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달려드는 불의 나비를 빤히 쳐다보던 우두머리는 불의 나비가 제 앞까지 왔을 때서야 피하기 시작했다. 끈질기게 쫓아가는 불의 나비는 그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도헌의 공격이 그에게 수월히 다다를 수 있도록 도울 뿐이었다.
불의 나비를 관찰하는 듯 빤히 바라보며 아슬아슬하게 피하던 그가 도헌의 바로 앞까지 도착하였다. 도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 짧게 내뱉고는 우두머리의 옆을 거칠게 지나갔다.
도헌의 손 위에 안정적이나 날카롭게 머무는 불 속성이 우두머리의 오른쪽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부드러운 움직임은 그 무엇보다 날카로웠겠지. 벌어진 상처 사이로 재빨리 날아온 불의 나비가 들어가자 그의 팔이 움찔거렸다.
달 속성의 반짝임을 품은 도헌의 불 속성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찬란히 빛났다.
붕 -, 반사적으로 휘두른 그의 검이 도헌의 목을 겨냥하였으나 목표물에 조금도 닿지 못하였다. 신속히 자세를 낮추어 도헌은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스치지 못한 우두머리의 검을 쉽게 피한 뒤 순식간에 그를 제압했다.
“하하, 하하하!”
바닥에 눕혀진 채 도헌의 팔에 어깨가 지그시 짓눌러진 그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우두머리의 오른쪽 팔의 상처에서 나오는 붉은빛을 뿜어내는 피가 그의 옷을 적셔갔다.
“실군단의 우두머리…….”
“우리의 만남은 아직이야, 이도헌.”
곧이어 그가 사라졌다. 도헌은 다급히 땅에 왼손을 집으며 중심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스치는 당황도 잠시, 도헌의 얼굴이 평소와 같이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았다.
“널 맞이할 준비가 아직 한창이거든. 그리고, 난 이성 잃은 짐승이랑 대화하고 싶지도 않아.”
도헌의 뒤에서 갑작스레 다시 등장한 우두머리의 목소리에 도헌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도헌이…… 이성을 잃어? 잘 모르겠다. 살기와 복수심에 젖은 도헌의 눈이 유독 찬란히 붉게 빛나는 것 같긴 하나 머릿속에는 온통 다친 인화 생각뿐이었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초승달을 머금은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그렇게 그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인화.”
그가 떠난 뒤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진 두 음절에 한계에 다다르다 못해 생명의 주도권이 빼앗기게 생긴 것도 모르는 몸이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박인혁!”
도헌이 급히 나를 부르며 내게로 다가왔다.
“비켜!”
내 앞을 가로막는 도헌에게 언성을 높여버렸다.
“인화, 인화가 위험해. 인화가…….”
“뭐?”
도헌을 스쳐 지나가려고 하자 다시 도헌이 앞을 막고는 내 양 어깨를 잡았다.
“정신 차려. 너 지금-”
“위험하다고!”
탁! 잃어버린 이성의 자리를 메꾼 분노가 도헌의 손을 거칠게 쳐버렸다.
“내 동생이…… 다쳤다고…….”
목숨이 위험하단 말이야.
떨림은 온전히 담은 목소리가 이곳저곳을 누볐다.
“인화 안전해. 지금 본부에 진우랑 같이 있어. 그러니까 진정해, 인혁아.”
현실을 알려주는 영원히 변치 않는 그의 침착이 귓가에 스며들자 곧바로 번뜩 이성이 돌아왔다. 인화를 건드렸다는 것에 대한 분노는 날 농락한 것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고, 그보다 더 큰 건 안심이었다.
다행이다. 인화가 무사해서.
곧바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상처의 통증이 부각되었고 체온이 순식간에 올라갔다. 번개 속성으로 오염되어 버린 심장이 몹시 느리게, 무겁게 뛰었다.
도헌이 내게 다가온다. 내 머리에 흐르는 피를, 상처투성이인 팔을 확인한다. 도헌의 입이 바삐 움직인다. 걱정과 자책이 서린 붉게 빛나는 그의 눈이 나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야.”
그 한 마디에 도헌의 모든 행동이 일시 멈추었다.
“안 들려, 인마.”
삐이이 -
내 귓가에 들려오는 건 거짓된 복수심이 떠나가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그저 시끄럽게 떠드는 이명뿐이었다. 나직한 웃음이 섞인 말을 들은 도헌의 몸이 흠칫 미세하게 떨렸다.
그 자식에게 생명을 빼앗기기까지 일 분도 채 안 남아 있었다.
*
한껏 지친 몸을 이끌고 본부로 돌아와 나와 인화를 제외한 대원들이 하나둘 퇴근을 하고 있을 무렵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진우가 본부로 복귀했다. 나는 진우에게 다가가 인화가 듣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집에 먼저 가. 박인혁 제어 훈련하다가 온대서 난 걔 돌아올 때까지 본부에 있으려고.”
