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5화
박 협회장님은 서랍에서 서류를 또 한 장 꺼내 나에게 주셨다. 속성 보유자가 협회를 떠나 사회로 나가는 절차 중 하나인 협회장 사회 허락서였다. 이 서류의 주인도 유서호였다.
“보이느냐. 서호 그 자식 내 허락도 없이 협회를 떠나 사회로 나간 거.”
분명 두 협회장님의 허락과 사인이 있어야 하는 허락서에 사부의 사인만 있고 박 협회장님의 칸은 비워져 있었다.
“한 협회장이 사라지고 두 달 후였나, 한 협회장의 집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서류를 정리하다 발견했다. 한 협회장이 범인이지, 뭐. 그 양반 성격상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은밀히 서호가 원할 때 바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미리 절차를 다 밟아놓았을 테지. 이게 권력 남용이지, 뭐냐.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비리로 감옥에 넣어버리든 징계를 때리든 해야지.”
칫, 짧게 내뱉으시는 박 협회장님의 눈동자에 어째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내 사인은 그렇다 쳐도 당사자 없이 진행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나한텐 좀 말해주지.”
깊은 한숨과 함께 박 협회장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대략 여기까지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뭐든 물어보거라.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말해주마.”
“네, 감사합니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여보!”
집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천 팀장님이셨다.
천 팀장님을 보신 박 협회장님은 해맑은 웃음을 띠신 채 천 팀장님에게로 달려가 천 팀장님을 와락 안으셨다. 천 팀장님은 박 협회장님을 밀며 순식간에 피곤함이 깃든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떨어져.”
그러나 박 협회장님은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천 팀장을 더욱 꽉 안으셨다. 결국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시는 박 협회장님을 내버려 두시며 천 팀장님은 이내 포기하시고 짧게 한숨을 쉬셨다.
“드디어 찾았네.”
나와 눈을 맞추시며 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절 찾으셨어요?”
“그래, 전화도 안 받아서 본부에 갔더니 애들이 네가 박 협회장 만나러 갔다고 하더라.”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말로 천 팀장님에게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무음으로 해놔서…….”
“됐어, 죄송할 거까지야. 그보다 박 협회장이랑 하고 있던 일은 아직 안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요.”
“그럼 본부로 가자. CCTV 녹화본 좀 확인하고 싶어서.”
“네, 알겠습니다.”
나는 유서호에 관한 서류를 박 협회장님의 책상 위에 두고 겨우 박 협회장님을 떼어내시고 애절한 눈빛으로 천 팀장님을 붙잡는 박 협회장님을 가차 없이 무시하시며 걸음을 옮기시는 천 팀장님을 따라 본부로 갔다.
엘리베이터가 짧은 음을 연주하며 본부 도착을 알리고 문을 열자 그와 동시에 쿵! 무언가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넘어갔다!”
넘어가? 대체 뭐가…….
“……어?”
진우의 그 한마디에 시선을 돌려 나와 천 팀장님을 발견한 대원들의 몸이 일동 굳었다. 잠시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눈에 들어온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엘리베이터로…… 오신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근데, 너희는 지금 뭐 하는 거니?”
초록색으로 눈을 빛내며 선두에 서 있는 이준 형 뒤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대원들이 넘어가 있는 비상계단 문 앞에 서 있었다. 대체 얼마나 힘을 세게 준 건지 언뜻 보이는 완벽하게 넘어간 문에 선명히 금이 가 있었다.
“……아, 특경부 대원들 스트레스가 많이 심하구나. 몰라봐서 미안하다. 경위서에서 끝날 수 있도록 내가 한번 말을 잘해볼게.”
“예? 아니, 그, 뭔가 지금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횡설수설하는 인혁이 자신도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버버 거리다 끝내 말을 잊지 못했다.
“그래도 다음부터 스트레스는 훈련장 가서 푸는 게-”
“그,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먹통이 됐었어요! 문도 잠겼었고.”
엘리베이터가 먹통이 되었다는 보안과 관련된 일을 꺼내는 인혁의 말에 천 팀장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셨다.
“보안이 뚫린 거야, 아니면 그냥 단순 오작동인 거야.”
“확인해 봤는데 보안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근데 오작동이라기엔 뭔가 조금 찝찝하긴 해요.”
인화의 말을 듣고 곧장 천 팀장님이 본부 책상으로 가 능숙히 버튼을 누르시며 무언갈 심각하게 확인하셨다.
“……일단 이것 때문에 온 게 아니니까.”
“엘리베이터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게 문제야. 너무 완벽하고 깔끔해. 우선은 오작동이라고 결론 내리고 보안팀 가서 내가 따로 확인하고 연락 줄게.”
“알겠습니다. 바로 녹화본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나는 큰 창을 띄워 진우 납치 사건 당시와 CCTV 녹화본을 천 팀장님에게 보여주었다.
“두 녹화본 모두 실군단이 나온 시간대에 녹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 팀장님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시고 녹화본을 유심히 쳐다보셨다. 그때, 넘어진 비상계단 문 쪽에 서 있던 이준 형이 본부 책상으로 와 입을 열었다.
“업무 보시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천 팀장님 녹화본 확인하실 동안 도헌이랑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그래. 그럼 경보까지 확인하고 결과만 알려줄게.”
“네. 감사합니다. 도헌아.”
나를 부르고 먼저 앞장서는 형을 따라 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연희는 또 어디 갔고.”
내 물음에 이준 형이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박 협회장님을 만나러 가겠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연희가 대원들의 말을 무시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갑작스레 본부 전등이 깜박임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 깜박임이 멈추고 바로 연희를 찾으러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으나 작동을 하지 않았고 비상계단으로 가려 해도 문이 잠겨 있어 급하게 형이 속성을 사용하여 부쉈고.
“너랑 천 팀장님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왔을 때 왜 놀랐는지 이제야 이해하겠냐?”
진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진짜 박 협회장님 만나러 간 걸 수도 있잖아.”
“연희가 조금 이상해서 말이야.”
“이상했다고?”
“분명 팔찌도 착용하고 있었고 속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눈이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분위기도 평소랑 뭔가 달랐어. 마치 누군가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것인 마냥.”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고 속성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눈이 하늘색으로 빛날 리가. 게다가 조종이라.
그리고 보니 본부로 돌아오는 길에 박 협회장님을 만나러 간 연희를 보지 못했다. 정말 박 협회장님을 만나러 간 것이라면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간단하게 말해주면 CCTV랑 경보 모두 아무 문제 없어. 손 볼 곳도 없어서 일단은 본부 경보 제외 대상 명단 초기화하고 다시 설정했어. 나중에 이 대표랑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보안팀이 계속해서 주시할게.”
확인이 끝난 천 팀장님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셔서 말씀하셨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연희가 이상해진 상태로 박 협회장을 만나러 갔다고?”
다 들으셨군. 나는 천 팀장님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래야지. 연희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서두르자.”
대원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 나를 현혹하기라도 하려는 듯 멀쩡해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 팀장님과 다시 협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