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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Nov 13. 2019

바라나시에 관한 짧은 필름

인도 여행을 해봤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하는 대답. “그럼요, 저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 인도였는걸요.” 그러면 늘 되돌아오는 질문은 며칠이나 있었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조금은 자신이 없어진 채로 대답한다. “딱 열흘이요. 다른 데는 못 가봤고, 바라나시에서만 열흘 있었어요.” 그리고는 덧붙인다. “열흘 동안 하루에 만 원씩, 딱 10만 원 썼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짐 쌀 줄도 모르고,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던 때, 심지어는 여권도 부랴부랴 만들고, 왜 뚝딱 만들어주는 게 아닌 2박 3일이나 걸리는 건지 의아했던 때. 우연히 보게 된 광고사진 한 장이 나를 바라나시로 가게 만들었다. 바라나시 이후로도 많은 여행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그때가 여행 인생 중 가장 겁이 없고, 무작정 즉흥적으로 행동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바라나시를 떠올리고 있으면, 정말 많은 장면들이 스쳐간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강렬하게 이미지가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고, 아직도 맡을 수 있는 그때의 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휴학생 신분으로 알바 후 주머니가 두둑했던 것도 아니고, 고작 한 달 다닌 영화 수입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 반 강제로 관두게 된 처지였다. 처음 사보는 비행기 표에,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비싼 비자 값과, 여권 만드는데 드는 비용을 제외하니 1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열흘 동안 10만 원밖에 쓰지 않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 출발 일주일 전 문득 계획하고, 바로 실행에 옮긴 터라, 부모님께는 비자를 발급받을 때쯤 반 통보를 했었다. “나 인도 갔다 올게!” 그랬으니, 용돈을 바라기는커녕 욕만 덜 먹으면 되었다.


그렇게 스물한 살의 코 묻은 돈으로 먹었던 바라나시의 음식들, 해외에서 처음으로 먹어본 양배추 김치의 신선함, 그 양배추 김치로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은 뒤의 개운함, 매일같이 마셨던 짜이, 마신 후 흙으로 빚은 듯한 그 컵을 깨는 맛에 열심히 마셔대었다. 주문하고 한 시간 반을 기다린 탄두리 치킨, 지금까지 알고 있던 카레는 카레가 아니었구나를 처음으로 느꼈던 정통 인도 토마토 에그 커리, 이름을 차마 외우지 못했고, 아무리 그 뒤로 여기저기서 이름을 확인해봤지만 아직까지도 외우지 못한 맛있었던 인도 전통 간식거리들.


그렇게 스물한 살의 코 묻은 돈으로 지냈던 바라나시의 숙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잤는지도 모를 더러운 숙소, 샤워 중에 나가는 전기, 열흘간 한 곳의 숙소에서 청소라도 맡기면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가 훔쳐가기라도 할 것 같아 청소 한 번 하지 않았던 방, 삐그덕 거리는 침대에서 가만히 새우잠을 자며 덮었던 눅눅했던 이불, 밤새 나의 거칠고 짧은 꿈들을 받아주던 누런 배게, 방의 작고 뿌연 창을 통해 내다보면 보이던 골목의 틈새. 어둡고 음침한 계단을 내려가면 가끔씩 만나던 덩치가 컸던 숙소 주인과 숙소의 스태프들. 아직도 나는 그들이 바라나시의 마피아 조직들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숙박업은 뒷전이고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팔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한 5일 정도는 끈질기게 무언가 살 것을 강요하다가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 나를 그 이후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더욱 방 청소 요청을 하지 못했는가 보다.

