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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속도 3

by 오션뷰

친구에게 바이크를 돌려준 후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당신이 결심한 듯이 말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고, 몇 달이 조금 지난 후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새 바이크를 구입할 계획이었지만, 그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겠다고 했죠. 당신은 다음 사업 자금으로 마련해 둔 대출을 결국 바이크를 구입하는데 써버렸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이 이제는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꽤나 알려졌기 때문에, 당신은 대출금 갚을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나는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당신의 결정을 응원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난 당신 편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게 당신에게 힘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다시 속도를 느끼고, 바람을 느낄 준비에 주위의 것은 차마 보지 못했지요. 당신은 좋아하는 한 모터바이크 브랜드의 최신형을 결국 손에 넣었습니다. 그것은 꽤나 날렵하게 생겼고, 꼬리 부분이 유독 잘 빠진 것이 바이크를 잘 모르는 내게도 꽤나 섹시하게 느껴졌습니다. 검정과 흰색으로 기본 바탕을 한 채, 꽤 넓은 부분에 이르는 오렌지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들뜬 모습을 또 친구의 바이크를 타던 이후로 처음 보게 되었죠.


새 바이크에 오른 당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내겐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보러 예고 없이 찾아가곤 했을 때 당신의 얼굴에서 새어 나오던 미소는, 새 바이크에게 내어 짓던 당신의 미소에 비하면 보잘것없던 것이었습니다. 평소 당신이 내 앞에서 긴장을 풀고 웃을 때면 양쪽 코 볼에 작은 주름이 생기고, 유난히 하얀 당신의 앞니가 더욱 환하게 드러나곤 했는데, 난 당신의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당신이 내게 웃어줄 시간을 욕심 내곤 했죠. 하지만 새 바이크에 오른 당신은 끊임없이, 내가 욕심 낼 기회도 주지 않고 빛나게 웃고 있었습니다. 유독 그 날은 당신의 하얀 앞니가 더욱 빛이 났던 것도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던 밤마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에도 당신은 늘 이를 악물어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소리도 당신 스스로 막곤 했는데, 새 바이크 위에서 당신은 그 소리를 당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밖으로 내고 있었습니다. 매우 짜릿한, 매우 솔직한 소리를 당신이 그렇게 스스로 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듯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몇 달간 끝내지 못한 곡을 끝내 환희에 이르듯이, 아나운서가 그토록 오래 끙끙 앓던 목감기에서 벗어나듯이 그렇게 당신은 모든 행복을 쥐고 있었습니다.

새 바이크를 손에 넣고 일주일 뒤 당신은 바이크에 새로운 누군가를 태우고 나타났습니다. 함께 바다 건너 다른 땅에서 비즈니스를 공부하던 친구라고 나에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당신은 친구에게 당신의 레스토랑에 관하여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2층에 있던 게스트 룸은 더 이상 당신의 잡동사니들을 쏟아 놓는 방이 아닌, 그 친구의 방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친구에게 당신이 레스토랑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의 온도, 화법, 예의 바른 표현법 등을 알려주었고, 매일 같이 구입해야 하는 신선한 재료들을 골라주었고, 그 재료들을 구입해야 할 구입처들에 데려가 상인들에게 친구를, 친구에게 상인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주방 직원 3명, 홀 직원 2명에 대한 개인적인 신상과 성격, 배려해야 할 점, 그들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하면 좋을지 등을 낱낱이 알려주었고, 올해 매출이 당신의 목표점을 찍으면 내년 초에 직원들에게 해주기로 한 선물의 목록도 친절히 적어주었습니다.

당신의 레스토랑에서 꾸준히 지켜 나가야 할 분위기, 절대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하여, 단골손님들에 대하여, 당신이 준비 중이던 신 메뉴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메뉴판의 모든 메뉴들이 언제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가능하도록 늘 모든 재료를 적절히 준비시켜 놓는 것이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며칠 전, 거래처의 실수로 인해서 소고기가 준비되지 않아 레스토랑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인 소고기 꼬치를 반나절 동안 팔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던 사례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다시 한번 그때의 스트레스를 받는 듯 실감 나게 친구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주류 메뉴도 늘 철저하게 다 준비시켜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특히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푸른빛 병에 금색 이름표가 붙은 맥주를 예로 들며, 이 마을에선 유일하게 당신의 레스토랑에서만 구할 수 있는 맥주라며 수량 및 재고 관리에 철저하기를 당부했습니다.


