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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헌, 서진우, 그리고 나 박인혁.
우리 셋은 어릴 때부터 엄청 친한 친구였다. 서로의 부모님을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며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들릴 만큼 가까웠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 현재는 함께 일까지 하고 있을 만큼 오래된 사이였다. 그 어떤 기억이든 항상 내 옆에는 도헌과 진우가 있었다.
뭐, 물론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당연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진우는 그렇다 쳐도 싹퉁바가지 부잣집 도련님인 도헌과 친해질 정도로 어릴 적 내 배짱이 많이 두둑했구나, 생각하는 정도?
자주 다퉜고 크게 싸워서 사이가 틀어진 뻔했던 적도 간혹 있었으나 단 한 번도 그들과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도헌과 진우의 친구가 될 수 있어서 무척 기뻤…… 아니, 이건 좀 오글거리네.
그러나, 한때 도헌을 무지막지 원망했던 적은 있었다.
아마 여덟 살 때였을 것이다. 처음 속성을 가지게 되었던 때가.
그날은 한가한 토요일의 이른 오후였다. 나와 진우, 그리고 계속 떼를 써서 끝내 나를 따라와 버린 나의 여동생 인화와 함께 도헌의 집에 놀러 갔었다. 어김없이 이모와 삼촌은 일을 하러 가셨고 마침 선아 누나도 친구와 놀러 가 도헌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넷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썩하게 함께 놀다가 갈증이 밀려오기 시작할 즘이었다.
“아, 목말라.”
놀다 지쳐 잠시 바닥에 누워 있던 진우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넌지시 말을 내뱉었다.
“목마르면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 아무거나 마셔. 난 보드게임 찾아올게.”
자리에서 일어난 도헌이 우리에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나와 진우, 인화는 곧장 냉장고로 달려가 음료수를 골랐다.
커다란 냉장고 한 공간에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는 여러 가지 많은 음료수 중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자그마한 유리병에 담긴 반짝이는 세 개의 음료수였다. 우리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음료수 속 오로라가 일렁였다.
투명한 유리병에는 각기 다른 색의 음료수가 영롱한 빛을 빛내며 담겨 있었다.
물이라 해도 믿을 만큼 청량한 파란색.
얼어붙은 것만 같은 다른 음료수보다 유독 차가워 보이는 하늘색.
그리고, 탄산이 들어있는 듯 보기만 해도 찌릿한 노란색.
어린아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빛은 나아가 우리를 현혹하기 시작하였다. 사전에 협의라도 된 듯 조금의 대화도 없이 우리는 그 음료수들을 하나씩 집었다. 나는 노란색을, 진우는 파란색을, 인화는 하늘색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딸칵, 경쾌한 소리가 짧게 울렸다. 찰나의 망설임과 조금의 의심조차 없이 바로 입가에 병을 가져다 대었다. 시원한 음료수가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식도를 쓸며 음료수가 지나가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연신 기침이 나왔고, 심장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색만 다를 뿐인 똑같은 음료수를 마신 진우와 인화도 똑같은 증세를 보였다. 부족한 산소를 재촉하는 심장에 거친 숨을 짧게 끊어 계속해서 들이마시고 내뱉고를 반복할 때 전기가 통하는 듯 급작스런 찌릿한 통증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눈앞이 핑 돌았다.
그때 손에 보드게임을 들고 방에서 나온 도헌이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뛰어왔다. 뭐라 말하는 듯 도헌의 입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도헌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몸은 며칠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뻐근했고, 손끝에는 찌릿한 감각이 맴돌았다. 푹신한 소파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울상을 짓고 있는 인화가 보였다. 진우와 진우의 부모님도 옆에 앉아 계셨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어째선지 다소 심란해 보이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모님들의 시선 끝에는 도헌의 어머니가 계셨다. 이모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부모님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셨다.
“엄마……?”
무심결에 나온 목소리에 엄마가 고개를 돌려 깨어난 나를 보시고는 순간 스치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시며 애써 환하게 웃으셨다. 엄마에게로 가려고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설임 없이 문은 곧바로 활짝 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방 안으로 들어오신 분은 다름 아닌 도헌의 아버지셨다. 삼촌의 등장에 부모님들이 놀란 기색을 보이셨다. 삼촌은 오시자마자 허리를 숙이시며 부모님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모두 부주의한 저의 잘못입니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부 제가 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답지 않으시게 당황을 하신 듯 빠르게 내뱉으신 삼촌의 말씀에 잠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일단, 저희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어색하게 웃으시며 입을 여시는 진우 이모의 말씀에 도헌이 삼촌은 조심스레 도헌이 이모 옆에 앉으셨다.
“도헌 엄마가 워낙 설명을 잘해주어서 이해는 됐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속성이…… 생긴 거죠?”
그 뒤로 어른들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속성이니, 협회니, 제어 팔찌니,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말과 단어들이 오고 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 보는 많은 어른들 사이에 도헌이 함께 있었다. 도헌은 다정해 보이는 한 어른 뒤에 서서 그 어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번개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최 소장님에게 그날 일과 속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최 소장님이 연구를 위해 속성 대표님들의 속성을 이용하여 속성 응축액을 만들어 잠시 도헌의 집에 보관한 모양이셨다. 그 잠깐 사이에 우리가 그것을 마셔 속성이 생긴 것이고.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마신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속성 대표님들의 속성으로 만든 응축액이었던 탓인지 속성이 내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가끔 속성이 폭주할 때가 있는데 그때에는 평범한 은색의 속성 제어 팔찌로는 전혀 제어되지 않았다.
