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때문이었고, 여름 때문이었고,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한낮은 너무나 뜨거웠다. 그들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세계는 정확히 바다 안과 바다 밖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온도 또한 정확하게 수면 밖과 안의 것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들은 이동하느라 땀을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 인적이 조금 드문 곳으로 가 그들은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옷을 벗어던졌다. 그들은 많이 생각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의 신분에서 지켜야 할 도덕이라던가 규율이라던가 하는 것들까지 함께 벗어던졌다. 그는 바다에 빠져 그간 지켜온, 앞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모른 체했다. 그녀의 앞에는 많은 것을 벗어던진 그가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의 팔을 어루만졌다. 그것이 마치 출발을 알리는 신호라도 되는 듯 그들은 그렇게 수면 아래에서 자꾸만 서로를 향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자꾸만 좁아져만 갔고, 그 틈새는 어느덧 거의 완벽하게 메꿔졌다.
그들은 파도를 함께 넘었고, 또 파도에 함께 휩쓸렸다. 마치 그 파도에 수많은 해파리 떼가 실려오듯이 그녀는 파도가 올 때마다 기를 쓰고 그에게 안겼으며, 그 또한 그녀를 내치지 않았다. 그도 파도를 기다렸다. 그녀를 꼭 끌어안을 이유를 만들 더 크고 더 센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에게 붙었던 온갖 수식어는 사라져 있었다. 그는 오래전 잊으려 애쓰던 그의 본래의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그에게 붙었던 온갖 역할 또한 사라져 있었다. 그는 신을 잊었고, 스스로 한 맹세는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시원한 파랑에 갇혔고, 그 파랑은 자꾸 움직이며 그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그 날 따라 해가 지는 모양도 너무나 예뻤다. 해가 지는 것을 한 줌, 파도를 피하는 것을 한 줌 담다 보니 고정된 시선을 잃었다. 그에게로 향한 초점인지, 그의 귓불을 지나 흩어지는 노을을 향한 초점인지 그녀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파랑 속에서 일렁이며 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에 비친 주홍빛 노을을 아름답다고 여러 번 속삭였다. 바다 밖의 온도와 바다 안의 온도 차가 줄어들자, 그들은 바다에서 나와 주홍빛 하늘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만이 그들이 그 언젠가 함께 시간을 나누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반짝거렸다.
그 날 바다는 오래도록 캄캄했고, 낮과는 다르게 너무나 선선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온도를 나눈 그들은 서로에게 노을을 하나씩 주고받았다. 언제든 곧 바닷속으로 삼켜질 노을, 하지만 그 모습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는 노을, 결국엔 사라질 노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워질 것임을,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을 거리에 남겨질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다시는 찾지 않을 이 바다에 그대로 묻힐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삼켰고, 할 수 있는 한 서로의 닿아있었다.
길 위에서 처음 만나 밥을 한 번 만들어먹고 4년 동안 소식을 주고받던 그들은 그 뒤로 다시는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신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을 것이고, 온갖 교리를 온몸에 새겼다. 누군가에게 잊힐 위기에 처한 그 기억은 그녀에게로 가 기억되려 애썼다. 그녀는 기꺼이 그 기억의 단편을 주워 들어 품었다. 여름이었던, 바다였던,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그 여행길을 품었다. 그때의 숨결이 그녀에게서 내어져 아주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그에게로 나아갔다. 여러 번 아끼다가 이내 마음을 다 써버렸을 때, 다시 자라나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는 몰래 그 기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