“아, 그래? 그럼 박인혁 기다렸다가 너랑 같이 가지 뭐. 어차피 밀린 업무도 있고.”
‘밀린 업무’라는 단어에 나는 잠시 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 뭔데, 왜. 뭘 그렇게 사람 잡아먹을 듯이 쳐다봐?”
불안한 듯 몸을 움츠리며 진우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리고 무심히 입을 열었다.
“특경부 하계 훈련 계획서 제출 명일 십칠 시까지입니다, 서진우 대원님.”
“아아, 제발…… 아직 반도 못 썼다고…….”
“그러게 미리미리 쓰지 그러셨습니까.”
“훈련이 적당히 많아야죠, 리더님.”
인정은 한다. 일 년에 특경부 내에서 진행하는 큰 훈련은 하계와 동계가 끝이나 그 중간중간에 자잘한 훈련이 많다. 진행했던 훈련과 차이점을 주기 위해 매번 다른 훈련을 구색해 내고 그를 통해 한층 성장할 수 있도록 대원들이 각자의 한계에 부딪치게 하기 위해서 강도도 최대한 세게 해야 하니까. 훈련 담당인 진우가 고생이 많지.
하지만 뭐…… 어쩌겠어? 적임자가 너밖에 없는데.
“아니, 대체 왜 내가 훈련 담당인 건데? 훈련은 더럽게 많지, 강도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끌어올리라 해, 할 때마다 매번 다른 훈련을 쥐어 짜내야 되고…… 하아.”
그거 참 안타깝군.
“인혁 오빠는?”
중얼거리는 진우의 투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을 때, 인화가 넌지시 물으며 내 옆으로 걸어왔다. 옅은 암갈색의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 인화를 나는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인혁은 항상 몸에 무리가 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훈련의 강도를 세게 한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훈련을 진행할 때마다 인혁의 부모님, 인화, 속성 대표님들, 그리고 특경부 대원들 모두가 인혁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깊은 걱정을 건네도 헤프게 웃으며 괜찮다 말하고는 절대 조금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인화는 인혁이 속성 제어 훈련을 진행하면서 몸에 무리가 가는 걸 보고 누구보다 속상해한다. 인혁이 훈련을 무리해서 하고 오면 인화의 속상한 마음에서 비롯된 꾸중이 시작된다. 혹여 다치기라도 한다면 잔소리는 평상시보다 곱절이 넘지.
그 꾸중을 듣기 싫어 인혁은 인화에게 훈련하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고 말하긴 하나 사실 훈련을 몰래 진행하는 것은 여동생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오빠의 마음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할 일이 있대.”
“그 인간이? 무슨 일을?”
인화한테는 거짓말해서 미안하지만, 인혁이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한테도 자세히 말 안 해줘서 잘 모르겠는데 빨리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먼저 집에 가.”
나는 진우의 맞은편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인화는 잠시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곧이어 내 옆에 앉았다.
“퇴근 안 해?”
“오빠.”
인화가 나를 나지막이 불렀다. 인화의 여린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오빠 거짓말 진짜 못해.”
그 말에 무심코 책상에 놓여 있는 서류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인화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진실을 말해 버릴 것 같았다.
“박인혁 훈련 갔지? 그치?”
이미 들켜버렸지만.
확신하는 인화의 목소리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몹시 못한다는 사실은 잠깐 망각하고 있었다. 다 알아채 버린 이상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박인혁. 나름 최선을 다했어. 난 몰라 이제.
애써 인화를 무시하고 서류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인화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인화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깜짝 놀란 내 얼굴을 보았다.
유독 느려진 세계의 시간이 너를 비추고 있었다. 세상 모든 날빛을 들고 와도 견줄 수 없는 너의 미소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잠시 멈춘 듯했던 심장은 곧이어 부정맥 마냥 미칠 듯이 뛰어댔고 아무런 생각도 머물지 않은 채 멍해지눈 순간이었다.
이 감정을 왜 이제야 알아챘을까.
사실 훨씬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는데.
이유가 없는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그래야 혼란스러운 지금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될 것 같아서. 아무리 사랑의 구실을 찾아보아도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냥, 네 미소가 너무 예뻤다. 계속 고민하고 고심하던 시간 끝에 놓여져 있던 답은 단 하나뿐이었다.
너라서.
너라서, 좋아해.
“어차피 박인혁 올 때까지 시간 많이 걸릴 거 아니야. 나 심심해. 일하지 말고 나랑 놀자.”
배시시 웃은 채 내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기며 인화가 애교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심심하면 이거라도 해.”
나는 인화에게 내 손에 들려 있던 불법 속성 사용자들의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를 건네주었다.
“어떻게 분류하는지 알지?”
“같은 처벌끼리.”
마음에 안 드는지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 뭉텅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인화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내일 해도 되는 거잖아. 나랑 놀자 오빠, 응?”
다시금 나를 향하자 인화의 눈빛이 반짝였다.
허……, 하마터면 바로 넘어갈 뻔했네.