간혹 속성이 제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신 최 소장님은 우리에게 평범한 속성 제어 팔찌와 더불어 하루 만에 개발하신 금색으로 된 팔찌를 주셨다.
금색의 팔찌를 착용하면 한 시간 동안 속성을 일시적 완전 불구상태로 만든다. 그 시간 동안은 속성을 사용할 수도, 팔찌를 뺄 수도 없다.
속성이 생긴 뒤로 나의 번개 속성의 원래 주인이셨던 박 협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속성 제어 훈련을 하였다.
“네 몸이 속성을 거부하는 거다. 쉽게 비유하자면…… 그래, 해로운 바이러스가 침투했다고 여기고 있는 게지. 애초에 남의 속성을 섭취한 것이니 속성도 널 부정하고 있지 않겠느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긴. 죽어라 훈련해서 네가 너 자신과 속성을 이겨야지.”
“속성을…… 이겨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내 속성을 섭취했으니 뭐니 해도 지금 네 안에 있는 건 변함없는 네 속성이니. 다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차근차근해보자꾸나. 분명 인혁이 넌 해낼 수 있을 거야. 한다면 하는 놈이잖느냐. 일단 우선은 속성을 받아들인다 생각해 보거라.”
박 협회장님을 포함한 다른 속성 대표님들, 그리고 도헌이 계속해서 도와줬지만 속성을 제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면에 진우는 너무 쉽게 제어를 했다. 완벽하진 않았으나 똑같이 연습한 나와는 너무도 비교되었다. 인화는 우리보다 속성의 힘이 약한 탓에 속성을 과도하게만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속성 제어 팔찌로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했다.
그런 진우와 인화를 많이 시기하고 질투하던 시간들이 나를 옭매었고, 그 끝은 언제나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속성 제어 훈련은 체력 소모가 심하다. 내가 무리해서 훈련을 진행한다는 원인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훈련을 하다 쓰러진 적도 다망하였다. 코피는 안 흘리면 이제 섭섭할 정도고 훈련이 끝나면 오른팔은 물론 몸 전체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를 괴롭힌 건 이러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인 비교와 나를 갉아먹는 열등감과 제어가 되지 않을 때 밀려오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스멀스멀 꾸준히 채워지는 자기혐오. 조금일지언정 타격이 그 어떤 것보다 큰 정신적 고통이 나날이 커져가며 마음이 허물어지고 아물지 않는 상처가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자책을 없애기 위해 나는 나를 향했던 원망의 화살을 도헌에게로 돌렸다.
그때 이도헌이 자리를 비우지 않았더라면, 아무 음료수나 꺼내 먹으라는 부주의한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라며.
비겁하고 찌질한 방법을 쓰며 이미 나에게 박혀 버린 자책의 화살을 조금씩 부러트렸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으며 훈련을 이어갔다. 뽑히지 않은 잔해를 품고 그치지 않는 피를 흘려보낸 채 이를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도 이런 내가 구역질 날 정도로 싫은데 그때에 더 비참해졌던 건,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모든 짜증을 본인에게 퍼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 받아주고 이유 없는 한이 풀릴 때까지 그저 가만히 기다려줬던 도헌의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해가 뜨고, 꽃이 지고 또다시 피기를 반복해도 속성은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속성 제어 훈련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잘 진행되지 않는 훈련이 끝나자 한순간에 급격히 답답함이 밀려왔다. 나는 괜스레 교복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서늘한 바람이 뜨거워진 몸을 쓸고 지나갔다. 유독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나는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괜찮냐?”
갑작스레 들리는 도헌의 목소리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어느새 내가 훈련하는 곳으로 온 도헌과 진우가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도헌의 말에 대답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래, 그러다 괜히 다치지 말고. 천천히 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던 훈련에 내가 평소보다 예민해졌었던 걸까.
걱정으로 정의되어야 하는 그 말들을 내 귀가 멋대로 듣고는 나를 비꼬는 말로 정의를 내려버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바닥에 앉아 도헌과 진우를 올려다보았다.
“야, 너네 지금 나 놀리냐?”
그 말에 놀란 건 도헌과 진우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고 손과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말을 멈추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 계속해서 바삐 움직였다.
“무리하지 말라느니, 천천히 하라느니…… 그런 말은 너희한테 해당하겠지. 난 이도헌 너처럼 원래 속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진우 너처럼 속성을 잘 제어하지도 못한다고. 따라잡으려면 더 열심히 죽어라 해야 하는데 천천히는 무슨!”
언성을 높인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아, 미안. 우린 그냥 너 걱정돼서…….”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진우는 오히려 나에게 사과를 하며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도헌도 마찬가지였다.
나 같은 놈이 뭐라고 걱정을 해주는 걸까. 난…… 보잘것도 없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인데.
“박인혁.”
도헌이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그제야 나는 떨구고 있던 무거운 고개를 들어 도헌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굴 따라잡아? 너보다 잘난 놈이 어디 있는데.”
평소라면 인상을 쓴 채 기겁하면서 입에 담지도 않을 말을 도헌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넌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누구보다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노을빛을 흡수한 연한 선홍의 구름이 껴있는 불그스름한 하늘과 도헌의 무심한 목소리가 담긴 온기 어린 위로는 나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할 때 나를 믿어주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지금은 당연히 안다. 그때 그 원망은 답답함과 자책에서 비롯한 나의 어렸던 투정이었다는 걸.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그때의 나는 그저 성장 없는 시간 속에 고스란히 놓여져 두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미련하고 바보 같은 내 곁을 내가 먼저 고개를 들어 다시 일어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꿋꿋이 지켜준 도헌과 진우에게 또 뭐가 그렇게 민망한 건지 차마 겉으로 표할 수 없는 무한한 감사를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