


나를 집어삼키기까지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녀석이 우뚝 멈춰 섰다. 녀석의 행동에 그만 헛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하, 이게 진짜…… 오냐, 오늘도 어디 한 번 놀아보자.”


크고 작은 스파크가 오가며 나와 나의 속성이 맞붙이 쳤다.


번개와 번개의 싸움. 이 싸움의 승자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같은 속성끼리의 싸움이란 누가 더 크냐에 승패가 달렸으니까. 외적으로만 봐도 나의 몇십 배나 되는 이 더럽게 큰 자식을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거듭하여 느껴지는 허공에 공격을 퍼붓는 듯한 느낌이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다. 사실 이 녀석은 성과 없이 매번 실패가 연잇는 고된 훈련에 미쳐버린 내가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까?


불현듯 스쳐 지나간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공격 하나도 녀석에게 닿지 않으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녀석은 그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다. 내 공격이 다가오면 사라졌다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마침내 녀석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낮게 읊조린 짧은 말이 곧바로 온점을 찍자 문득 박 협회장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시각화가 된 속성을 이기지 못하고 잡아먹혀 버린다면, 정신부터 갉아 먹힐 것이다.’


‘그 말씀은…….’


‘그래, 한번 먹히기 시작하면 절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거지. 그러니 만일 시각화된 속성이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다 싶으면 무조건 바로 팔찌를 착용해야 한다. 괜한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알았지?’


‘…….’


‘어허, 대답.’


‘……예.’


아, 결국 또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비겁한 자식.”


끝내 나는 주머니에 있던 금색의 팔찌를 꺼내 손목에 착용했다. 딸칵, 팔찌가 손목을 휘감자 고통스럽게 밀려오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팔찌의 정 중앙에 박혀 있는 보석이 빨갛게 물들이며 날뛰던 속성을 완벽히 봉인하였다.


“아오, 자존심 상해.”


나는 답답하게 목을 조르고 있는 넥타이를 밑으로 내리며 바닥에 풀썩 누웠다.


“하아……. 이 짓도 한 번만 더하다간 죽겠군.”


깊게 숨을 내뱉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구름 한 점 없이 깊게 잠든 밤하늘에 빼곡히 박혀 수차례 빛나는 별들 속 유난히 약한 빛을 품은 별이 눈에 띄었다. 아주 약한 빛만을 겨우 품고 있는 저 별은 그 미약한 빛마저 금방이라도 곧 꺼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얼마나 더 많은 훈련을 반복하고,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나는 온전히 나의 힘으로 속성을 제어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를 믿을 수 없었다.


“네가 그럼 그렇지. 대체 잘하는 게 뭐냐, 박인혁.”


자연한 한탄이 허공을 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문득 낮고 잔잔히 깔린 풀에 닿은 살갗이 쓰라려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어보니 손등에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속성을 상대하다 나도 모르게 내 속성에 쓸린 건가. 피가 고인 상처가 자신의 존재를 표출하려 욱신거리는 발악을 가볍게 무시한 뒤 다시 바닥에 손을 툭 내려놓았다.


서늘한 밤공기가 새들한 위로라도 건네듯 나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타올랐던 몸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스락 -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풀숲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풀숲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들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소리가 너무 명확했는데.


풀숲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기분 탓이겠거니 의구심을 접고 시선을 다시 하늘로 옮기려던 그 순간.



바스락 -



또 한 번 밀려온 소리가 실려준 확신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리가 난 쪽을 확인해 보니 꿋꿋이 자취를 감추던 소리 발생의 주범이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실군단들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진우를 구하러 갔던 그날, 처음으로 실군단을 마주하여 그들을 처치하였다. 그때는 실군단의 약점인 속성을 사용했기에 금방 실군단을 처치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팔찌가 나의 속성을 강제로 제어하고 있는 상태. 게다가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실군단의 수는 그때보단 적었지만 다른 대원 없이 오로지 나 혼자.


나는 슬며시 뒤로 옮긴 손으로 벨트 뒤쪽에 있는 무전기를 꽉 잡았다. 본부에 연락을 해야 한다. 절대 현 상태에서 스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실군단들을 속성도 없이 나 혼자 처치할 수 없었다.


묘하게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서 무전기를 슬쩍 꺼내 들자마자 얼음 속성의 힘이 깃들어 있는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날아왔다. 슈우욱, 바람을 가르는 화살은 정확히 내 손으로 향했고, 나는 무전기를 놓으며 손을 재빨리 끌고 왔다.


