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화
급작스레 느껴지기 시작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서늘한 한기에 감고 있던 의식이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크윽…….”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상처를 입은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혈액의 순환을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듯 쪼이고 갑갑한 느낌에 밑을 내려다보니 얼음 속성의 실이 내 몸 곳곳에 묶여있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묶인 차가운 실이 나를 벽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어라, 일어났네? 죽은 줄 알았는데.”
“에이, 그 정도로 죽으면 특경부가 아니지~”
여린 목소리와 굵은 목소리의 대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위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가 키가 많이 작아 보였다. 그 옆에는 여자아이와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이 서 있었다.
속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주장하는 마냥 하늘색인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하였다.
“마스터~ 이 사람 일어났어.”
그녀의 말에 그리 달갑지 않은 얼굴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두머리였다. 실군단 내에서는 ‘마스터’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우두머리 뒤로 사람 한 명이 더 서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머물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얼핏 보일 듯 안 보였다. 그의 앞에는 불투명한 노란색의 창이 허공에 여러 개 띄워져 있었다. 본부팀이 사용하는 푸른 창과 생김새가 매우 유사했다.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그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이들은 우두머리의 조력자들인 건가?
“드디어 일어났군. 달콤한 꿈이라도 꿨나?”
그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역겨운 꿈을 꿨어. 누구 덕분에.”
“그거 잘 됐군.”
저 가면 너머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꽃피었겠지.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군.
그는 바닥에 있던 검을 들었다.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검날의 끝이 나의 목을 겨냥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지금부터 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부디 잘 대답해 주길 바라지.”
대답을 안 하거나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는다.
질문이 끝나면 죽는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식은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울 게 없지. 내가 죽어도 상관없고, 그전에 조금의 정보라도 알아내면 더 좋을 거니까.
그의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특경부가 와야 한다. 나 혼자서는 절대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없다.
“특경부가 여기로 올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으니 괜히 헛짓거리할 생각하지 말자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들 그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특경부는 틀림없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난 도헌을, 특경부를 믿는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가 정확하게 하는 일이 뭐지?”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불법 속성 사용자들로부터 시민과 협회를 지키는 일.”
우두머리는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한 협회장이 협회에 있을 때도 불법 속성 사용자는 존재했잖나. 그런데 왜 특경부는 한 협회장이 사라지고 난 뒤에 만들어진 거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입꼬리를 올렸다.
협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경부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으나 특경부가 한 협회장님과 실군단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협회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네?”
설마, 알고서 떠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마라. 내가 묻는 말에만 똑바로 대답해.”
나를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고, 한 자씩 천천히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 조금 더 긁어볼까.
“왜 특경부가 한 협회장님이 사라지고 난 뒤에 만들어졌냐, 라……. 아무래도 박 협회장님께서 모든 업무를 혼자서 감당하시기에는 너무 많으셨던 거 아닐까? 한 협회장님께서 사라지신 뒤 두 명이서 하시던 그 많은 일들을 현재는 한 분이 해결하고 계시니까. 당연히 엄청 바쁘실 수밖에.”
우두머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왜 의문형이지?”
“그야 나도 잘 모르니까.”
공기 중을 떠도는 한기보다 더 차가워진 그의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이도헌이 아닌 다른 특경부 대원들은 아는 게 아예 없는 모양인가 보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 나는 모양인지 심술 섞은 말을 그가 툭 던졌다.
“멍청하긴.”
내 말에 그의 눈썹이 움찔하였다.
“당연한 거 아니냐? 대체 어느 바보가 심문의 목적으로 납치를 하는데 일개 나부랭이를 데리고 오냐? 그 조직의 대가리를 데리고 와야지.”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너, 사람 잘못 데리고 왔다고. 많은 정보를 캐내고 싶었으면 이도헌을 납치했어야지, 인마. 나 같은 놈을 끌고 와서 대체 뭘 알아내겠다는 건지.”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검날을 내 목에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한기를 한껏 머금은 서늘한 검날의 온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경부는 누구의 명령 아래 움직이고 있나.”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특경부의 직속 상사는 이 대표님이시다. 특경부의 모든 권한은 이 대표님에게 있고 이 대표님의 명령이라면 특경부는 그게 어떤 내용의 명령이든, 그 명령이 옳든 옳지 않든 관계없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
만약, 특경부가 이 대표님의 명령 아래 움직이는 사실이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당장이라도 이 대표님의 집무실에 찾아가 여태 특경부가 알아낸 실군단과 한 협회장님의 행방에 관한 서류들과 그 외의 수많은 기밀문서들을 낱낱이 파헤칠 것이다.
JI 그룹은 회사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만큼 보안도 매우 철저하다. 천 팀장님이 보안팀에 계시는 이상 JI 그룹의 보안이 뚫리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우두머리가 시간을 버리면서까지 매우 신중하게 행동하려는 것일 테지.
