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모터바이크를 좋아하던 당신이 어느 날 바이크를 팔았습니다. 레스토랑 운영에 조금 더 기여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당신은 레스토랑에서 필요한 신선한 식자재를 배달시키는 것보다는 직접 장을 본 후에 주방에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무게가 꽤 나가는 물품들도 가끔은 직접 실어 날아야 했기 때문에 당신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바이크를 판 돈을 보태어 차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일반 승용차는 당신이 타기에 너무나 볼품없다고 생각했는지, 작은 마을에서 당신은 커다란 오프로드 전용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옆의 대도시에서도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차종은 아니었기에 당신은 이 작은 바다 마을에서 이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 나갈 때마다 그렇게 당신의 어깨가 으쓱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몰고 다녔던 바이크가 받았던 시선보다 더 짙은 부러움과 동경의 시선을 아마도 당신은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말끔히 깔린 도로 위에서 당신이 운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당신은 전에 본 적 없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지루함을 삼킨 것처럼 보였고, 당신이 잡고 있는 것이 핸들인지 재미없는 전문 서적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어떤 풍경도 당신의 무료함을 달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에는 말끔한 도로를 달릴 때보다는 당신이 조금은 신나 보였습니다. 다른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레 비포장 도로로 진입을 시도할 때, 당신은 홀로 속도를 높이고 거친 도로 위를 더욱 거칠게 달리곤 했습니다. 여기저기 파여 있고, 높낮이가 고르지 못한 길의 조건은 당신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길 위에서 당신은 긴장감 대신 자신감을 가지고 힘껏 액셀을 밟고 유연하게 핸들을 돌렸습니다. 거친 구간이 조금 잠잠해지면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당신은 말했습니다.
“이거지! 이렇게 달리려고 사륜구동을 타는 거지!”
당신의 얼굴 위로 그나마 밝은 미소가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도로 위를 달릴 때에는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운전할 때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저 심심하다, 혹은 졸음이 쏟아진다는 문장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바이크를 함께 탈 때는 나눌 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나는 당신과 함께 차를 타는 것이 좋았습니다. 행여나 당신이 계속해서 지루함을 느낄까 걱정되어 나는 신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 88곡을 선정하여 당신을 위한 드라이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바이크 위에서 맞는 바람의 세기를 그리워하던 당신은 늘 차의 뚜껑을 열고 창문을 다 내린 채 운전을 하였는데, 내가 선별한 드라이브 플레이 리스트가 늘 당신의 이동에 맞추어 거리로 크게 울리곤 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멈춰 있던 사람들도 우리가 멀리서 다가가기 전부터 고개를 돌려 우리를, 아니 당신의 차를 구경하곤 했습니다. 차의 밖으로 음악은 흘러나갔고, 차의 안으로 바람은 흘러들어와 우리를 거칠게 안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당신의 차로 이동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기가 서서히 끝나 이 땅에도 선선한 계절이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꽤나 흐린 탓에 하늘의 별들을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두꺼운 외투가 필요하지 않은 이 땅에서 얇은 옷차림의 우리는 그렇게 한 밤중의 어둠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맨 얼굴로 밤의 바람을 잔뜩 맞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조금 자란 나의 머리카락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흐트러지며 나의 눈가를 사납게 찔렀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맞는 시원한 바람이야 이게!”
당신은 몇 번이나 그렇게 외쳤습니다. 서늘한 바람에 온 몸을 내던지는 듯한 당신과는 달리, 나는 너무나 추웠습니다. 손발이 시려 무릎을 가슴으로 잔뜩 끌어안은 채 손은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있었습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당신에게 최대한 추워 보이려 노력했죠. 바이크 장갑을 끼지 않은 당신의 맨 손, 바이크 핸들을 꼭 쥐어야 할 의무가 사라진 당신의 한쪽 손을 쳐다보았습니다. 당신의 손에 조금은 데워진 나의 손을 포개어 보았습니다. 나는 금방 나의 온기를 당신에게 주었고, 당신은 나의 온기를 금세 밤공기 중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 밤, 추워하는 나를 위해 당신은 차의 히터를 틀어주었습니다. 차가운 자연의 바람과 뜨거운 가공의 바람의 한데 어우러졌습니다. 차가운 바깥의 속도와 뜨거운 안쪽의 속도가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을 듯 섞이고 있었습니다. 조화를 이룰 듯 조화를 이룰 수 없듯이, 차가운 바람이 뜨거운 바람에게 한발 다가가자, 뜨거운 바람이 차가운 자연의 바람에 신선함을 느껴 세 발 다가가는 온도, 그러자 그 처음 느껴보는 뜨거움에 지레 겁을 먹고 다시 온통 차가움으로 무장한 채 차분한 척을 하는 시린 밤의 바람. 그렇게 뜨거운 바람은 차가운 바람에 계산 없이 스며들었고, 차가운 바람은 더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밤공기에 대고 한없이 연약해진 뜨거운 바람이 작은 숨결을 내뱉자, 그것은 이내 밤 비가 되어 그날 밤 우리의 정수리로, 어깨로 연약하게 흘렀습니다.
