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아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오랜 시간 모든 것을 혼자 해 내느라 외로움이라는 것에 굉장히 단련되어 있었고, 혼자가 아닌 그 누군가와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에게는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었다. 넓은 너의 침대, 한쪽 구석만을 구긴 채, 베개의 왼쪽 끝만을 구긴 채, 작은 어깨를 구부려 잠을 자길 좋아했던 너.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매달 배달되어 오는 자동차 잡지를 한 페이지씩 꼼꼼히 읽기를 좋아했고, 지지직 거리는 커다란 텔레비전을 켜두어 차가운 공기를 달래곤 했다. 아침이면 커피를 마셔 공복을 달랬고, 그 이후로도 진하게 내린 커피 두 잔을 새까만 컵에 내려 마시곤 했다. 그러다 오후 5시 이후가 되면 마시던 커피대신 향이 진한 차를 마시곤 했다. 작지 않은 주전자에 가득 우려낸 매운맛이 나는 차를 넌 오후 10시가 되도록 한 자리에서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너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보단 혼자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너는 늘 친절했고, 예의가 발랐지만 거기엔 늘 진심이 빠져 있었다.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한 진심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 어색했던 너는 혼자 차를 홀짝일 때에야 비로소 가장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너는 너만의 너무나 견고한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적군의 침략을 미리 방어라도 하듯이, 자신을 보호하기에 급급했고, 그것을 마치 여유로운 척하는 표정으로 부드럽게 감췄다. 욕심을 부렸던 난, 네가 쌓아 올린 방어적 요새의 틈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다. 돌을 던지지도, 창으로 쑤셔댄 것도, 뜨거운 불덩이를 쏜 것은 아니었지만 넌 너무나 아파하기 시작했고, 더욱더 견고하고 단단한 벽을 네 안쪽에서부터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네가 쌓아 올린 벽의 중간중간에 내가 들어가 있는 보기 깔끔하지 않은 모양새가 되었다. 난 너에게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했고, 나의 욕심은 아직도 남아 있어 너의 성벽을 맴돌았고, 넌 네 안에서부터 더욱더 날 미뤄내기 시작했다. 내가 갇힌 네 벽의 표면에는 너의 외로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 어떤 강력한 것으로도 닦아 낼 수 없는 외로움이 잔뜩 스며들어, 너의 외로운 냄새가 내 피부에 배기도 했다.
그런 너에게 너의 어머니와 형제 남매들은 불만을 표하곤 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냐며, 통화 버튼 한 번 눌러서 목소리 들려주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며 가끔 너를 나무랐다. 그럴 때면 그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늘 거기에 있을 것이고 난 여기에 있는 것뿐인데,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굳이 잘 있는지를 별일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거냐고 했다. 너에게 누군가가 ‘보고 싶다’는 것은 맘을 다 잡고 에너지를 약간 쏟아부어 신경을 써서 어떤 특정한 자세로 해야만 하는 ‘불편한’ 문장 같았다. 그런 너에게 난 몇 번 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오는 답변을 기다릴 내가 싫어서, 내가 보낸 문장 하나 가지고 몇 시간 동안 어떻게 답해야 할지 불편한 자세로 생각할 네가 싫어서, 그 문장 하나에 네가 얼마나 많은 찻잔을 비워낼지를 알기 때문에 난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너는 그래도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너를 그리워하는 나’ 에게 고맙다거나 혹은 안타까워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너의 미안하다는 말속엔,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만큼 너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뭐라 달리 할 말이 없다는 문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네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워지는 게 불편하다는 말을 하기 까지는 ‘좋아한다’는 말을 한 이후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의 틈새는 열리다가도 이내 닫혔고, 내게 너를 보여주고도 금방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다. 너와 함께 오후 다섯 시 이후의 매운 향이 나는 차를 나눠 마실 때면 너의 그 차갑고도 편안한 얼굴을 따라 해보려 했으나, 오랜 시간 홀로 외롭게 쌓아온 너의 얼굴을 따라 하기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표현 이외의 것들만을 표현하기에 적당할 만큼, 딱 그만큼 너의 얼굴은 딱딱했다.
며칠 전에 본 영화에는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 나왔다. 십 년도 더 전에 처음으로 봤던 영화였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주인공은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마치 너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지나간 시간을, 외로움이 빼곡히 박힌 지나간 시간을 그가 그 시간 동안 홀로 사랑해온 사람과 함께 메우려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 오는 영화였다. 영화 속 외로운 사람을 보는데 네가 자꾸만 겹쳐지는 것은 어쩌면 내겐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쉽게 만날 수도, ‘보고 싶다’는 문장 하나를 보낼 수도 없는 네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마시는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외로운 너와 몇 번 마셨던 와인을 혼자 마시며 외로운 너를 닮은 사람을 보고 있자니, 와인이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며 그리운 감정을 몇 배로 증가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영화 속에서 널 닮은 외로운 남자가 울부짖을 땐 와인을 더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시간이 너무나 아팠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도려내듯, 그때의 내 가슴을 도려내듯, 아픈 구멍들이 느껴졌다. 그 구멍들의 가장자리는 너무도 날카로워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외로운 남자는 계속해서 울부짖고 있었고, 어느새 그 프레임 속엔 외로운 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엔 네가 울부짖고 있었다. 너는 너의 모든 새로운 감정을 새로이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나를 찾고 있었다. 네가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너의 외로운 몸짓이, 울부짖으며 갈구하는 무언가가 ‘나’이길 바랐다. 덮고 있던 얇은 담요를 던져버리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내팽개치고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서 너를 안고 싶었다. 있는 힘껏 너를 그냥 안고 싶었다. 외로운 네가 소리치는 외로움을 몽땅 끌어안아 그 프레임 속에 던져 놓고 너를 데리고 바로 내 옆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감정이 사무칠수록 그 장면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너를 오래 기억하고, 그 잔상을 계속해서 남겨두고 싶을수록, 도려낸 시간들의 가장자리가 날 너무나 아프게 했다. 남자의 울부짖음이 끝나자 외로운 너를 그리던 모든 잔상들이 흐드러졌다. 이내 소리 없이 퍼지고 내 방 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레드 와인 색깔만큼 진하지가 않아서 다행이었다. 너의 잔상이 희미하게 잠들 때까지는 영화가 끝나고도 세 시간이 꼬박 걸렸다. 외로운 네가 너의 커다란 침대의 한 쪽 귀퉁이만을 구기며 잠들듯이, 너의 희미한 잔상들도 내 방 어딘가 구석만을 적시며 그렇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