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들어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마지막 이야기

by 오션뷰

우리는 묵시아(Muxia)까지 가기로 했다. 피니스테레의 여운을 그대로 끝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묵시아까지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서 찬란히 조각나는 시간들을 다시는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레오, 나탈리아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그럼으로써 완전히 순례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작은 버스 창밖으로 우리가 애써서 걸어왔던 길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곳들이 완벽한 풍경을 이루지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떠나도, 길은 꿋꿋이 다른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또 보낼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물컹거렸다.


나탈리아의 눈시울이 먼저 붉어지기 시작했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도 점차 붉어졌고, 나도 함께 상기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안았다. 레오가 그런 우리를 한 번에 안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었고,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었다. 우리가 눈물을 비치는 것에 대하여, 이내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소리 내며 울부짖는 것에 대하여, 눈이 시뻘겋게 부어오르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묵시아로 향하는 길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묵시아의 하늘은 파란색이면서도 회색 빛이었고,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면서도 흐릿했다. 묵시아의 바다 역시 푸르르면서도 탁했고, 빛나면서도 맑지 않았다. 그렇게 묵시아의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우리도 천천히 흐릿해질 것만 같았다. 서로를 통해 각자의 존재를 여러 차례 확인한 후,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레오는 알몸으로 뛰어들었고, 나와 나탈리아도 허리춤까지 잠겼다. 우리는 바닷속으로 할 수 있는 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바다는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깊게 들어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바닷물을 여러 차례 마셨다. 흐릿한 바닷물을 마시고, 맑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발로 길을 걸어낸 우리들이, 두 발을 온전히 땅에 딛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그 어떠한 감정도 제대로 싣지 못한 채 우리는 바닷속에서 계속해서 꿱꿱거렸다. 완고하던 하늘이 흔들리며 우리의 외침을 받아주었다. 팔다리를 휘저어 수면 위에서 우리의 또 다른 호흡을 만들어내었다. 차갑게 응어리진 다리의 근육도 한껏 가벼워졌다.


바다에서의 오후를 보낸 후, 우리는 어제도 삼 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더 이상 안주거리가 되지 못하고, 길에서 챙겼던 온갖 작고 큰 환희는 다시 길을 떠난 뒤였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술을 마셨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 탓에 피곤하지도 않다며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었다. 누가 더 크게 웃고 즐길 수 있는지를 내기라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실은 우리 모두 그때의 시간이 희미해지는 것이 두려워 쉽사리 밤이 깊어감을 모른 체했을 뿐이었다.


등산화 대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작은 시내의 레스토랑과 카페를 찾아다니는 우리를 순례자로 보는 이들은 더 이상 없었다. 알베르게를 찾지 않고, 30유로씩 주고 커다란 창을 가진 방을 혼자 쓰는 우리는 더 이상 순례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뿔뿔이 흝어져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여행을 마친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묵시아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그동안 묵시아는 단 한 번도 쾌청한 하늘을 보여주지 못했고, 바다는 더욱 사나워졌다.




묵시아를 떠나는 날, 나는 나탈리아와 산티아고로 향하는 아침 버스를 함께 타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알람도 하나도 듣지 못하고, 해가 떠오르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결국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도 내가 호텔 로비에 나타나지 않자 나탈리아가 나의 방으로 찾아왔다. 밤새 몸살 기운에 끙끙대며 잠을 설친 탓이었다. 몸은 이불속에서 흐물거렸고, 마음은 아직도 텅 비어있었다.


나는 세수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짐을 가방 속에 구겨 넣었다. 겨우 버스를 잡아타고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하루 먼저 묵시아를 떠난 레오를 만나 함께 포르투갈로 넘어가기로 했다.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생각에 우리는 길의 끝에서 멈추었던 미소를 되찾았다. 경계 없던 수평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작은 버스의 창밖으로 흐릿했던 묵시아가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작은 버스는 덜컹거리며 열심히 산티아고를 향해 달려갔고,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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