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좋은 글, 내가 좋은 글?
“사람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된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립준비청년인 나에게, 이 말은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늘 타인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왔다. 가정위탁이든, 시설 출신이든, ‘눈치 100단’은 생존의 기술이었고, 선택이 아닌 전제였다.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 행동이 누군가에게 문제 되진 않을까?”
스스로의 감정보다 타인의 평가를 먼저 배우는 삶. 그래서일까. 글을 쓸 때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공간, 내 생각과 닮은 누군가를 찾아가는 조용한 항해. 눈치로 버텨온 삶 속에서, 글은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책을 낸다는 건, 그와는 또 달랐다. 혼자 쓴 글이지만, 세상에 나오려는 순간부터 그 글은 누군가의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첫 책을 썼을 땐,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는 ‘책임’이라는 감정이 따라붙었다. 좀 더 잘 써야 한다, 더 잘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세 번째 책을 쓰며 처음으로 ‘도움’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누군가에게 가닿는 글, 누군가의 삶에 작게라도 닿는 글.
그것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
그 글에 닿을 수 있었던 건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으로부터였다.
작년, 나는 나름 한 권의 소설을 완성했다. “내가 소설을 써내다니.” 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연히 스레드에서 마주한 한 문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타 작가 모집" 단순한 카피였지만, 내 마음에 파문을 남기기엔 충분했다.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 없던 나에게, 그것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처럼 느껴졌다. 망설임도 잠시, 나는 홀린 듯 지원 버튼을 눌렀다.
1차 합격. 그리고 2차 면접. 면접을 앞두고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나를 가장 나답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마늘빵도 결국, 빵이다.”
조금 엉뚱한 비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겐 정확한 설명이었다.
마늘 향, 버터 풍미, 크런치한 식감 그 모든 것이 덧붙여지기 전에, 본질은 결국 ‘빵’이라는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화려한 포장보다, 본연의 재료가 중요한 것처럼, 꾸미지 않은 나의 언어와 경험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나를 ‘굽히지 않고 구워진 사람’으로 설명했다. 베이킹파우더처럼 일상의 고민들 속에서 부풀어 오르고, 뜨거운 오븐 같은 시간 속을 지나 지금 여기, 작가라는 이름 앞에 서게 된 사람으로.
그렇게 합격 메일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소설이었다. 나의 첫 번째 ‘대중에게 닿는 글’. 책 초고를 완성 후,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귀에 오래도록 남은 한 문장이 있었다.
“마엘이의 글은, 영화로 치면 독립영화야.”
“지금까지는 마엘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지.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글을 써보면 어때?”
처음엔 충격이었고, 이후엔 전환이었다.
‘대중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품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을 쓰는 시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을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과정은 내 안의 세계를 하나씩 부숴 조각으로 나누는 일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글이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나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는 걸.
우리는 종종 거대한 고통, 엄청난 시련이 있어야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나를 움직이게 만든 건, 아주 사소한 일상의 파편들이었다. 그저 지나쳤던 말, 오래 묻어둔 감정, 작고 사적인 기억.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렸고, 그리고 다시 쓰게 만들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을 때,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토록 위대한 사람도, 이렇게 단순한 말로 우리를 설득하려 했구나.”
그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고,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제안은 거창하지 않았다. 명령도, 계몽도, 지시도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말했다.
“살아볼래요?”
그 한 줄의 물음은 수많은 말보다 강했고, 수많은 이론보다 명료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는 책의 초입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수용소에 있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나열하지 않았고,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하나의 인간’으로 책 속에 서 있었다. 나는 그 겸손함에서 글이 가야 할 방향을 배웠다. 진짜를 쓰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글은 자랑이 아니라, 살아낸 조각을 건네는 일이라는 걸.
그 ‘낮춤’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써졌어요" 같은 책임 회피의 말이 아니다. 열정이 빠진 공허한 겸손도 아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낮춤은, 치열하게 살아낸 나를 오롯이 보여주는 용기다.
내가 견뎌낸 시간, 내가 통과해 낸 감정,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사유.
그 모든 것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 한 문장으로 건네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였다.
이 낮춤은 단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그 치열함의 무게만큼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위치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는 일이다. “나도 여기까지 오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렇게, ‘삶의 제안’을 말할 수 있을 때, 글은 비로소 철학이 됨을 느껴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의 원천에는 이전에 쌓아온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책을 쓰기 위해 나는 100권이 넘는 책을 키워드별로 읽어 내려갔다. 그 안에서 ‘철학한다’는 것, ‘사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몰라도 될 것들까지 알아가야 하는 상대적인 비교와 치열한 고민의 시간들도 함께 겪어야 했다.
말 그대로, 철저한 공부였다.
지금도 그 시간은 여전히 ~ing다.
완성이 아니라 축적,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대중성을 갖는 글, 그건 단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내가 한 발 내려가는 글’이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를 버려야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들도 들을 수 있는 자리’까지 끌어내려야 했다. 아는 척하지 않고, 설명해야 했고 공감받기보다, 공감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의 끝은 자랑이나 선언이 아닌, ‘작은 제안’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대중성을 갖는다는 건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이 누군가의 언어로 들릴 수 있도록 다듬는 일이라는 걸. 그 길의 시작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누군가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말해준다. 누군가에게 한 사람의 생애가 깊게 새겨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언어로. 나를 다지기 위한 시간으로서의 글을.
글을 쓸수록, 나는 더 많이 묻게 된다. 이야기를 쓴다는 건 결국, 나를 꺼내어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내어주고, 질문을 내보이며, 때로는 나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나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심을 다해 쓴 글은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는다는 것을. 내가 용기 내어 한 줄을 쓸 때, 어딘가에서는 그 문장을 읽으며 조용히 위로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묻는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이 글은 나로부터 시작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의미’를 찾는다는 건, 어쩌면 나를 잃지 않는 글을 써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문장은, 어느새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한 문장이 누군가의 밤을 견디게 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 그 문장을 썼던 내 어둠도 조금은 환해졌다. 누군가의 고백이, 누군가의 기억이, 내 글과 포개질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잘 쓴 글’보다 ‘닿는 글’을 쓰고 싶다는 걸. 단어의 완성도보다 마음의 온기를 먼저 바라보게 된다는 걸. 책이 한 권 나오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 안에 담긴 고백은, 어떤 화려한 말보다 더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여전히 나는 계속 써나간다.
눈치 100단으로 살아왔던 날들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 순간들을,
누군가에게 살아볼 용기로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