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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속도 1

by 오션뷰

매주 금요일 오후면 난 당신에게 갔습니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 위에서 50분을 보낸 후, 잘 닦인 도로 위 마을버스 위에서 다시 30분을 보냈습니다.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 대도시에 들어섭니다. 그리곤 가장 호의적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잡아 이동합니다. 페리를 타고 내리고 오토바이 택시 기사와 흥정하는 데만 해도 꼬박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승차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대도시의 중심부를 지나면 대도시의 끝자락, 작은 마을로 빠지는 버스들이 정차하는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거기에서 작은 바다 마을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40분 정도 이동합니다. 버스에 내려서 당신의 레스토랑 앞까지는 오토바이 택시로 3분이면 충분합니다. 장작 6개의 이동수단을 바꿔 타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때 맞춰 이동하는 철새들처럼 내가 가야 하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 앞에 도착하면 당신은 레스토랑 앞의 야외 테이블석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그 자리는 골목길을 드나드는 이들을 바라보도록 향해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했고, 혹은 그저 오토바이 택시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늘 당신의 바이크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간혹 당신의 바이크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왜 그렇게도 불안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요일 오후가 끝나갈 무렵, 작은 바다 마을에 도착하면 우리는 두 번의 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당신은 나를 바이크에 태워 대도시의 페리 선착장 앞에 내려주곤 했습니다.



당신은 속도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커다란 모터바이크를 몰고 다닌지도 어느덧 15년째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도로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1,000cc, 1,200cc의 덩치가 큰 모터바이크를 주로 끌고 다녔습니다. 당신이 타고 다녔던 모터바이크들의 색깔은 화려하기 그지없었죠. 당신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굉장히 빛나는 푸른빛 바이크를 탄 채였습니다. 당신이 그 빛나는 푸른 파란색 바이크를 타고 달릴 때에는 유난히도 땅과 가까이 닿은 하늘 속에서부터 흘러나온 공기 한 점이 다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또 당신이 짙은 붉은색 바이크를 타고 달릴 때에는 유난히도 뜨거운 이 땅의 태양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입김이 세상을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노을 색을 닮은 오렌지 빛의 바이크를 타고 당신이 지나갈 때면 당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노을빛이 흩뿌려지는 듯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인생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바이크를 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속도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에 여전히 빠른 모터바이크를 타고자 했죠. 그래서 당신은 다양한 안전장치를 꽤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당신은 헬멧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곤 했는데, 깡마르고 길쭉한 당신의 몸 꼭대기에 커다랗고 단단한 헬멧이 씌워진 것을 볼 때면 당신이 중심을 잡고 얇은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늘 바이크 전용 재킷을 고집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어깨와 등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를 즐기는 당신의 가슴이 거친 바람을 맞고도 끄떡없도록 해주었습니다. 그중엔 내가 유독 좋아했던 당신의 바이크 재킷이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검은색에 흰색이 약간 들어가 포인트를 준 디자인이었습니다. 그 재킷을 입으면 당신의 작은 어깨가 배로 크고 딱딱해 보였기 때문에 난 당신이 그 재킷을 입을 때 어쩐지 좋았습니다. 어쩐지 당신이 강해 보였기 때문이죠.


한낮 동안 뜨겁게 타올랐던 열기가 식고 나면, 우리는 함께 레스토랑 2층 테라스에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내가 조금 쌀쌀함을 느낄 때면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당신의 바이크 재킷을 내 어깨에 걸쳐주곤 했습니다. 당신의 어깨가 나의 어깨를, 당신이 가슴이 나의 등을 어쩐지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이름을 처음 발음해보던 때처럼 온몸의 감각이 저릿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게 난 참 좋았습니다. 하루 내 거친 바람을 잔뜩 이겨낸 재킷은 차갑고 딱딱했지만 어쩐지 내 어깨 위에 걸쳐져서는 조금은 긴장을 풀고 쉬는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내가 당신의 보호 장비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이크에 오를 때면 당신은 늘 강하고 튼튼한 청바지를 고집했습니다. 내가 무릎이 훤히 드러난 찢어진 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날이면 당신은 나를 태우지 않고 달렸습니다. 그렇게 강한 청바지를 입고도 가끔 먼 길을 나설 때면 당신은 무릎 보호대까지 착용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며 당신을 놀리곤 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옆의 대도시에서 한 차량이 당신의 바로 옆을 스쳐가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했던 당시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때 당신의 무릎에 크게 상처를 입을 뻔했지만, 무릎 보호대 덕분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며, 당시 생긴 무릎 보호대의 상처를 자랑스레 보여주었습니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당신의 다리는 마치 로봇의 것 같았습니다. 신발은 또 어떻고요, 늘 복숭아 뼈를 덮는 발목이 높은 신발을 고집했습니다. 복숭아뼈와 그 주위는 가장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할 부분이라며 늘 신신당부하던 당신이었죠.


