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첫째, 지훈이

by 맥락

지훈이가 지난해까지 자주 입던 수영 바지를 꺼냈다. 아마 내년 여름에는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에 두 끼라도 잘 먹어.”


아내와 나는 항상 지훈이에게 그렇게 말한다. 아이는 그 두 끼도 잘 먹지 않지만, 작아진 옷들을 보면 몸은 또 몸대로 커진다.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작아지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되겠지. 지훈이도, 그리고 나도.


이제 아이는 ‘바보’라는 말을 습관처럼 말한다. 두 돌 지난 동생에게도 바보, 도라에몽에 나오는 진구에게도 바보, 식탁에 우유를 쏟은 자신에게도 바보.


“아빠 이거 나쁜 말이야?”


처음 아이에게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사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바보’라는 말은 낯설 뿐, 그 누구도 해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뭔가 슬쩍 묻을까, 나는 잠시 멀뚱했다.


“지훈이 같은 어린이한테는 나쁜 말이야. 나쁜 습관이야.”


나는 속으로 어찌어찌 만들어낸 대답을, 장난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나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아는 것처럼 말할 때면, 나는 우악스럽게 웃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 찌푸린 미간 사이에는 여러 마음들과 한 가지 마음이 우겨져 있다.


“미안, 아빠”

“아니야, 미안할 건 아니야.”


‘괜찮아’ 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또 ‘아니야’라고 말한다. 머쓱해진 내 얼굴을 머쓱해진 지훈이가 가만히 바라본다. 지훈이는 어느새 자라, 내 입과 내 마음을 넘겨다 본다. 길게 아빠의 마음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찾지 못한 말들이 많아 오히려 말을 짧게 끊는다. 그리고 이마에 난 작은 혹을 만져주듯이, 천천히 안아 거실 바닥 위를 함께 뒹굴거린다. 그러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진다.


지훈이가 네 살, 다섯 살 때. 지훈이가 자신의 머리칼처럼 듬성듬성 걷고, 어설픈 발음으로 여러 말, 뭉텅뭉텅 내어 놓을 때. 지훈이는 ‘아빠 진짜 대단하다’ 이 말을 자주 했다. 본드와 가위만 있으면 아빠는 모든 걸 고친다고, 아빠가 붙여 주는 밴드 하나에 아픈 배 나았다고 좋아 말했다. 아빠는 모든 걸 해결하고, 세상 모든 질문의 답을 안다. 지훈이가 깊은숨 한번 쉬고, 뛰어놀다 막 돌아온 강아지 같은 얼굴로 말한다.


‘아빠는 진짜 대단해’


나는 가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쩌다 내가 대단하지 않을까 봐 마음이 어설퍼졌다.


“아빠 우리 저 차 따라잡자.”


지훈이가 앞에 가는 검정색 차 하나를 지목한다. 나는 1600cc 자동차 액셀을 밟아, 그 차를 따라잡고야 만다.


“아빠, 이제 천천히 가도 돼. 저기 카메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