“나 바빠. 다른 일도 해야 돼.”
애써 이성을 붙잡고 내뱉은 말에 인화는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로 나를 한번 힐긋 쳐다보았다. 삐졌다는 것을 엄청나게 티 내며 마지못해 서류 분류에 집중했다. 자동으로 지어지는 미소를 겨우 삼키고 다른 업무를 하려던 때에 문득 앞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앞을 보니 진우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짜증과 넌더리가 섞인 인상을 쓰며 나를 보고 있었다.
“뭔데 이 분위기는……. 설마, 너희 둘이 사귀냐?”
문장의 끝으로 갈수록 진우의 인상이 더욱 진해졌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일이나 해라.”
“그래 일이나 해, 서진우.”
괜히 심술을 내는 듯 인화가 한 마디 거들었다.
“서진우? 와 진짜, 아주 이도헌만 오빠지?”
나를 향하던 진우의 의심이 담긴 눈빛은 곧이어 인화에게로 옮겨짐과 동시에 상실된 어처구니를 찾고 있었다.
“흥, 특경부 하계 훈련 계획서 제출 명일 두 시까지입니다, 서진우 대원님?”
톡톡, 가늘고 하얀 인화의 손가락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하, 이번 하계 훈련 때는 본부팀도 현장팀과 똑같은 훈련 강도로 진행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해보시죠? 어차피 기각당하실 텐데.”
“과연?”
서로 단 한 마디를 지지 않는 둘을 보며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 본부팀이 머무는 책상 앞으로 갔다. 본부팀의 책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가지의 조작 버튼 속 전원 버튼을 눌러 장치를 활성화시키자 전원이 켜지며 허공에 큰 푸른 창들이 몇몇 개 떴다.
나는 창 하나를 내 앞으로 끌어와 몇 개의 조작 버튼을 눌러 진우가 납치된 그날의 CCTV 녹화본을 띄워 반복해서 돌려보았다.
그저 진우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짧은 영상이었다. 뒤를 돌아 황급히 달려가는 도중 녹화가 끊겼으며 그 뒤로부터는 전혀 녹화가 되지 않았다. 짧게나마 녹화된 영상에도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혹여나 작은 단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라는 미약한 희망을 가진 채 녹화본의 재생 버튼을 몇 번이고 계속 눌렀다.
여러 개의 다른 창들로 조금이라도 진우의 모습이 찍힌 주변의 CCTV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진우가 달려간 뒤로는 녹화가 되지 않았다.
어떤 녹화본에서도 더 이상의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창들을 현재 녹화되고 있는 CCTV 화면으로 돌렸다. 협회에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은 지 유심히 살펴보던 도중, 한 CCTV 화면에서 인혁을 발견했다. 속성 제어 훈련을 하고 있어야 할 인혁을 그리 달갑지 않은 실군단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창을 곧장 내 앞으로 끌어와 자세히 확인했다. 인혁의 앞에 스물은 족히 넘어 보이는 실군단들이 인혁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인혁은 실군단의 검으로 보이는 검을 들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화면 속 인혁의 오른쪽 손목에 금색의 팔찌 가운데에 박힌 빨간색의 보석이 현란히 빛나고 있었다.
“잠시 협회에 갔다 올게.”
“왜? 무슨 일 있어?”
진우가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지금 박인혁 속성도 없이 혼자 실군단 상대하고 있어.”
“뭐?”
“넌 여기 있어. 아직 팔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니까.”
나는 서둘러 협회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초조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나도 갈래.”
인화였다.
“안 돼.”
단호하게 말하자 인화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위험해. 실군단의 수가 많아서 다칠 수도 있어.”
인화는 속성을 사용하는 게 많이 미숙하고 사용한 경험도 적을뿐더러 애당초 속성 자체의 힘이 약하기에 많은 수의 실군단을 상대하다 자칫 다칠 위험이 컸다.
“그치만……!”
“박인화.”
내 목소리에 인화는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인화의 풀이 죽은 표정에 마음이 아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절대 인화가 다치는 걸 볼 수 없어.
내가 다치는 건 상관없다.
나는 위험해져도 되지만 넌 안 돼.
“……오빠 혼자 가면 위험하잖아.”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를 걱정하는 인화의 사랑스러움이, 시무룩해진 표정의 귀여움이 심장을 마구 파고들었다.
아, 나 인화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지. 지금 이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가 약해서 그래?”
고개를 슬며시 든 인화가 약한 자신을 향한 미움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널 지킬 자신이 없어서 그래. 네가 약한 게 아니라.”
……뭔가 불길한 게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거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네가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인화의 손 위에 내 손을 살포시 얹어 옷자락에서 그녀의 손을 조심히 떼었다.
“그럼 안 다치겠다고 나랑 약속해.”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인화에게 말했다.
“알겠어. 약속할게.”
인화의 우려 가득한 눈빛을 애써 뒤로 한 채 서둘러 협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