그러나 정말로 실군단이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이 자에게는 아직 확신이 부족하다. 나의 한 마디가 그의 확신을 꽉 채워버려 그가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회사 안 어디든 들어가는 것, 그리고 모든 정보가 그의 손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물론 그 서류들을 찾을 수 있을지, 애초에 이 대표님의 집무실에 어떠한 서류들이 있는지 난 알 수 없었다. 그저 우두머리가 작고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알아챌 수 없도록 그럴듯한 거짓말을 섞어서 말할 뿐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생각해서 말해야 한다.
“특경부는 특경부 리더의 명령 아래 움직이고 있지. 당연한 사실 아닌가?”
나는 웃음을 띤 채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애써 화를 누르며 나를 쳐다보았다.
계속되는 나의 도발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답변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왜 화를 참는 걸까. 인내심이 그리 강한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나한테 더 알아낼 정보라도 있는 건가?
“특경부 리더의 명령 아래라.”
그가 당연한 사실을 담은 내 대답으로 인하여 상실된 어처구니를 찾지 못한 채 헛웃음을 지고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작게 읊조린 그의 말이 시끄럽게 울려대며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아득해져 가는 시야를 겨우 붙잡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 고개를 아무리 내저어봐도 소용없었다.
모든 신경이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우두머리의 검날이 내 목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점점 몸 상태가 악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태연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다.
피를 꽤 많이 흘린 것 같은데도 아직도 멈추지 않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붉게 만들었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 상처 부위의 통증은 사라질 생각도 없이 점차 온몸으로 퍼져갔고, 눈앞이 아찔해지며 머리까지 깨질 듯한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몸을 차갑게 굳히는 한기가 곧이어 심장에까지 도달할 것 같았다.
“어이, 듣고 있나?”
우두머리가 검날의 끝으로 숙이고 있던 내 고개를 억지로 들었다. 서늘한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원한다면 고통 없이 빠르게 죽여줄 수도 있는데 말이지.”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죽고 싶지 않아서.”
막고 막아도 끝내 새어 나오는 거친 호흡이 섞인 문장을 힘겹게 이었다. 그는 영 아쉬운 듯 검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전히 검날은 나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달의 빛을 업은 검날이 하늘색으로 밝게 빛나는 그의 눈을 담았고 검날에 굴절된 하늘색의 빛이 이 공간을 밝게 밝히고 있었다.
“……너, 약이라도 했냐?”
그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속성을 사용할 때면 눈이 빛을 품긴 하나 저 정도로 밝게 빛을 뿜어내는 눈은 속성 대표님들을 제외하고 처음 보았다. 그분들의 빛과도 뭔가가 달랐다. 그분들의 빛은 온전히 제 색을 띠고 있고 순수하지만 강인한, 청결하고 영험한 빛이었다. 그러나 저자의 빛은 밝으나 몹시도 탁했다.
그의 눈은 마치 자신이 평범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속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 드는 듯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속성 대표라도 되는 줄 아나.
“약? 풉, 하하하하! 아, 약이라.”
그가 나를 조롱하듯 웃음을 터트렸다.
“왜, 내 눈이 그리도 밝으냐?”
그의 눈이 반달을 형성했다. 저 독한 눈빛이 내가 묻는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진실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는 몇 번 실없게 웃어 보이며 유연히 말을 돌렸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마스터.”
우두머리의 질문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남성이 우두머리를 부르며 그의 옆으로 걸어왔다. 허공에 띄어두었던 불투명한 노란색의 창을 손짓 한 번으로 없애는 남성의 왼쪽 눈 밑에는 칼에 베인 듯한 흉터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특경부가 왔습니다.”
‘특경부’라는 세 글자에 저절로 안심이 되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깊은 한숨과 함께 푹 숙인 무거운 고개를 들자 그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남성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나의 눈을 피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남성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무의식적으로 내려간 시선에 들어온 것은 그의 손목에 붉게 빛나는 보석이 박힌 은색 팔찌였다. 저 팔찌를 그가 어떻게…….
저 사람이…… 협회에 등록된 사람이라고?
“뭐? 도대체 어떻게, 그것도 이렇게나 빨리…….”
내 목을 탐하던 검날의 끝이 힘없이 떨어졌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우두머리가 인상을 쓴 채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지금 일을 키워봤자 좋을 건 없으니, 우선 후퇴다.”
“분부대로.”
그때였다.
쨍그랑 - !
저 멀리서 크게 들려오는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안개가 널리 퍼졌고 그 안갯속으로 우두머리를 포함한 실군단 세력이 모두 사라졌다.
연신 기침이 나오는 짙은 안개를 가르는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웠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차 안개가 걷혔고, 마침내 모든 소리를 발생시킨 주인공의 얼굴이 내 시야로 들어왔다.
도헌이었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도헌의 얼굴을 보자마자 온몸에 긴장이 풀렸는지 상처의 통증이 더 극심하게 느껴졌다.
“서진우!”
살았다, 라는 안도감이 내 몸 전체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