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의 마지막 날 아빠가 문득 이야기했다.
“이번이 엄마 아빠가 같이 한 여행 중에 가장 오래 한 여행이다.”
고작 6박 7일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해서 정확히 스위스에 있던 시간은 6박 6일.
아빠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여행은 여름휴가 기간에 가는 것이고 여행을 간다고 한국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 어릴 때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교실에서 항공사 담요를 자랑처럼 꺼내는 반 애들을 보면 나는 부러움과 질투가 동시에 느껴졌다.
어릴 땐 아빠가 우리 가족을 해외여행도 안 데리고 간다고 속으로 투덜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그저 성실함의 표본이었다. 우리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니던 직장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3교대 근무를 꾸준히 했고, 그 후에도 좌절하는 시간 대신 무슨 일이든 다 해냈다.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모습을 아빠에게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노는 것이나 여행하는 것에 있어서는 인색했다. 어릴 때 부모님과 갔던 여름휴가는 늘 2박 3일이었고, 언니와 내가 어른이 되어서 함께 여행할 때에는 2박 3일이 뭐냐고 하루 늘려 3박 4일짜리 여행을 했다. 그것도 부모님이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겨우 가능했다.
그래서 스위스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에도 아빠는 한발 뒤로 빠져 있었다.
“아빠는 안 가. 아니 못 가는 거여. 우리 멍구들은 어떡하고, 닭들은 어떡하고, 그리고 6월이면 그때는 장마야. 물난리라도 나면 우리 밭에 심어놓은 것들 다 바로바로 신경 써야 하는데 어떻게 일주일씩이나 집을 비워.”
그래서 처음에는 엄마와 언니만 오고, 아빠는 집과 동물들과 밭작물들을 돌보기로 했다. 아빠와 하는 여행은 ‘다음’으로 하기로. 하지만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운을 떼지 못했다.
나는 괜히 김이 새서 그럴 줄 알았다고, 아빠 맘대로 하라고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서울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하는 시간까지 거의 9일, 10일 가까이 집을 떠나 있는다는 것이 아빠에게는 영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가 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을 옆에서 듣다 보니 아빠도 구미가 당겼나 보다. 어쩌면, 아빠도 처음부터 원했지만 영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어색하여 흔쾌히 수락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국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은 아빠는 여권을 만들었다. 비행기 표를 구매한 후에 아빠가 행여나 맘을 바꾸진 않을지 걱정했다. 아빠는 나에게 ‘비행기 환불하려면 언제까지 말해야 해?’라는 질문으로 나를 한 세 번 정도 괴롭혔지만 결국 예정된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어왔다.
스위스 여행을 하며, 엄마 아빠는 열심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프로필 배경화면도 함께 바꿨다. 첫째 날 산책하고 내려오면서 본 로잔 노트르담 대성당의 사진이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퐁듀를 먹은 날 함께 탄 케이블카 사진, 융프라우 정상에서 찍은 사진, 엄마와 함께 설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와이너리와 호수가 함께 보이는 사진. 푸른 산을 배경으로 엄마 아빠의 다리가 길게 나오게 찍은 사진.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들을 배경으로 와인 잔을 들고 있는 사진.
그렇게 엄마 아빠는 가족여행의 장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간추리고, 저장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사진이 바뀌었을 때마다 챙겨 보는 것이 좋았다. 나에게는 이랬던 순간이 부모님에게는 또 다르게 느껴졌던 순간이구나, 아 아빠가 이렇게 이 장면을 좋아했는지 몰랐네, 아 엄마 사진을 여기에서 조금 더 찍어줄걸, 하는 마음들이 솟아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가족여행을 다행히도 즐기고 있구나, 라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최고로 아름다운 이곳의 모습이 아니라 속상했다. 가족들에게 이곳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예쁜데… 날은 무지하게 덥고 쨍한데 왜 가시성은 안 좋은 거야, 속상하게.”
특히나 호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와인바나 식당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더욱 그랬다. 파란 하늘과 호수 건너편의 프랑스 에비앙 마을, 그리고 웅장한 산들과 저 멀리 설산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님의 프로필 사진에도 그런 모습이 더 자주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에 떠있는 예쁜 구름을,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했다. 하지만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지금 이게 훨씬 멋있어. 운치 있고 좋구먼.”
마지막 날 왕창 쏟아지던 비가 그쳤을 때 우리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9시가 되기 1분 전. 먹구름이 걷히고 밝아진 하늘에 무지개가 맺혔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무지개를 놓칠새랴 열심히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서야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진 게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며칠 뒤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오랜만에 바뀌었다. 두 번째 퐁듀를 먹은 날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그리고 배경화면은 마지막 날 우리가 함께 본 예쁜 하늘의 무지개 사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그렇게 가족여행의 한 축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