골목이라는 것에 대하여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던 곳이 바라나시였다. 방향을 가늠하지 않고 무작정 걸을 때마다 만나는 골목, 모든 골목이 새로웠고 신비로웠다. 모든 골목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의치 않고 사뿐히 발도장을 찍곤 했다. 덩치가 큰 소가 가로막아 감히 지나지 못했던 골목도 있었고, 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에서부터 흘러와 고인 갈색 물 웅덩이 때문에 지나지 못했던 골목도 있었다. 골목마다 나던 향기에 후각을 곤두세우며 찬찬히 그 냄새를 음미하기 바빴고, 또 그 냄새의 한 줄기 가닥을 잡으려 꽤 오랫동안 늘어져 있어 보기도 했다.
어떤 골목에서는 이미 그 짧은 기간 내에 아는 얼굴들을 사귀어 매일 같이 드나들던 가게가 생기기도 했다. 매일 같은 가게에서 짜이를 마시게 되었고, 어제는 그냥 지나쳤으니 오늘은 기념품을 살 건지 물어보는 게 인사가 된 이들도 있었다. 어떤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는 골목 한 줄기, 그리운 얼굴 하나 어느 낡은 벽에 조용히 그려보는 골목 한 줄기, 새로운 인연에 설렘이 잔잔히 깔리던 골목 한 줄기. 코너를 돌 때마다 들던 작은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감을 들키지 않으려 씩씩하게 코너를 돌던 내 모습, 그리고 아마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봤을 골목 벽의 뚫린 창문들.


그렇게 골목 줄기들을 몇 차례 타고 다니다 보면, 갠지스 강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아… 나의 기억 저 깊은 곳에서 언제나 빛나게 차오르고 있는 갠지스 강. 갠지스 강에서 마주한 새벽의 해는 여전히 뜨겁고 찬란하며, 갠지스 강에 담가보았던 손 끝에선 아직도 갠지스 강에서 얕게 튀어 오른 물 방울이 맺혀 있다. 갠지스 강가를 따라 주욱 늘어서 있던 가트들. 굉장히 길게 이어진 계단의 구역, 구역마다 가트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 모든 가트들의 구석, 구석마다 해가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공평하게 가트를 어루만지고 있었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가만, 가만 나도 그들 틈에 끼여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지어본다. 그들의 여유로움을 닮고 싶어 하는 여행자 하나와, 달리 여유를 부려야 할 필요가 없는 바라나시의 사람들.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를 여러 번 연달아 들어도 나는 그대로 바라나시였다. 다른 곳도 아닌 그렇게도 보고 싶던 갠지스 강의 바로 옆이었다. 노랫말을 따라, 그 리듬을 따라 나는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았다. 지금 그 자리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장소에 대한 만족감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그때부터 장소가 주는 편안함이나 아늑함 보다는 약간의 긴장감과 예측하기 어려운 설렘에 중독되어갔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한 집에 살았던 나에게 집이 주는 안정감보다는 집을 떠났을 때의 흥분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들을 따라 가트에 가로로 누워도 보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바라나시의 햇빛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맞춰 나도 가장 뜨거운 사람이 되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나도 그들과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좋아하던 향기가 잔뜩 배어 있는 골목을 거친 후 가트로 나오면 그 향기가 나에게도 베어, 함께 가장 뜨거워지는 것이다. 발등 위에 쪼리 자국이 깊게 새겨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갈증을 느끼곤 하여, 굼벵이처럼 느리게 일어나 짜이 한 잔 마시러 가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것을 읽지 않아도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시간 맞춰 움직이지 않았을 때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인연이 생긴다는 것을 운이 좋게도 첫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 전 “인도 갈래?”라고 했는데, 나만큼이나 즉흥적으로 “그러자!”라고 했던 S와 숙소 옥상에 올라갔다. 해 질 녘이었고, 우리는 술을 구하기 힘든 그곳에서 어찌어찌하여 구한 병맥주를 손에 쥐고 있었다. 바라나시의 모든 건물들은 대체로 높이 비슷했다. 모두가 똑같은 뷰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특한 일인지 처음 깨달았다. 홀로 차지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누리는 같은 크기의 하늘, 그림자 없는 노을, 어디에 있건 정면에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자리, 자리들. 점점 홍조를 띠는 하늘을 향해 우리는 연거푸 잎담배의 연기를 내뿜었다. 짙은 갈색의 잎으로 두껍게 말려 있는 비리라고 불리는 인도 잎담배.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했고, 무엇이든지 해보지 않고는 어떻다고 감히 말할 수 없던 시절. 바라나시의 하늘 반, 우리가 내뿜는 잎담배의 연기가 반,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촘촘히 메꾸고 있던 인도 맥주의 거품들. 세상은 온통 우리 것이었고 더 이상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감히 행복이라는 단어, 만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순간. 이 낡은 도시가, 오래도록 따뜻한 숨을 머금고 있다가 방금 우릴 향해 톡 하고 뱉어준 것처럼. 그 투명한 숨 안에 잠기어 순간이 깨지지 않기만을 바라던 그 날 저녁. 하늘이 보랏빛이 될 무렵 나와 S는 춤을 추기 시작했고, 잎담배가 주는 어지러움에 자연스레 몸을 가누다 보니 그것은 이내 춤이 되었고, 얕은 바람결에 우리는 덩실거리는 꼴이 되었다. 하하호호, 낡은 도시 속으로 우리의 작은 웃음소리가 옅게 스며들었고, 이내 어느 다정한 평일 저녁의 일상처럼 남았다.