당신이 바이크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당신의 친구가 당신에게 3주 동안 자신의 바이크를 맡기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죠. 바이크를 판 후로 당신이 그렇게나 행복해하며 기운을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몇 달 동안 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당신의 보호장비들을 하나하나 꺼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언젠가 당신의 그 밝은 모습을, 온전히 나를 위해서 짓는 밝은 미소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괜한 질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바이크를 몰던 첫날, 당신은 하루를 몽땅 바이크 위에서 보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때쯤 잔뜩 흥분하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당신은 그 날 밤새 바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이제야 당신은 살아있는 기분이 들며, 비로소 그동안 자신이 우울했던 이유를 알겠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바이크를 처음 봤을 때에는 당신이 전에 몰던 바이크보다는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오히려 바이크를 모는 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하루 만에 적응을 끝내서 더 이상 친구의 바이크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친구가 여행을 간 3주 동안 거의 매일같이 바이크를 몰았습니다.
바이크를 타기 위해 당신의 생활 리듬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토랑이 아침 10시에 문을 열지만 레스토랑 2층에서 지내던 당신은 이전에는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1층으로 내려가 보곤 했습니다. 이미 직원들이 다 알아서 일을 한다며 굳이 본인이 일찌감치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저 오전 9시 즈음 아침마다 청소를 하는 인력이 레스토랑 문을 두드릴 때에만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죠. 하지만 당신은 3주짜리 바이크가 생기자 아침 9시가 되기 전부터 일어났습니다. 그 날의 필요한 식자재를 일찌감치 당신의 커다란 차를 타고 구입해왔습니다. 그리고는 어디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늘 바이크에 올라타곤 했습니다. 당신의 차에 들어가는 기름보다 더 많은 기름을 소진하는 바이크였지만, 당신은 그것을 괴물이라 부르면서도 아낌없이 바이크를 몰았습니다. 당신은 마치 그동안 어딘가 갇혀 있다가 방금 막 탈출을 성공해낸 사람처럼 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처음으로 친구들과 하는 첫 놀이를 하고 며칠간 그 놀이만 계속 해내는 것처럼, 어린 커플이 처음으로 연애를 하여 그들의 몸을 탐닉하고 그 안의 뜨거운 것이 조금은 식을 때까지 계속해서 뜨거움을 즐기는 것처럼, 끝이 궁금한 드라마 시리즈에 푹 빠져 사는 팬처럼.
당신은 혼자 바이크를 탈 때와 나와 함께 탈 때를 세심히 구분하여 신경 썼습니다. 내가 당신의 뒤에 있을 때에는 평소보다는 긴장하며 바이크를 몰았습니다. 웬만하면 밤 운행은 삼갔고, 어쩔 수 없이 밤에 바이크를 함께 타야 할 때에는 당신의 어깨가 경직된 것이 느껴졌습니다. 비포장도로에서 움푹 꺼진 곳들을 빠른 속도로 달릴 때면 나는 바이크에 앉은 채로 엉덩방아를 많이 찧곤 했습니다. 내 엉덩이가 들어 올려질 때마다 놀란 맘에 당신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왼손으로, 바이크 장갑을 낀 그 손으로 당신의 배꼽 언저리에 위치한 내 손등을 살짝 쓸어주었습니다.
이전에 바이크를 타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당신처럼 속도를 내는 사람과 바이크를 타본 적은 내게는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이 시속 100km를 넘길 때면 나는 이를 악 물고 나의 목이 저절로 뒤로 꺾일 것만 같은 느낌을 주체하느라 더욱 당신을 꼭 안았습니다. 나의 헬멧은 당신 것만큼 좋은 게 아니어서, 턱 보호대도 없고 고개를 조금만 올리면 코로 바람이 잔뜩 들어와 늘 적절한 각도를 잘 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시속 140km를 찍자 난생처음 느껴보는 그 속도에 나는 몸을 조금 움츠리고 고개의 각도를 맞추는 둥 애를 쓰느라 바빴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헬멧 앞부분이 당신의 헬멧 뒤통수에 부딪히곤 하여 당신이 운행하는데 방해가 될까 미안했습니다. 오랜 시간 바이크를 타고 내리면 내 다리는 후들거리곤 했습니다. 같은 자세로 긴장을 했기 때문이죠. 사타구니 쪽이 심하게 경직되어 있었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타지 않아도 어깨와 목 부분이 각도를 맞추느라 애썼기 때문에 그런 날 밤은 근육통으로 조금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라이딩 후에 나는 당신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했고, 당신은 내가 좋은 승객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속도와 안정감을 모두 갖춘 라이더라고 이야기하자, 나를 태울 때에는 그저 당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속도를 내는 것뿐이라고, 그게 당신이 뒤에 누군가를 태울 때 내는 스피드라고 이야기해주곤 했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돌아오기 며칠 전, 당신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른 아침부터 홀로 바이크를 타고 돌아와서는 방금 240km로 달리고 왔다며 붉은 두 뺨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 이마의 주름들도 그 날 따라 더욱 흥분되어 보였고, 당신의 온몸에서 맑은 에너지가 쏟아지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3일 동안 당신은 끙끙거리며 바이크 타기를 거부했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다시 그 바이크와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다시 바이크 없는, 당신이 원하는 속도를 낼 수 없는 세상으로 적응시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다리를 잃듯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귀를 잃듯이,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잃듯이 당신은 그렇게 절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