하루는 내가 바이크 타기에 적합한 신발을 챙겨 오지 못해 슬리퍼를 신고 당신의 바이크에 올라야 했습니다. 우리가 3시간 정도는 이동해야 했었죠. 당신은 내 슬리퍼를 못마땅히 여기며, 그 길로 나를 한 중고 신발 가게에 데려갔습니다. 만원 정도 하는 중고 신발들이 시큰둥하게 진열되어 있던 그런 곳이었죠. 나는 당신처럼 다리가 길지 않아 발목을 덮는 신발을 신으면 다리가 짧아 보여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오늘만 신고, 오늘과 같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당신의 방에 신발을 보관하자고 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신고 싶은 신발이 없어 거기서 얼굴을 구긴 채 30분쯤은 고민했죠. 그러다 결국 구석에 있던 검은색, 당신이 그렇게도 고집하던 발목이 올라오는 싸구려 인조 가죽 신발을 하나 골랐습니다. 다행히도 발목 위로 엄청 많이 올라오지는 않아 다리가 길지 않은 나도 적당히 신을 수 있었죠. 사실 신어보니 착용감도 편안하여 그 뒤로도 종종 신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손에 늘 바이크 전용 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바이크 장갑은 손에 꼭 맞게 착용해야 하기 때문에 사이즈별로 선택해야 했습니다. 늘 라지 사이즈였던 당신의 장갑이 당신의 커다란 손에 꼭 맞는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내 손보다는 바이크의 핸들을, 나는 당신의 손보다는 당신의 허리춤을 잡곤 했지만, 당신이 바이크 장갑을 끼고 있을 때면 유독 당신의 손이 잡고 싶었습니다.




나도 당신의 속도를 함께 느끼길 좋아했습니다. 당신은 종종 나를 태우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곳을 데려가 주었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풍경들을 당신 덕분에 잔뜩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무척이나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바이크를 타고 주로 가는 곳들에 내가 모두 한 번씩 가본 후, 당신은 나에게 새롭게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보았습니다. 이 땅의 언어는 조금씩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나는 아는 곳이 많지 않았기에 쉽게 가고 싶은 곳을 고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여러 번 뒤진 후 당신에게 몇 개의 목적지를 말했지만 그곳들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이 땅은 너무나 광활하여 꼬박 하루 동안은 이동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다음에 같이 갈 수 있길 노력해보자.”
당신은 당장 쉽게 지킬 수 없는 것들은 충분히 희망적으로 지켜보자는 말을 하곤 하였는데, 내겐 그 모습이 괜히 더 믿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러면 나는 일단 목적지 없이 달리자고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당신과 함께 당신의 속도 위에 올라탄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난 해가 지는 시간이면 일몰을 보기 위해 당신에게 멈춰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해가 뜨고 지는 것엔 관심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일몰 시간에 맞춰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함께 나눠 마시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나와 길을 나설 때면 맥주 두 병을 챙겨 놓았습니다.
그렇게 일몰을 볼 수 있는 최선의 자리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도로 위에서 당신은 바이크 장갑을 낀 채로 내 허리에 팔을 둘렀습니다. 있는 힘껏 붉은빛을 뿜어내는 태양에 맥주는 서서히 식어갔고, 나는 조금 더 당신의 품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동그란 해가 지평선으로, 다시 두꺼운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내 마지막 남은 햇살 줄기들마저 무성한 잎사귀들이 잔뜩 매달린 커다란 나무의 살결로 스며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의 배 속엔 맥주가 찰랑거렸고, 그 찰랑거림에서 나오는 잔잔한 파도가 당신과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우리가 함께 달리는 배경에서는 해를 삼킨 하늘이 노랗거나 붉거나 혹은 한낮의 파란 하늘과 뒤섞여 보라빛깔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뒤에서 꼭 안고 우리가 스며들 배경을 계속해서 응시했습니다.

그 순간, 이 세상은 온통 우리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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