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해봐야지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랑이 그렇고, 여행이 그렇고, 요리가 그렇다.
부침개는 엄마가 자주 해주시는 요리다. 언제나 뚝딱 만들어내는데도 맛은 어찌나 그렇게 좋은지, 물론 엄마가 해주는 모든 음식이 맛있지만 부침개는 늘 엄마의 요리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어느 맛있다는 부침개 집을 가봐도 늘 엄마의 부침개보다 나은 곳을 못 봤다. 엄마의 부침개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섞어서 부침개 반죽을 만들어 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는 쨘, 하면 완성되곤 했다.
부침개는 그래서 참 쉬운 요리인줄 알았다. 내가 처음으로 부침개를 만들어보기 전까진 말이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다가 대차게 실패한 뒤로 역시 부침개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부침가루와 물을 섞는데, 물을 찌개 끓이듯 잔뜩 넣었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나 혼자 대충 때우는 한 끼여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섯 달만에 스위스에서 다시 부침개를 시도했다. 우연히 부침가루를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바로 부침개라도 해 먹을 것처럼 집어 들고 오고는, 늘 그렇듯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불금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뭔가 추억 돋는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는 욕망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부침가루. 남자 친구에게 자신 있게 외쳤다. “내가 오늘 저녁에 부침개 해줄게!”
인터넷에 ‘쉬운 김치 부침개 만들기’, ‘쉬운 부침개’, ‘부침개 하기 쉬운 방법’ 등으로 몇 차례 검색을 했다. 재료는 최대한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만 준비해서 간소하게 준비했다. 두 번째로 담근 김치가 얼마 남지 않아 그것을 전부 부침개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냉장고에 애호박이 세 개나 있으니 애호박 부침개도 처음으로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다섯 달 전의 실패에서 부침가루와 물의 비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기에 이번에는 물 양의 조절에 신경을 (나름) 곤두세웠다.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1:1로 섞으면 더 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고들 하길래 나도 따라 해 보았다. 미간에 주름 잔뜩 잡으며 준비한 부침 물에 잘게 썰어 놓은 김치와 양파를 투척하여 반죽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팬이 달궈지기를 기다렸다.
성격상 너무 오래 기다리지는 못하고 붉어진 반죽을 팬에 올렸다. 팬에 가득 찬 모양으로 커다란 부침개를 만들고 싶었지만, 뒤집다가 어차피 다 부서질 것 같아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애매한 크기로 반죽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한쪽 면이 익어가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기름에 잘 부쳐지고 있는 반죽의 냄새가 곱게 퍼졌다.
일단 세 장의 부침개를 완성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왔다. 당장 이것을 먹지 않으면 다음 부침개를 정녕 만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한몫 거들겠다던 남자 친구는 애호박을 가지고 썰기 연습하듯 참 잘게도 썰어놓고는 힘에 부쳤는지 당장 먹고 싶다는 눈치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완성된 부침개를 식탁으로 가져가서 먹기 시작했다. 막걸리 대신 아쉬운 대로 와인을 준비했다.
“맛은 보증할 수 없어!” 이미 한국에서 엄마의 김치 부침개를 맛보았던 남자 친구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못하게 했다. 나 스스로도 그저 사람이 먹을 정도만 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웬걸, 너무 배가 고파서였던 걸까, 김치 부침개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김치가 너무 짰기 때문에 간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짭조름한 부침개였지만, 그것 말고는 대실패를 겪고 만든 두 번째 부침개 치고는 상당히 먹을만했다. 엉덩이를 붙이고 편한 자세로 앉아 계속해서 부침개를 먹어치우고 싶었지만, 두 세입 정도 먹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올려놓은 부침개 세 장이 부엌에서 부지런히 익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침개를 뒤집어주러, 또 잘게 채 썰어진 애호박에 소금을 치고, 애호박에서 나오는 물기로 부침가루 반죽을 만들어내고 하느라 나는 식탁에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며 새 부침개를 가져다 식탁에 놓고 또 팬에 반죽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엄마가 그려졌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지.”
엄마는 부침개를 하면서 늘 방금 완성된 뜨끈한 부침개를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다 먹으면 또 새로운 것을, 또 새로운 것을. 우리는 참 빨리도 먹어 치웠지만 엄마의 부침개 부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새로운 부침개를 부쳐내느라, 식탁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그나마도 식탁에 앉을 때면 새 부침개는 우리에게 주고, 우리가 찢어가고 남은 식어가는 부침개를 당신의 접시로 가져가곤 하던 엄마였다.
엄마의 손에는 늘 젓가락 대신 뒤집개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힘든 기색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빨리 앉아서 같이 먹자며 몇 번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한결같이 대답했다. “엄마도 먹고 있어, 따뜻할 때 어서 먹어둬. 서울 가면 또 생각날 거야.”
먹을 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싫어서 뷔페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렇게 부침개를 해서 먹겠다고 움직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엄마가 보여주었던 사랑의 방식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부침개 한 입 먹고 와인 한 모금 조르륵 마시고 부침개 뒤집으러 다시 일어나고를 여러 번 차례 반복하고 있자니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지런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결국 김치 부침개를 태우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부친 애호박 부침개는 여러 장에 나누기가 귀찮아져서 통째로 팬에 올렸다. 애호박 부침개는 참 때깔이 고왔지만 소금을 너무 많이 쳤는지 정말 너무 짰다. 평소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인 남자 친구에게도 많이 짠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가 너무 짜서 차마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을 버리긴 아깝다고 먹어주는 것을 보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다음 날, 엄마와 통화를 하며 애호박 부침개를 망친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엄마는 “부침가루 자체가 간이 되어있으니까 소금은 정말 조금만 넣도록 해봐, 다 만들고 나서 싱거우면 간장 찍어 먹으면 되니까.”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다음엔 내가 부침개 부쳐줄게 엄마. 엄마는 앉아서 먹기만 해요.”라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차마 말로 내뱉지는 못했다. 전날 저녁을 먹는 내내 그려졌던 엄마의 모습에 다시금 눈물이 핑 돌까 봐, 그러면 목소리가 이상해질 거고, 그러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면 엄마가 다 알아챌 테니까 결국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꿀꺽 삼킨 채, 그렇게 김치 부침개가 어땠고, 애호박이 어쨌고에 대해 떠들었다.
엄마의 부침개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저 ‘짠’ 하고 완성되는 요리가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엄마의 부침개는 그렇게 여러 차례 식탁과 프라이팬 앞을 여러 차례 오가며 만들어진,
식탁에 앉았다 금방 또 일어나서 뒤집던,
타진 않을지 식탁에서도 염려하고 챙기며 맛 좋게 부쳐진 엄마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