어느덧 우기가 완벽하게 끝나, 내가 좋아하는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3주 연속으로 계속해서 나와 산책길을 나섰습니다. 이제는 내게 꽤나 익숙한 당신의 동네지만, 나란히 작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함께 걸어 흐르는 산책은 내게는 새로운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해가 질 때까지 걸었습니다. 당신은 푸른빛 병에 금색 이름표가 붙은 맥주를 역시나 늘 준비해주었고, 어느 길목에서든 하늘의 색이 변하는 때라면 우린 맥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의 호흡은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내릴수록 빛나는 당신의 눈동자를 지켜보는 게 그저 난 좋았습니다. 매우 고요했고, 우리가 함께 나눈 온도는 일몰의 뜨거운 것과 맥주의 차가운 것이 적절히 섞여 있었습니다. 아직 이 땅에 남은 한낮 동안 타올랐던 뜨거운 것과 조심스레 이 땅에 새로 덮이는 차가운 것이 적절히 섞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 날 당신과 함께 나눈 걸음걸이, 함께 나눈 시간은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우린 서로에게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고, 그날도 우리가 함께한 날 들 중 하나일 뿐일 줄만 알았습니다. 그 날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바이크와 함께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새로운 바이크를 품에 안은 후 정확하게 7주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이 떠남에 있어서 장애물이 될 수 없었고, 당신은 당신의 속도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 흐름에 응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아침 돌연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었고, 거기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만 주어졌습니다. 당신의 우렁차던 마지막 엔진 시동 소리가 귓전에 하루 종일 맴돌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귓가에 쟁쟁했는지 난 그날 하루에도 몇 번씩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길로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속 240km 이상으로 달리고 달려, 당신은 내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는가 봅니다. 이번에 당신이 떠나기 전 내게 목적지를 한 번 물어봤다면 내가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은 늘 그렇듯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정을 또 한 번 떠난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속 240km으로 달릴 수 있는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속도를 사랑했습니다. 당신은 속도 위에서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았으며, 모든 그 순간에 철저하게 집중하였습니다. 당신은 여러 차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도로 위에서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리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안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이죠. 모든 차량과 탈 것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서야 비로소 당신은 안전할 수 있으며, 당신이 빨리 앞서 나가는 것이 뒤쳐져 있는 다른 차량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안전하기 위해 너무 빨리 달리는 탓에 당신은 아무런 이정표도 확인하지 못할 것이며, 시간을 뛰어넘는 탓에 현실의 시간은 이미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에도 수 차례 당신의 바이크에서 날개가 돋아 당신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하는 상상이 아닙니다. 어느 길거리에서 조금은 우렁찬 바이크 시동 거는 소리, 엑셀레이터를 가동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신이 바이크와 함께 솟아오르는 이미지가 펼쳐집니다. 내 상상 속에서 당신은 부드럽게 돋움을 하여 당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를 하늘에서 즐기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만큼은 그렇게 당신이 아끼는 안전장치들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면 늘 당신의 뒤에 있느라 볼 수 없던, 그리고 늘 시커먼 헬멧에 가려져 있던 바이크 위에 올라선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온갖 하늘의 공기를 들이켜는 당신의 속도, 모든 숨구멍을 활짝 열고 온갖 하늘의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시는 당신의 속도, 나는 본 적이 없는 당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편한 표정을 짓고 하늘에 구름 걸려있듯, 그렇게 다 걸어 말리는 당신의 속도. 그렇게 오늘 하루의 하늘에도 당신의 구름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또 달아나고 또다시 맺힙니다.

당신의 속도에 한데 어우러졌던 그 날 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다려지지 않은 거친 속도와 그런 당신의 속도를 좇아가길 원했던 나의 속도가 섞였던 그 날들을. 조화를 이룬 듯 조화를 이룰 수 없었던 그 날들을. 당신의 속도가 나의 속도 곁을 스치자, 당신의 속도에 놀라워하며 다분히 쫓아가길 원했던 나의 속도, 그러자 당신의 속도가 늦춰질까 지레 겁을 먹고 다시 더욱 빠른 속도로 달리던 당신.

난 당신의 속도에 계산 없이 스며들었고, 당신의 속도는 더 이상 눈길조차 줄 수 없는 곳으로 최고의 속도를 내며 그렇게 숨어 버렸습니다. 희미한 그곳을 향해 나의 속도가 그렇게 멈춰 서서 당신이 사라진 그곳을, 당신이 돌아온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까 반대편으로 돌아올까 생각하며 그곳을 멍하니 응시하며 작은 숨결을 내뱉자, 당신의 구름이 총총히 박힌 그곳에서부터 빗방울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낮부터 밤으로, 밤부터 또 홀로 여는 새벽으로 하루 종일 그렇게 당신이 떠난 골목의 정수리로, 어깨로 연약하게 흘러내립니다.
당신이 안전한 운행을 하길, 속도를 즐길 줄 알았던 당신이 비록 내게 다가오는 속도는 느렸을지언정, 이내 느리고 느려 내게 돌아오는 길을 잊었다 하더라도, 당신이 늘 안전하길 나는 바랍니다. 당신이 지나친 그 풍경들 속에 조금은 내가 서려 있기를 또한 나는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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