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가 높은 곳에서

by 오션뷰

지대가 높은 곳을 찾아갔다. 가장 먼저 어둠이 깔리고, 가장 먼저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지난 이야기는 지난 곳에 두고, 단지 높은 그곳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잔뜩 담으러 떠났다. 울창했고, 맑았으며, 신선했다. 아무 말이나 흘려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 있다면 이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길에서 만난 이들이 모여 함께 올라가 어느 한 곳을 자리 잡았다. 소박하게 만들어 놓은 테이블이 있었고, 적당한 사이즈의 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길 위에서 쏟아낸 땀방울들이 어느샌가 식었고, 우리의 자세는 한층 편안해졌다. 유난히도 맑았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 중 몇 명은 그 지나가는 모습을 아스라이 쳐다보았다.


지대가 높은 곳은 정말이지 한 순간에 바탕색이 바뀌었다. 올라오느라 쓴 기운을 보충하느라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우리는 온통 어둠에 휩싸이게 되었다. 내내 어둠은 차가운 것으로만 생각했던 우리에게 전에 없던 온기를 느끼게 해 준 높은 곳에서의 어둠이었다. 그 어둠 위로 우리는 낮게 깔린 몇 개의 점들을 보았다.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높이에 매달린 것들 사이로 우리는 조심스레 움직여보았다. 날개 없이도 날 수 있고, 영상 통화를 할 수 없어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누군가의 얼굴도 있다.


이 세상에 이름 붙여진 무수한 많은 것들은 우리보다 낮은 곳에 있었고, 그들 중 반 이상은 이 밤이 지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으리. 그 어떤 빛도, 그 어떤 속삭임도 곁에 머물지 않아 그대로 깊이 잠들리. 깨어나면, 어제와는 다른 이름을 받고는 어제와 같은 얼굴로 그렇게 미적지근한 하루를 맞이하리. 이 세상에 태어나 소비된 모든 것들을 향해서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하고, 그렇게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만 몰래 바라보리. 무엇 하나 창조해내지 못하고 마감하는 삶에 대해, 우리가 이 곳으로 향하면서 탔던 버스들에 대하여, 오늘 우리가 놓친 일몰에 대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도수가 꽤나 높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둘씩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지대가 높은 이 곳도 우리와 취해갔다. 우리가 위치한 산 중턱은 술기운에 몇 번이고 높이를 바꿔댔으며, 우리는 그것을 재밌어했다. 적당한 취기와 적당한 어지러움 속에 우리의 모든 것이 통째로 흔들거렸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지나간 것은 저 아래에 있고, 여기에서의 이야기 또한 아래로 흘려내리면 그만일 뿐이었으니까. 술기운이 더 오르자, 우리는 모두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반대 편에서 우리처럼 춤을 추고 있을지 모르는 또 한 무리를 향한 춤이었다. 되돌아오는 춤사위는 없었지만, 그것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시간이 꽤나 걸리는 것뿐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느덧 우리는 이 곳의 밝았던 모습을 기억하지 못했다. 새벽은 영영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았고, 우리는 다시 지나온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여전히 지대가 높은 그곳은 맑았고, 더욱 청량했고, 손가락 사이를 그리고 발가락 사이를 휘감는 부드러운 어떤 것이 자꾸만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 몇 시간이고 눈을 감지 못했던, 노래를 멈추면 온 세상이 더 이상 우리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아 밤새도록 노래를 멈추지 못했던, 함께 맞잡은 손을 놓치면 다시는 서로의 손을 매만질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온몸의 힘은 빼더라도 잡은 손만큼은 절대 놓지 못했던. 그 높은 곳에서의 밤. 길에서 만나 높은 곳까지 함께 올라간 이들의 이야기. 날이 밝은 것이 두려워 밤새도록 춤을 추었던 우리들의 지난밤.


함께여서 더욱 빛났던 시간 또한 이미 지나간 것이 되었고, 우리는 그대로 그곳에 지난밤을 두었다. 몇몇은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보이며 지대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 높이에 만족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남아 간밤에 반대편으로 보낸 춤을 생각했다. 하루 혹은 이틀쯤 기다리는 것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어느 방향에선가 날아올 춤사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맑고 청량했으며, 일행을 떠나보낸 그곳은 숨 막히게 조용했다. 반대편에서 날아올 춤사위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난 또 다른 밤을 맞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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