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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Sep 13. 2022

고양이의 힘


드니가 우리 집에 온 지 이주 차. 드니는 처음으로 홀로 밤을 보내게 되었다. 스위스 국가기념일 연휴가 생겨 나와 짝꿍이 일박 이일 여행을 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프랑스의 안시(Annecy).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래간만의 연휴라 당일치기보다는 하룻밤을 보내고 오고 싶었다. 출발하는 날, 아침부터 드니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미 고양이와 살아본 경험이 나보다 많은 짝꿍은, 하루 정도는 문제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눈가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건식 사료, 습식 사료를 챙겨주고 물은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서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드니의 화장실을 깨끗하게 정리해주었다. 우리 여행 다녀올게, 드니야. 금방 올 거야. 내일 이 시간에는 집에 도착할 거야. 혼자 심심해도 오늘 하루 잘 보내고 있어야 해. 아침부터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드니가 벌써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했다.


나 두고 어디를 가냥


집을 나선 순간부터 드니가 눈에 밟혔다. 드니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운전을 해서 가는 와중에도 드니 잘 있겠지?,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을 해서도 여기 동물이랑 같이 와도 되는 곳이네, 드니가 여기 있음 얼마나 좋을까? 드니가 싫어하려나? 시원한 스프리츠 아페롤을 한 잔씩 하면서도 드니 보고 싶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드니는 밥 잘 먹고 있겠지? 물도? 아름다운 작은 도시를 즐기면서도 불쑥 튀어나오는 드니 생각을 우리는 어쩌지 못했다.


유난히도 관광객이 많은 날이었다. 작은 도시가 여행자들로 꽉 찼고, 날은 무지하게 뜨거웠다. 우리도 그 사이를 열심히 헤집고 다니며 작은 골목들을 누볐다. 그런데 수많은 인파 중, 유독 우리 눈에 띈 커플이 보였다. 체구가 큰 남자의 어깨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위치를 잡은 채 즐거워하고 있는 듯했다. 당당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구경하며, 자신도 여행자의 신분으로 왔다는 듯이 아주 열심히 도시의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 고양이의 자태를 지켜보았다. 우와… 고양이랑 여행하는 게 저렇게도 가능하구나, 싶은 작은 희망이 싹텄다. 하지만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저렇게 같이 여행하도록 길들여진 고양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란 생각에 작은 희망이 더 작게 줄어들었다.


일기 못쓰게 하는 드니


스위스에 넘어오기 전에 나는 공연 기획 일을 했었다. 특정 공연장 소속이 아닌, 공연 그룹 소속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전국으로 공연을 다니곤 했다. 그때, 그룹 내에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멤버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방 출장을 가서 며칠씩 그곳에서 보낼 때마다 늘 집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싶어 했고, 고양이 때문에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여행 중에 문득 그들 생각이 난 것은, 내가 어느덧 그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룰루랄라 신나게 놀고 새로운 곳을 한참 구경해도 모자랄 시간에 집에 있는 고양이 생각을 하고 있다니.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심지어 나 조차도 놀랐다. 원체 집순이와는 성향이 먼 타입이라, 아무리 긴 여행을 다녀도 집 생각보다는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나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고작 일박 이일짜리 여행 중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정말이지 놀라운 ‘고양이의 힘’이었다.


드니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를 열 번째로 이야기했을 때는 다시 스위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 했지만, 점심도 미루고 일단 출발했다. 서둘러 국경을 넘고, 제네바를 거쳐 로잔으로 향하며 “드니야 우리가 가고 있어!”라며 여러 차례 외쳤다. 나의 외침이 드니에게 정말로 도달하기라도 할 것처럼.


너의 배게가 되어줄게


그러게 헐레벌떡 집으로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집을 나선 지 딱 만 하루만이었다. 드니가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전 내내 자고 있었는지 눈이 아직은 반쯤 감긴 채였지만 우리가 왔다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밥을 너무 많이 주고 갔는지 아직 남아 있었다. 서둘러 새로운 물을 챙겨주니 드니가 곧바로 물을 할짝거렸다. 2층에 올라가 보니, 박스와 키친타월 심지를 열심히 물어뜯어 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것 말고는 집 안은 깨끗했다. 드니가 혼자서도 하룻밤을 잘 보낸 걸 보니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드니가 처음으로 밤을 지낸  여행 이후, 우리는 드니와 함께 외출할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가, 고양이용 하네스를 사다 놓았다. 드니에게  어울릴 빨간색으로다가. 물론 아직 드니의 의견은 묻지 않았고 아직 아무것도 시도한 것도 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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