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11화

제3막 후천적 속성(4)

불의 나비 11화

by 매화연

슈우욱! 바로 위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무참히 갈라지는 바람의 비명이 점차 극대화되었다.


고개를 올려 상황 파악을 한 뒤 행동하면 늦는다. 곧바로 스치는 생각과 동시에 이미 검의 손잡이를 꽉 잡은 두 손이 하늘을 향하였다.


“제법이군.”


실군단의 우두머리!


끼기기긱! 검날끼리 마찰하여 내는 파찰음이 귀를 찢어댔다. 어느새 자욱하게 깔린 안개와 갑작스레 나타난 제 주인의 모습에 실군단이 일동 모든 행동을 정지하였다.


“많이 컸네, 박인혁?”


하늘색으로 극히 밝게 빛나는 두 눈에 초승달을 끼우며 기계음이 섞인 낯선 그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날…… 알아?


이미 닳고 닳은 검 하나만으로 하늘에서 퍼붓는 그의 모든 힘을 온전히 받아내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그의 검도 내가 들고 있는 검과 다를 바 없는 얼음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군단의 검이었으나 그가 검을 지그시 누르며 살짝 비틀자 내가 들고 있는 실군단의 검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윽……!”


후들거리는 팔이 조금씩 내려간다. 더 이상 그 어떤 힘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검을 멋대로 가져가서 사용하면 안 되지. 무전기 맞고 쓰러졌는데 무기까지 뺏기다니…… 불쌍한 우리 실군단, 너무 안쓰럽잖나,”


이윽고 그의 발이 바닥에 닿자 그가 검에 자신의 무엄히 한계에 덤비며 극강의 얼음 속성을 검에 휘감았다. 카앙! 세상의 모든 어둠을 쫓아낼 정도로 발광하는 빛과 막대한 힘에 못 이긴 실군단의 검이 결국 부서지며 나는 뒤로 밀려났다.


“나의 귀한 부하가 다쳤는데 어찌 가만 보고 있을 수만 있겠어?”


쾅! 급속히 밀려난 몸이 저 멀리 있던 나무에 크게 부딪치며 굉음을 내었다.


그가 앞으로 팔을 쭉 뻗자 훈련 때 사용하는 바위에 점차 실이 촘촘히 감기며 하늘색의 빛이 극도로 환히 일렁거렸다. 슬쩍 올라가는 그의 손을 따라 허공에 두둥실 뜬 바위는 온전히 그에게 몸을 맡긴 채 그의 명을 받들었다.


“주인 된 자로서 응당 그의 복수를 마땅히 해주어야겠지.”


급속도로 하늘 높이 비행하던 바위의 종착은 내 머리 위였다. 빌어먹을 몸뚱어리는 바위가 머리에 강하하고 있다는 걸 훤히 알면서도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쿠웅 - !



삐이이, 시끄러운 이명이 뇌까지 전달되어 울려 퍼졌다. 머리에서부터 주륵 흘러나오는 뜨거운 액체가 왼쪽 눈을 적시고 턱선에 걸쳐 끝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혈액에 하늘색의 광명이 섞여 있었다.


“고작, 이 정도냐?”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그를 보고 씨익 입꼬리를 올려 보았다. 이명은 지속되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머리는 어지러우며 눈앞이 아찔하다.


“그리고 부하는 개뿔……, 어느 주인이 귀하디 귀한 부하를 전선 한복판에 내몰아? 그거 그냥 죽으라는 거지.”


거친 숨이 그에게 닿아선 안 된다. 애써 올린 입꼬리의 떨림도, 비틀거리는 몸도 들켜서는 안 된다. 이딴 공격 따위 내게 티끌만 한 타격도 맺히지 못한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야 한다.


태연하게 휘어진 저 눈동자를 찢어버려야 했다.


“네가 가장 아끼는 존재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아무래도 후천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속성 보유자가 아닌 사람과도 깊은 인연이 있을 터인데 속성이 없는 사람을 건들면 일이 좀 복잡해져 귀찮아지거든.”


갑자기 공격을 멈춘 우두머리가 이해되지 않은 말들을 주절주절 지껄였다.


“근데, 이도헌이랑 서진우는 너무 식상하잖아? 그래서 친히 준비해 봤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내 앞에 의문의 노란색 창이 하나 떴다. 허공 한곳에 놓여진 그 창 너머에는 피투성이가 된 인화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상처의 고통을 뒤덮는다. 저릿한 번개 속성의 잔해는 겁을 먹고 잠시 자취를 숨겼고 겨우 유지하던 올라간 입꼬리는 툭 맥락 없이 떨어졌다. 한 잎, 한 잎 낙화하는 꽃잎을 꿀꺽 먹어버리는 복수가 점차 몸집을 키워나가며 들끓었다.


