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56화
최대한 빠르게 협회장 집무실로 달려갔다.
협회장 집무실에 도착해 박 협회장님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엉망이 된 집무실의 모습과 함께 박 협회장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다칠라.”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셔서 천 팀장님과 나를 보시며 박 협회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집무실 안쪽에 눈을 하늘색으로 빛내고 있는 연희가 서 있었다. 거친 숨을 힘겹게 내뱉는 그녀의 왼손에 익숙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평소 실군단이 사용하는 얼음 속성의 실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연희가 집무실로 찾아오더니 나한테 공격을 퍼붓고 있어.”
그때, 연희가 날린 얼음 파편이 박 협회장님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매섭게 날아왔다. 박 협회장님은 자신의 앞에 큰 벽 하나를 새워 연희의 얼음 파편을 막았다. 노란빛을 품고 있는 불투명한 벽에 무의미해진 공격을 직접 직면하고 있음에도 연희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었다.
달려들지는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얼음 속성의 실을 이쪽을 향해 휘둘렀다. 얼음 속성의 실이 번개 속성의 벽과 부딪치자 전류가 튀며 실의 끝이 서서히 마모되어 갔다.
“하아, 이걸 뭐 어떻게 해야 될지…….”
박 협회장님은 답답하신 듯 자신의 뒷머리를 마구 헝크셨다.
박 협회장님에게 연희를 제압하는 일은 복잡한 서류를 처리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런 박 협회장님이 곧바로 연희를 제압하지 않고 계속해서 망설이시고 고민하시는 건 혹여 제압 과정에서 연희가 다칠까 봐 염려하시기 때문이겠지.
“왜 이러는 건지도 당최 모르겠다. 연희가 스스로 나한테 이럴 리가 없잖아. 저 눈 봐봐. 저게 어떻게 우리 딸 눈빛이야.”
반쯤 돌아간 듯한 거친 눈빛이 박 협회장님을 향했다. 물론 그 안에는 꽁꽁 숨겨진 자책과 망설임이 가득이겠지.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우리 연희를…….”
낮게 읊조린 박 협회장님의 말씀이 허공으로 굳게 퍼져 나가자 덧없는 공격이 점차 무뎌지기 시작했고 끝내 잠시 공격이 멈추자 연희가 괴로운 듯 인상을 썼다. 금방이라도 이성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던 박 협회장님도 흔들리는 눈동자에 걱정을 한 아름 실었다.
“연희야…….”
걱정스러운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연희의 몸이 움찔 놀라며 미세하게 떨렸다. 갑작스러운 거친 숨을 연신 내뱉으며 연희가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고개를 숙인 채 가파른 호흡을 하던 모습도 얼마 안 지나 사라지고 눈을 하늘색으로 밝게 빛내며 앞으로 시선을 옮긴 연희가 공격을 재개했다.
나는 다시 공격을 이어나가며 점차 앞으로 다가오는 연희를 주시했다.
실군단이 쓰는 얼음 속성의 실, 고유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기본적인 얼음 속성만, 팔찌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속성을 사용하고 눈이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고.
헌데 왜 왼손잡이도 아니면서 왼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거지?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려나.
진우나 인혁, 인화처럼 후천적인 속성이 아닌 이상 팔찌를 착용하고 있으면 속성을 절대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연희 손목에 착용된 팔찌의 보석이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잠시만, 빛나는 보석?
연희의 팔찌 보석이 유독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나는 벽 바로 앞에 선 연희에게 다가가 팔찌를 더욱 자세히 확인했다. 이상함을 불러일으킨 보석에 실 같은 게 감겨져 있는 듯해 보였다.
“도헌아, 위험하다. 물러서.”
“팔찌입니다.”
“뭐라고? 팔찌?”
박 협회장님과 천 팀장님이 내 말에 의아해하며 연희의 팔찌를 쳐다보셨다.
“팔찌 보석에 실 같은 게 감겨져 있어요. 연희가 들고 있는 저 실과 보석을 보았을 땐 실군단의 짓인 것 같습니다.”
“……실군단?”
한껏 나직해진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에 몸이 절로 흠칫 떨렸다. 급히 옆으로 돌린 시야 안으로 범상치 못할 살기가 들어왔다.
“박제휘.”
“알아, 안다고. 그래서 지금 이 꽉 물고 죽어라 참고 있는 거잖아. 네 눈에는 보일 거 아니야.”
살며시 박 협회장님의 어깨에 올라간 천 팀장님의 손길과 거침없이 다가가는 목소리에 평소 같았으면 다정히 나왔어야 될 박 협회장님의 말씀이 더없이 거칠었다.
“더 이상 말 시키지 마. 진짜 눈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박 협회장님의 눈에 탁한 반짝임이 굴러다녔다.
“……계속 정신 잡고 있어, 여보.”
“나 날뛰면 말릴 준비나 하고 있어, 유하야.”
으득 이 갈리는 소리에 천 팀장님이 잠시 박 협회장님을 바라보시더니 짧게 한숨을 쉬셨다.
“가까이 다가가서 팔찌를 빼다가는 연희가 다칠 위험이 크니 부수는 수밖에 없겠네.”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연희를 주시하시던 박 협회장님이 천 팀장님의 말씀에 애써 힘겹게 힘 조절을 하시며 노란빛을 품은 불투명한 벽을 연희의 사방에 세워 연희를 속박했다. 자신의 결계에 다른 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몹시도 언짢은 모양인지 계속해서 스파크를 튀겼다.
“도헌아, 불의 나비 하나만 소환해 봐.”
나는 팔찌를 빼고 천 팀장님 앞에 불의 나비를 하나 소환했다. 천 팀장님은 작은 얼음 파편 하나를 만들어 불의 나비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불의 나비가 명령을 받은 듯 길을 개척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뿐히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 불의 나비의 종착지는 보석이었다.
보석 안으로 불의 나비가 들어감과 동시에 인내에 한계가 온 벽이 전류를 뿜어내며 작게 폭발을 유발했고 폭발에 못 이긴 팔찌가 완벽히 부서졌다. 혼합된 속성의 폭발이 팔찌를 산산이 부수자마자 연희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연희야!”
박 협회장님은 황급히 벽을 없애며 쓰러진 연희를 들어 소파에 눕혔다. 연희는 얕은 숨을 내쉬며 어디가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얼핏 보았을 때는 팔찌를 차고 있던 연희의 오른쪽 손목에 생긴 상처를 제외하면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손목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에서 새빨간 피와 가장 강렬한 붉은빛, 하늘빛, 그리고 미약한 노란빛이 공존하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천 팀장님과 박 협회장님이 연희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사이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서진 팔찌의 보석을 주웠다.
빛과 색을 잃은 보석에 얼음 속성으로 추정되는 하늘색의 실이 감겨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무리해서 버티느라 잠시 기절한 거뿐이니까 금방 일어날 거다.”
보석은 주운 그 순간,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음이 섞인 짜증 나는 그의 목소리가.
뒤를 돌아보자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모습과 함께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는 그의 눈이 나를 강렬히 환대하고 있었다. 역하게도.
“우리 구면이지, 이도헌?”
자신과 내가 절친한 친우라도 되는 마냥 어김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가 입을 놀렸다. 그 속에 담긴 살기도 숨기지 못하면서 말이지.
“……실군단의 우두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