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의 나비 13화

제3막 후천적 속성(6)

불의 나비 13화

by 매화연

최대한 빨리 인혁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인혁의 훈련 장소는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라 협회 입구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다리는 왜 말을 안 듣는 건지, 숨을 또 왜 이리 차오르는 건지, 왜 하필 오늘따라 몸이 말을 안 듣는 건지. 시간은 없어 조급하기만 한데.


골목 사이사이를 거쳐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자 울창한 나무들이 이곳저곳 둘러싸여 있었다. 분명 안쪽으로 갈 수 있도록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 하나 놓여져 있었던 것 같은데, 왜인지 길은 보이지도 않고 사방을 감싼 넝쿨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색 빛.”


게다가 평범한 넝쿨이 아니고.


얼핏 보았을 때는 아무런 문제 없는 넝쿨로 비추어지나 그 속에 묻은 하늘색의 빛을 보고도 단순한 넝쿨로 볼 수 있는가.


과연 이 공연의 악역은 그저 일개의 잡것일까. 그를 대변하는 그의 엽견들일까.


아니면, 그들의 주인일까.


자작자작 조금씩 불 속성에 타들어 가는 넝쿨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위로 올렸다. 자칫 바람에 불이 번져 이 나무들까지 불태워버리면 큰일이겠지. 그렇기에 조심히, 신중하게 넝쿨을 태워야 했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조급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인화 어디 있냐고!”


그제야 멋대로 닫혔던 귀가 다시금 세상의 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인화? 왜 저리 다급한 목소리로 인화를 찾는-


“저기 있네, 소중한 네 여동생.”


천천히 옮겨가던 시선도, 불 속성으로 넝쿨을 태워버리던 손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발도, 복잡한 생각도, 수없이 이어지는 의문 속 질문도, 모두 멈추었다. 기계음이 섞인 그의 목소리가 나를, 온 세상을 잠잠히 잠재웠다.


그리고, 무언가 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연이었다.


상황 파악? 중요하지 않다. 내가 왜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감정을 억눌러야 돼. 다 필요 없어.


어느덧 거세진 불 속성은 모든 넝쿨을 휘감아 단숨에 삼켜버렸다. 잔가지와 타닥타닥 꺼져가는 불길 속을 걸어 나갔다. 뜨거운 열기와 따끔거리는 통증이 다리를 감싸 안았다.


“죽여버릴 거야…….”


불의 나비가 나를 보좌하듯 내 주위를 맴돌았다.


“죽여보던가. 헌데, 그 몸으로 할 수나 있겠나?”


“그래, 바라던 바야.”


나무 사이를 헤쳐 나와 나직이 목소리를 내보내었다. 슬며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는 당황이 담긴 그의 얼굴이 무척 보기 역했다.


“기꺼이 죽여주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의 나비가 그를 비행의 종착지로 삼았다.


우두머리는 오 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전히 숨기지 못하는 살기와 자신의 존재를 가리려 착용하고 있는 가면, 기계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 그리고 극심하게 밝아 온 세상의 어둠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하늘색의 눈동자까지.


불의 나비의 지휘에 몸의 주도권이 빼앗겨버린 우두머리가 점차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뭐가 그리 흥미로운지 불의 나비를 뚫어져라 관찰하는 그를 보며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언뜻 보면 손 위에 안정적으로 머무는 것 같으나 그 무엇보다 불완전한 불 속성이 그의 오른팔을 깊게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생겨난 상처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불 속성과 그 속으로 들어가는 불의 나비에 주륵 흘러내리는 피와 더불어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붕 -, 무의식 속에서 본능적으로 휘둘러진 그의 검이 급히 자세를 낮춘 내 머리 위를 그대로 지나갔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계획에 있었던 일이다. 이성도 애써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상태였고.


우두머리가 바닥에 눕힌 채로 내 팔에 제압되어 있던 건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하하, 하하하!”


대체 어째서 순식간에 이성을 잃어버린 건지 알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휘어지는 그의 눈을 보자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실군단의 우두머리…….”


“와, 날 기억해준 거야? 이거, 꽤나 감동인걸.”


나를 직시하는 그의 눈이 몹시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답지 않게 이리 급하데도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내가 어지간히 보고 싶었나 봐?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한가득 기쁨을 끌어안은 그의 눈동자에 반달이 드리웠다. 답지 않게, 라니? 누가 보면 나와 오랫동안 아는 사이인 줄 알겠군.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만남은 아직이야, 이도헌.”


소곤소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왼쪽 허벅지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며 차가운 한기가 돌았다.


“때가 되면 보기 싫어도 지겹도록 올 테니까 지금은 제발 좀 조용히 있자, 응?”


……얼음 속성.


어쩐지 왼쪽 다리가 움직이기 불편하더라니, 넝쿨 속을 빠져나올 때 잔가지에 긁힌 모양인가. 그 상처에 이 자식은 얼음 속성을 주입하고 있는 거고. 거슬리긴 하나 이런 사소한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지금 나에겐 없었다.


“한 협회장, 안 보고 싶나?”