“인화…….”


원한이 맺힌 한 마디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콰득, 콰드득. 무언가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슬며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인화 어딨어!!”


콰직! 처참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압박되어 있던 손목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금색의 팔찌가 부서진 건가. 잠시 생각만 할 뿐 나의 모든 집중을 한 몸에 받는 건 내 앞에 있는 그였다. 부서진 팔찌에 조금의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내 손에는 불안정한 번개 속성의 채찍이 휘감겼다.


고유의 능력을 사용하면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속성 이외에도 나의 체력을 기반으로 유지하는 것이니. 제 주인의 지휘를 떠나간 속성을 사용하는 지금 나의 경우에는 정신까지 소모된다.


제어가 불가한 상태의 속성과 이미 한껏 망가진 몸, 바닥난 체력, 잃어버린 이성까지.


고유의 능력을 사용한다는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면 안 된다는 자각도, 다시금 나타난 시각화된 속성도, 거친 숨과 찌릿한 통증에 심해지는 손의 떨림도, 그 무엇도 나에게 닿을 수 없었다.


사악! 삭! 무참히 바람만 가르는 채찍이 우두머리를 베지 못해 안달 나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사이에 깊게 스며 들어가는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이를 아무리 꽉 깨물고 채찍을 힘껏 쥐어봐도 나의 속성이 그의 심장에 닿을 수 없었다.


“무뎌.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몹시도 무디군.”


“인화 어디 있냐고!”


“저기 있네, 소중한 네 여동생.”


그의 고갯짓이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노란색의 창을 짚었다.


“내가 기어코 네 목숨을 가져갈 거야, 우두머리! 어떻게든!!”


채찍을 아무리 휘둘러도 갈라지는 건 허공과 밤공기를 담은 바람뿐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갑작스레 사라졌다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우두머리에게 도달하지 못하였다.



두근 -, 두근 -, 두근 -



막대한 압도감을 실은 묵직한 심장박동에 심장 부근이 무거워지며 확연히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박 협회장님의 속성인 줄 착각하는 나의 속성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음이 느껴진다.


‘시각화가 된 속성을 이기지 못하고 잡아먹혀 버린다면, 정신부터 갉아 먹힐 것이다.’


상관없다.


‘한번 먹히기 시작하면 절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거지.’


이제 내가 무얼 바라겠는가.


‘무조건 바로 팔찌를 착용해야 한다. 괜한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알았지?’


이건 쓸데없이 굳건한 자존심 따위가 아니었다.


한평생 지켜주고 싶은, 더없이 여리고 여린, 나의 여동생에 대한 사랑이었다.


감히…… 네가 뭔데 내 동생을 건들려. 네놈이 뭐길래 인화한테 손을 대.


“이 악물어라.”


마침내 그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나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닿았고 그의 가면이 삐뚤어졌다.


빠악! 한계에 다다른 지는 오래였다. 억지로 이끌어낸 힘의 원천은 오로지 복수심이었다. 인위적인 힘을 온전히 실은 주먹이 그의 가면을 크게 가격하자 다시금 그가 모습을 감추었다.


“……복수심이 아닌데.”


혼잣말하듯 우두머리의 중얼거림에 다급히 뒤를 돌았다.


“사랑……?”


어느새 다시 나타난 그가 삐뚤어진 가면을 고쳐 쓰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하, 그따위의 힘이 이 정도였나.”


하늘색으로 치열히 빛나는 그의 눈이 나를 향하였다.



두근 -, 두근 -



빈도가 짧아진 심장박동은 전보다 더욱 무거워졌을 뿐 아니라 고통까지 싣고 온몸을 순환하였다.


“죽여버릴 거야…….”


애써 숨기고 있던 거친 숨이 기어이 제 존재를 드러내었다.


“죽여보던가. 헌데, 그 몸으로 할 수 있겠나?”


끈적한 감촉이 다리를 휘감았다. 곧잘 움직이던 몸이 시각화된 속성이 끈질기게 붙잡자 우뚝 멈추어 서서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래, 바라던 바야.”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익숙한 목소리를 담은 말이 그에게 전해지자 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당황이 침몰하였다.


“기꺼이 죽여주지.”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그 무엇보다 환히 빛나는 불의 나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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