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이었다.

by 오션뷰

나는 불이었다. 내가 타올라야 할 때를 알고, 어디를 향해 그 뜨거움을 내뿜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타오르는 순간에 모든 진심을 쏟을 수 있어 행복했다. 설령 그 뜨거운 한 때가 지나가더라도 불씨만은 촉촉하게 남아있을 것임을 알기에, 많은 것을 문제 삼아 미리 걱정하지 않았다. 난 너에게 매우 뜨겁고 싶었다. 미적지근한 너에게 나의 온도를 보여주고 싶어, 뜨거움의 세기를 셈하지 못하고 너무 활활 타올랐던 적도 더러는 있었다.

나는 불이었고, 그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 언제까지고 나의 불씨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 전날 네가 내게 남겨준 몇 마디의 말들이, 다음 날 아침이면 곧고 마른 채 내 곁에 흐드러져 있곤 했다. 내가 그 곧고 마른 말들을 몇 날 며칠씩 핥아보고, 음미하고 아주 천천히 씹어 삼키느라 불은 꺼질 수 없었다. 그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너는 모든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워했다. 너는 하루에 단 몇 마디의 말들만 내게 건넸고, 너의 입맞춤에는 소리가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나와 함께 뒤섞이기보단 나의 온도를 낮추려 애를 썼는데, 네가 그렇게 애를 쓸 때마다 짓는 무심한 표정에 나는 더욱 활활 타오르기만 했다. 조심스러운 네가 마음을 먹고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나를 안아줄 때면 난 모든 것을 포기해도 너의 품만은 포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네가 날 안아주는 모양새에 맞춰, 난 나의 모양을 조금씩 바꿔 나갔다. 불인 나는 매우 유연하여 네게 꼭 맞게 날 변형시킬 수 있었다. 내가 변해가는 모습에 너는 또다시 지레 겁을 먹고 나와의 간격을 조금 벌렸을지언정, 나의 온도를 변화시킬 순 없었다.


너는 사랑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너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저 나도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너는 그런 감정을 쉽게 느끼는 거 보니, 아직 어리구나’라는 말을 네게서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너는 내게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자고 했다. 나는 네가 날 친구라고 부르는 게 싫었다. 네가 날 친구라고 지칭할 때마다 내 얼굴에는 특정 표정이 지어진다고 했는데, 네가 내 표정을 읽을 때마다 넌 ‘특별한’ 친구라고 정정했다. 너는 내게 오랫동안 우정을 함께 하자고 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특별한 관계의 특별한 주인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난 노력했다. 나보다 오래 산 너의 모든 것에 나를 맞춰가기 시작했고, 나는 초반의 나를 잃어갔다. 그것은 어떤 정형화된 패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반의 나를 잃기 시작하자 너는 내게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사랑을 멈출 수 없었고, 거기엔 멈춰야 할 정당한 이유도 없었고, 있다고 해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네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

내가 널 있는 힘껏 껴안으면 너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고 대꾸했다. 그런 너에게 나를 보여주려고 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꾸만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자 너는 지레 겁을 먹었다. 우리 사이가 두터워지는 것이, 아니 어쩌면 누군가와 서로 모든 것을 나눠야만 하는 그런 것이 너의 숨구멍 하나, 하나를 턱 턱 막히게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너는 내게 더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기 싫다고 했고, 나는 무너졌다.


난 불이었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뜨거울 줄 알았다. 남겨진 감정들이 여전히 작은 불씨를 이뤄 내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더 이상 쓰일 길 없는 감정뿐이었다. 소모될 수 없는 감정의 온도는 따뜻했고, 그 온도로 네가 떠난 자리를 데워보았다. 더 이상 미풍도, 네가 남겨 놓는 곧고 마른 말들도 없었다. 그토록 뜨거웠을 내 옆에 있던 널 생각해본다. 나의 온도를 느꼈을 너를, 더 이상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않아도 될 널 생각해본다. 마치 네가 곁에 있는 것처럼, 아주 조금 남은 불씨를 있는 힘껏 꼬옥 안아본다. 뜨거웠던 내가 미적지근한 널 꼬옥 안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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