움찔.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이 미세한 움직임이 그에게 없는 낙을 선사할 것을 알고도.


내 예상대로 그의 눈이 초승달을 품었다.


“네 사부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 텐데? 넌 나 못 죽여. 네가 날 죽이면? 네 사부가 무사할 것 같아?”


조롱이 섞여 들어가는 그 말에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사부의 목숨이 걸려있는 이상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 눈앞에 있는 이 원망을 죽일 수도, 해할 수도 없었다.


“사부는…… 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아. 그렇게 약하신 분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그래, 그렇겠지. 위~대하신 불 속성 대표, 한인호 협회장님이시니까.”


비아냥 대는 거만한 태도가 그의 행동 곳곳에 묻어났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그렇게 강인하고 대단한 분이 지금은 겨우 내 인질이나 되셨네? 아무래도 네 기억 속에 있는 한 협회장의 위대함은 모두 공상 섞인 허상일 뿐인 것 같구나.”


사부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고작 이딴 자가 사부에게 상대가 된다고? 웃기는 소리.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다만 그럼에도 내가 이자를 건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저 의연히 나오는 걱정이었다.


사부가 얼마나 강하신지를 떠나 어디에 계시든지 그저 무탈하게 무사하셨으면 하는 바람. 나 때문에 사부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사부를 이자가 데리고 있는 거겠지. 우두머리의 말에 거짓이 안 섞여 있다면 어떤 상황에 처해 계신 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살아는 계신다. ‘아직’은.


어찌 되었든 운명은 우두머리의 이익에 머물러 있다. 현재가 얼마나 사부에게 불리하고 우두머리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껏 저자에게 붙잡힐 정도로 나약하신 분이 아니지 않은가. 몸을 사려서 안 좋을 건 없다만 그곳에서 빠져나오시지 않을 특별한 연유 또한 없었다. 난 멋대로 움직일 수 없으나 사부는 상황이 다르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움직이셔도 상관이 없단 말이다


헌데 왜 안 움직이시는 거지? 대체 왜. 사부라면 당장이라도 무사히 협회로 돌아오실 수 있으시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속성 대표 중 한 분이시니까. 분명 돌아오실 수 있으실 텐데…….


“귀여워해 주며 가만히 당해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탁, 그가 갑작스레 사라진 자리에 반사적으로 왼손이 튀어나왔다. 그대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숨을 내뱉었다.


“널 맞이할 준비가 아직 한창이거든. 본디 귀하신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데에는 의연히 긴 세월이 걸리는 법이지. 그리고, 난 이성 잃은 짐승이랑 대화하고 싶지도 않아.”


그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으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순간이동은 실군단만 할 수 있던 게 아니었나.


“그가 깨어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로지 위험에 처하신 사부의 걱정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들끓었던 복수심조차 적막히 가라앉히는 그분이, 귀한 그분의 목숨이 이미 사라진 그자의 손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다시 운명을 염오할 수밖에 없었다.


역했다.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 운명이 지극히도 역해 비릿한 감정을 어서 토해내고 싶었다.


“……인화.”


무언갈 꾹 누르고 있는 듯 한층 낮아진 인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자 나는 곧바로 정신을 되잡았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망가질 때로 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인혁이 힘겹게 걸음을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박인혁!”


다급한 목소리는 하늘을 떠돌다 결국 내가 원하던 종말점에 도달하지 않은 채 높이 날아 가버렸다.


“비켜!”


인혁의 앞을 가로 막자 그가 소리를 질렀다.


“인화, 인화가 위험해. 인화가……”


“뭐?”


나를 스쳐 지나가려는 인혁의 양어깨를 덥석 잡아 그를 세웠다.


“정신 차려. 너 지금-”


“위험하다고!”


탁! 조금의 저항도 없이 튕겨나간 오른손에 왼손도 힘없이 인혁의 어깨를 놔버렸다.


“내 동생이…… 다쳤다고…….”


떨림을 담은 인혁의 목소리에 상황 파악을 하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도저히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화가 왜 위험해. 누가 다쳐? 인화는 지금, 본부에 진우랑 있을 텐데.


“인화 안전해. 지금 본부에 진우랑 같이 있어. 그러니까 진정해, 인혁아.”


대체 무엇을 본 건지 이성을 잃어버린 인혁에게 드디어 내 말이 닿자 곧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박인혁!”


거친 숨을 내쉬는 인혁의 상태를 얼른 살폈다. 머리에서 흘러내려 그의 왼쪽 눈까지 적셔버리는 피에는 하늘색의 광망이 섞여 있었다. 팔은 상처로 뒤덮여 성한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심히 떨리는 오른손이 인혁이 다다른 한계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무리했다는 사실을 각인하고 있었다.


“박인혁, 내 말 들려?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어서 병원 가서 해 속성 치료를-”


“야.”


넌지시 내뱉은 인혁의 말에 모든 행동이 멈추었다.


“안 들려, 인마.”


왜 난 이제야 발견했을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섞어 말하는 인혁의 몸 주위에 펼쳐진 보랏빛 아우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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