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맹 Sep 01. 2022

고양이가 아프면

우리 같이 건강하게 지내자.


드니(Denis)

심바의 새로운 이름이다. 여기에서 s는 묵음이다. 좋아하는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좋아하는 영화배우 드니 라방(Denis Lavant), 그리고 로잔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케밥집 쉐 드니(Chez Denis). 이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전까지 후보들이 이것저것 많기도 하고, 드니의 사진을 본 친구들이 몇 가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끌리는 이름도 참 많았다. 사실 나의 욕심을 조금 보태어 한국식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남자 친구의 발음 형편이 따라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드니야, 드니! 드니야아. 드니가 새로운 이름에 적응하기를 바라며 드니를 참 많이도 불렀다. 드니보다 내가 더 새로운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S는 묵음이냥


그런데 드니에 대한 걱정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 단순히 먼 거리를 이동하여 피곤했을 거라 생각한 둘째 날이 지나고, 많이 더워서 그런가 생각한 며칠이 지났다. 이쯤 되면 배가 너무 고플 텐데도 잘 먹지를 않았다. 사료 앞으로 겨우 다가가도 한 두 입 먹다가 말고, 맛있는 습식 사료를 챙겨줘도 처음에는 냄새에 흥분하며 다가오더니 조금 할짝거리다가 말았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물이라도 잘 먹어야 할 텐데, 싶어 드니가 주로 잠을 자는 곳 근처에 물그릇을 몇 개 놔주기도 했지만 큰 관심은 없어 보였다. 드니가 너무 더워서 그런가 싶어 얼음물도 시도해보았지만, 얼음 가까이에 얼굴을 몇 번 갖다 댈 뿐이었다. 고여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길래 흐르는 수돗물도 시도해보려 했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속상한 날들이 이어졌다. 드니가 어디 아픈 건지, 애초에 아팠던 건데 보호소에서도 잘 몰랐던 건지, 아니면 우리 집으로 이사 오면서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는 건지. 온갖 걱정이 여러 각도로 샘솟았다. 보호소에 연락도 해보았지만, 하필 고양이 담당 직원이 휴가를 갔다고 했다. 여러 모로 답답했다. 나의 걱정은 점점 두터워졌고, 드니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지 종일 잠만 잤다.


너무 많이 자서 얼굴이 부은 드니


더욱 심각했던 것은 드니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것. 나는 또 고양이 헛구역질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이유였다. 아마도 털을 함께 토해낼 것이라고. 그런데 고양이가 쏟아내는 것 없이 헛구역질만 한다면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 여러 번의 검색으로 도출한 결론이었다.


몇 번은 괜찮겠지 싶다가도, 너무 반복이 되니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 심각한 상황은 늘, 주말에 벌어진다.

“드니야, 많이 아파?”

드니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며 물어보았다. 순간 드니가 또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를 내뱉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드니는 속이 메스꺼운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작은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숨길 수 없는 고통이 고스란히 드니의 얼굴에 드러났다.


나는 그런 드니를 보자 순간 눈물이 나왔다. 이 작은 생명체가 얼마나 아프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말 한마디 못하고, 아니 제 딴엔 무어라 말을 했을 텐데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니, 얼마나 속상할까. 주말 내내 드니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눈앞에 맴돌았다. 드니는 주말 동안 꺽꺽 거리는 소리를 동반한 헛구역질과, 두 번의 토를 했다.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헤어볼을 뱉어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월요일이 되자마자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휴가철이라 진료 예약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장 빠른 날이 목요일 진료였다. 삼일 뒤였다. 동물 병원을 가기까지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드니에게 며칠만 더 견뎌달라고 이야기했다. 드니가 힘없이 누운 채로 귀를 찡긋 움직였다.


드디어 병원에 가는 날, 드니는 진료를 위해 길을 나서는 걸 이해했는지 순순히 케이지에 들어갔다. 병원에 가는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정말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래 기다린 진료의 시간이었다. 드니는 의사의 손길에도 얌전했다. 우리는 드니가 헛구역질을 심하게 할 때 찍어놓은 영상을 의사에게 보여주고,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의사는 드니의 이곳저곳을 확인해보았다. 의사가 행여나 나쁜 소식이라도 전할까 떨렸다. 하지만 너무 다행히도 의사는 드니에게  다른 눈에 보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아마도 위산 때문일 거라며,  가지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은 열흘 동안 매일 아침  가지 종류를 먹어야 했다.


모두 아프지 말라냥


우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다.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니 이렇게나 마음이 홀가분할 수 없었다. 드니도 그래 보였다. 케이지 안에서 빨리 집에 가자고 야옹 거리는 드니가 참 씩씩하고 건강해 보였다.


약을 먹는 며칠 동안은 여전히 헛구역질을 몇 번 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료도 잘 먹었고, 자는 시간도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았다. 너무 다행이었다.


여전히 잔상에 남아 있는 드니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었다. 드니는 내게 더 자주 다가와 앙증맞은 다양한 표정들을 보여주었다. 그때의 표정은 이제 잊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드니에게 같이 건강하게 지내자고 속삭였다. 드니는 내게 눈을 맞추더니 가볍게 윙크를 건넸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개냥이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