간밤의 잔상이 남아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올라가 본 아침의 옥상. 아, 간밤에 S와 내가 꾸었던 꿈같은 곳이 여기였지 싶어 수줍게 주변을 살핀다. 여전히 고만고만한 높이의 낡은 도시는 구석구석 태양빛을 담고 있었다. 옆 건물, 또 옆 건물의 옥상이 눈에 들어온다. 몇 마리의 원숭이가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고, 부지런하게 빨래를 널며 아침을 시작하는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트마다, 건물의 옥상마다, 평평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는 모두가 색색의 빨랫감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빨랫감 주변 공기는 빨랫감의 색을 띠고 있었다. 색이 희미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내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한 얇은 공기층이 서로 만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분명히 바라나시의 평범한 골목 위에서, 일상이 담긴 가트 위에서 그렇게 작은 마법이 일어났다. 모두들 보고 있느냐고, 골목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광경이었다.
누군가에겐 환상적인 낭만이, 누군가에겐 지독한 현실, 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모두가 일상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된 빨래에 지친 여인들은 땀투성이가 되었고, 그녀들의 팔 근육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낡은 바라나시는 계속해서 알록달록하게 꾸며지고 있었고, 그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보는 것은 나뿐이었다. 원숭이들은 계속해서 그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고, 가끔은 그 아름다운 빨랫감 위로 지저분한 가루들을 흘리고 다니곤 하였다. 그것을 못마땅해하는 것 또한 오직 나뿐이었다. 여인들의 땀이 빨랫감 위로 싸라기눈처럼 흩날렸다가 또 금방 말랐다. 어떤 것으로도 걸러지지 않은 채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빨랫감들은 이내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조차도 낭만적이라 느꼈던 바라나시에서의 짧은 필름.

바라나시를 다녀온 후부터 비로소 내가 가진 관심사의 5할은 여행이 되었다. 아직은 여행이란 것을 스스로 정의 내리기는 부족했던 그 시절에, 꾸준히 여행을 꿈꿨다. S는 바라나시 여행 이후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보고 사진 찍었던 길거리의 강아지 몇 마리 때문이라고 했고, S는 꽤나 오랫동안 채식을 실천하였다. 우리는 각자의 방향을 스스로 선정하는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바라나시는 언제나 그립고, 생각하면 언제나 나의 눈에만 펼쳐지는 한 폭의 아주 잘 그려진 그림이다. 그때의 즉흥을 바라나시에 다시 쏟지 못해서일지, 그때 느꼈던 것을 또 느낄 자신이 없는 건지,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나일지 그곳일지. 그러므로 여전히 그리움을 품으며 아직 다시는 닿지 못한 곳, 나의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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