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을 걸었다. 여러 날을 연이어서 걷기도 했고,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강도 높게 걷기도 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해서 걷기도 했고, 누군가가 알려주는 방향대로 걷기도 했다. 앞선 이들이 만들어놓은 표시를 찾느라 애쓰기도 했고, 가끔은 표시를 보고도 너무도 가파른 길이라 모른 척하기도 했다.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도 온몸이 축축이 젖어 오들오들 떨며 걷기도 했고, 걷기에 이보다 좋은 날은 없을 거야, 라며 전날 젖은 양말을 가방에 매달고 말리며 걷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 끝이 날까 싶은 오르막길을 걷다가도, 다음날이면 한없이 이어진 평지를 지루하게 걷기도 했다. 일행이 있을 때도 있었으며, 혼자인 적이 더욱 많았다.
혼자 걷다 보면 으레 길을 잃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늘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었다. 네팔의 어느 산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때였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지도를 볼 수 있는 인터넷도 없었다. 올라가야 하는지, 내려가야 하는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키가 작은 할아버지 한 분이 무언가를 잔뜩 어깨에 메고 지나갔다. 길을 헤매다가 처음으로 만난 누군가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의 지명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왼쪽을 한 번, 오른쪽을 한 번 가리키자 할아버지는 처음 내가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고갯짓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멀뚱히 서있자, 뒤를 한 번 돌아 본인을 따라오라는 뜻으로 한 번 더 고갯짓을 했다. 나는 할아버지보다 두 걸음 정도 뒤에서 걸어갔다. 할아버지의 어깨에 들린 포대자루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많이 무거울까? 도와드려야 하나? 괜히 민폐만 끼치면 어떡하나? 하다가 내 눈에 들어온 건 할아버지의 발뒤꿈치였다.
나는 그 날 처음 알았다. 사람의 발뒤꿈치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있고, 흔적이 있고,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의 그것은 단단했고, 조금은 지친 표정이었지만 강인했다. 네팔 어느 산 동네의 풍경 속으로 어정쩡하게 스며들어간 나의 눈에, 할아버지의 발뒤꿈치는 과연 이 풍경에 가장 어울리는 점 하나였다. 할아버지의 발뒤꿈치가 길가에 닿을 적마다 바닥의 모래 몇 알이 할아버지의 발뒤꿈치에 붙곤 했다. 그리고 또 몇 발자국 뒤에 그 모래알들은 떨어지곤 했는데, 그 단순하지만 꾸준히 움직이는 형상을 나는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지나온 길을 내가 감히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풍경이 지금이 되기까지 할아버지의 역할이 얼마간은 있었겠다 라고 생각해보았다.
몇 달을, 몇 년을 계속해서 같은 길을 같은 목적으로 걷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매일은 아니겠지만, 간간히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가끔은 일행과 함께이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걸어 나가는 기분은 또 어떤 것일까? 매일이 같지만 내일이 또 기다려지는 길이 있다는 것, 작은 변화에도 눈치채고, 작은 흠집에도 기꺼이 따스한 눈길과 마음 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아끼고, 생각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려 단조로워진 풍경에 스며든다는 것, 색을 맞추고 결을 따라가 그 안에서 튀지 않게 것, 평생을 걸어간 풍경 속에서 비로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 할아버지의 세월과, 풍경의 세월을 물들인 그의 발뒤꿈치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들.
그 날, 할아버지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무사히 도달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할아버지의 발뒤꿈치를 따라 걸었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풍경 속에 녹아내려진 채였다. 길은 약간 거칠었지만, 적당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함께 걸었을까. 어느덧 고개가 끝나고 발아래로 작은 마을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마을로 향하는 얌전한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계속 무표정이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아주 잠깐이지만 미소가 스쳤다. 할아버지의 발뒤꿈치와 함께 절대로 잊히지 않을 그 날을, 그 길을 상징하는 할아버지의 미소. 그 따스함을 안고 내려가는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웠던지.
그 날은 그 날의 해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길의 가장자리를 비춰주던 날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또 다른 얼굴이 담긴 발뒤꿈치를 내보이며, 내가 가장 잘 아는 길을 앞에서 안내하게 될 날을 그려보았다. 따스한 길 위로 따스하게 스며들어가 보리라, 쉽지 않은 길일지도 모르겠지만, 꽤나 오래 걸어 다닌 탓에 나만이 알 수 있는 발걸음이 총총히 박힌 길이리라. 그 날 하루를 마무리지으며 이불속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따스한 미소를 따라지어 보았다. 나의 발뒤꿈치도 나를 따라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