손은 다치지 않았지만 화살이 무전기를 완벽히 관통시켜 무전기가 고장 나버렸다. 처음부터 무전기를 노린 건가.


“……미치겠네, 진짜.”


나는 부서진 무전기에서 시선을 떼고 실군단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한 시간. 팔찌가 속성을 제어하고 있는 한 시간 동안은 속성 없이 실군단에게 맞서야 한다.


속성을 사용하지 못하든 상태가 안 좋든 지금 나 혼자 실군단을 처치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해야만 한다.


실군단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었다. 뭐, 배후는 나중에 이도헌이 알아서 알아내 주겠지. 그런 건 나중에 가서 생각해도 안 늦는다.


복잡한 설명은 다 필요 없다. 현재 내가 할 일은 오로지 하나. 내 눈앞에 서 있는 실군단을 처치한다. 실군단이 협회 곳곳으로 빠져나가면 안 된다.


실군단으로부터 협회와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


그것이, 특경부의 일이니까.


“이제 퇴근해야 하는데 너희 때문에 야근해야 하잖아.”


나는 바닥에 떨어진 고장 난 무전기를 주워 가장 선두에 있는 실군단을 향해 있는 힘껏 세게 던졌다.


“야근 수당은 니들이 챙겨 줄 거냐?”


타격이 꽤 컸는지 무전기를 맞은 실군단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맨 앞있던 녀석이 쓰러지자 뒤에 있던 실군단들이 짧은 당황도 잠시 본격적으로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검과 활은 피하기 수월했으나 문제는 실이었다. 대부분의 실군단이 실을 채찍처럼 사용하였는데 워낙 긴 실이라 피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하, 속성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실을 팔로 막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번개 속성의 잔해와 함께 따끔거리는 통증이 팔에 머물렀다.


실의 자국이 하나둘 빨갛게 새겨졌다. 약한 얼음 속성 탓에 하늘색의 빛도 실같이 흐릿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실군단의 공격을 피하며 주위를 살폈다. 더 이상 맞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픈 건 둘째치고 안 그래도 속성한테 져 긁힌 자존심이 몹시도 상했다. 공격을 막을 것이 필요했다.


막을 것……. 나뭇가지는 화살과 실을 베기에, 검을 막기에 너무 약해. 반격은 못해도 되니 적어도 공격을 막을 수만 있어도…….


오호라.


문득 눈에 들어온 실군단의 검이 어찌도 탐스러워 보이던지. 내가 무전기를 잘 던졌네.


나는 앞서 쓰러진 실군단이 떨어트린 검이 있는 쪽으로 조심히 달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신속하게 잡았다. 얼음 속성의 실로 이루어진 검날이 자신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실된 실지 검날이라 생각하는 것인 마냥 빛을 뽐내었다.


검의 차가운 한기가 온몸 곳곳에 퍼져 나아갔다.


아무래도 실군단의 검이니 직접 검을 사용해서 반격하는 것은 영 찜찜했다. 그래, 방어라도 할 수 있으니 망정이지.


날아오는 화살과 실을 베고 휘둘러지는 검을 마구 튕겨냈다. 겨우 이 정도의 실력으로 감히 특경부 대원인 나를 상대한다고? 하 참,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순탄히 검을 사용해 방어를 이어가다 갑작스레 오른팔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저릿한 떨림을 담은 오른손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점차 나아지고 있던 통증이 훈련이 끝난 직후보다 더 심해졌다.


“하, 진짜…….”


짜증 섞인 한 마디를 나직이 뱉어냈다.'


속성 제어 훈련을 하고 난 뒤 유독 회복이 더딘 날이 가끔 있었다. 그런 날이면 속성을 사용한 팔은 물론이고 온몸까지 번져가는 찌릿한 통증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훈련 직후의 통증조차 무시하고 무리해서 계속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상태가 심히 악화될 수밖에.


바닥에 떨어트린 검을 다시 잡았지만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소용없는 노력을 퍼부으며 검을 더욱 세게 잡았다.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실군단과 맞섰다.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는 실군단의 공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져만 갔다. 통증은 사라질 생각조차 없었고, 팔에는 이미 수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실군단의 검을 사용할 수는 없어 주먹이라도 써볼까, 라며 짧게 스치는 생각은 금세 꺼져갔다. 번개 속성에 지친 손을 직접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 어떤 곳도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못하였다.


팔에서만 느껴졌던 번개 속성의 찌릿한 잔해가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어째 평소보다 통증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점점 손에 감각이 없어진다. 내가 저들의 공격을 제대로 막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숨이 가팔라진다. 애당초 잘 서 있기는 한 건가…….


점차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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