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불편하지 않을 뿐,
최근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미국 교수님이 한국에 강의 차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 교수님은 강의 외에도 처음 오게 된 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관광도 즐기셨다. 그리고 강의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이 강당에 서기 전 한국에 처음 오는 것이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많은 노인분들은 보였지만, 수동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이 기술이 좋다고 하더니, 의학이 너무 발전해 장애인이 없구나라고요"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그 교수는 한국을 돌아다니는 내내 단 한 대의 수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보지 못했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조금 알아듣기 쉽게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 강의를 나온 교수님은 장애학과 재활학을 가르치고 계신 분이었다. 내가 장애를 겪게 되면서, 느낀 한국 사회의 장애인 문제는 장애 본질적인 문제 보다, 사회 자체의 문제였다. 장애인은 소수자이기에 대부분은 배제와 차별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예컨대 일괄적이지 않은 시스템의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과연 우리의 일생에서 장애를 겪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장애는 불현듯 갑자기 찾아온다. 질병 혹은 사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자연히 되는 장애인이 있다. 바로 노년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노년기에는 당연히 모든 기능이 퇴화된다.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스스로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불과 30-50년 전만 해도 사실, 노년기에 접어드는 나이는 자연스레 죽음으로 연결되었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이제는 내 삶에서 장애를 지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한 것은, 장애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면서 인생을 살아보니, 사실은 살만하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닿았다. 누군가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가장 친한 동기가 해준 말이 있다. 나를 가장 힘나게 했던 말
휠체어 탄 것 그것 하나 외에는 달라진 거 없잖아!
너는 너야! 그러니까 기죽지 마!
그렇다, 휠체어를 탄다는 것 그 외형상의 변화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 스스로가! 변한 것은 없었다. 그냥 나일뿐이다! 그렇다. 이 말에 의미를 두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종교의 그 신이 나에게 이 일을 그냥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동기 부여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주저앉아있던 나를 일으켰던 한마디, 지금도 가장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친구는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정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노력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 그 분야에서 최고라는 말을 듣고, 존경을 받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부족한 부분은 존재한다. 세계의 석학이라고 추앙을 받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 장애를 겪었고, 헬렌켈러 또한 청각, 시각을 모두 잃었던 시청각 장애인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한국 땅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선천, 중도 장애인들은 그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삻을 회복한다. 나 또한 재활이 힘들다고 들었지만,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못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과 하나의 기능을 되살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모든 재활 과정과 사회복귀 과정을 담기로 생각한 것은 그리 쉬운 판단과 결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일이었고, 나 또한 그것을 수용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끝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를 남기고 새기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처음엔 소설로 남길까?라고 생각하여, 소설 형태로 녹여보려고 했었으나, 그것 또한 현실이 소설화가 되는 순간 미화라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기에 에세이 형태로 기록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끝날지, 나도 내 삶을 살아가는 중이라 알지 못하지만, 그 살아가는 삶 안에서 찾아갈 내 미래와 과거는 반드시 연결되어 있기에, 그 과거를 지우고 미래를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미래는 펼쳐진다.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는 미래만이 아니라, 과거 또한 영향을 미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현재와 미래를 공존하고 있다. 처음 읽어나갈 때 그 1초의 시간도 과거가 되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과거라고 해서 당신의 미래 또한 부정적이라고 단정 짓지 말길 바란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당장 불편한 것을 우리는 장애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재적으로 모두 장애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장애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하나쯤 부족하고, 힘든 것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느냐? 안되느냐? 두 가지의 차이와 경, 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늘 기억하길 바란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노력하는 사람만 있을 뿐,
IMPOSSBLE을 I'm possble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