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하루만큼의 잔여 감정을 남긴다.
네게 쏟아부었던 감정들이, 더 이상 받아줄 곳 담아줄 곳 없어 정처 없이 그 거리 위를 방황하는 것을 본다. 그 거리는 그 어떤 날들보다도 눅눅하고 축축하게 잠겨 오늘따라 더욱 애잔하다. 마음이 자꾸 쓰이는 것은 우리가 함께 했던 그 거리가 그리도 슬퍼 보이는 것 때문인지, 그 거리 위에 쓸쓸하게 떨고 있는 나의 지난 감정들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때문일지도 모르고, 둘 다 이유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날 이미 떠난 지난 감정들에 무심해지려고 노력해본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너와 쌓은 기억들에 굉장히 못난 가면을 씌워보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혀보기도 한다. 옆 골목의 달콤한 설탕 끓는 냄새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고, 골목 너머의 파도 소리에 홀로 힘을 실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거리에만 녹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이 벽에도 내 손바닥 안에도 네가 서려 있었다. 못난 가면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혀도 빛나는 기억들은 사그라들지 못했다. 꾸준히 빛나며 계속해서 곁을 맴돌았고, 온갖 감각을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너에게 맞춰진 나의 생활 패턴을 옮겨보려 부단히 애를 쓴다. 네가 곤히 잠들어 있으리라 확신되는 시간대에 하루를 시작한다. 네가 잠들어 있는 시간대에 하루를 시작하면, 그래도 나의 공기가 조금은 너에게서 덜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해서 이다. 날이 밝기 전의 모든 상쾌함을 홀로 쓸어 담아본다. 거기엔 네가 없길 바란다. 지난밤 어느 취객이 흘리고 간 노래 한 곡은 담을지언정, 간밤에 지나치게 밝았던 달이 흘린 유난히 빛나던 따뜻한 잎사귀 한 잎은 담을지언정, 거기엔 네 목소리도 네 냄새도 없을 것이다. 그리곤 네가 한창 분주하게 움직일 때 나는 더욱더 분주해질 것이다. 네가 만들어내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일 것이고, 네가 마시는 커피보다 더 진한 커피를 내려 마실 것이다. 네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도로를 미끄러지는 순간, 나는 더욱 크게 돋움 하여 거리를 박차고 뛰어볼 것이다. 네가 온갖 필요한 것을 사며 계산을 할 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많이 써볼 것이다. 네가 대화를 하며 미소를 짓고 웃기도 할 때라면,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시끄러운 영화들을 틀어 그 속으로 완벽하게 빠질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후에도 네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면, 난 너보다 조금 많이 일찍 하루를 끝낼 것이다. 그 잠드는 몇 분의 시간이 그렇게도 적막할 수 없어서 생각의 틈을 막고자 노래 몇 곡 베개에 가득하게 틀어 놓는 것 정도야 이제는 꾸준한 습관이 되었다. 잠을 자다 깨면 시간을 확인한다. 네가 일과를 끝낼 시간이네, 다시 스르륵, 네가 샤워를 하고 있을 시간이네, 따뜻한 물은 잘 나올까, 스르륵, 네가 읽을거리를 지니고 그리도 좋아하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겠네, 스르륵, 네가 불을 끌 시간이네, 거기엔 내가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는 너의 틈새에도 내가 조금은 자리 잡고 있을까? 스르륵.
하루는 하루만큼의 잔여 감정을 남긴다. 어제만큼 남았던 감정들에 오늘의 감정을 덧입힌다. 네가 충분히 손 잡아주었던 내게 남은 감정들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거리 위를 떠다닌다. 간밤에 푹 잔 기억은 때깔이 꽤 좋다. 옅지만 미소도 띠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여전히 너의 생활 패턴을 신경 쓰고 있는 기억은 오늘따라 많이 지친 것 같다. 그 모습이 거울을 보듯 너무나 익숙하여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그 기억을 달래 본다. 떠다니고, 떠다니다 지쳐 그 거리에 계속해서 자리를 잡고 누울지도 모를 기억들이다. 깊어질 수 있는 만큼 충분히 깊어지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더 생각할 기억들이다. 뒤에 남겨진 것들은 언제나 남겨진 힘이 있다. 너를 향한 내 기억에 더 이상의 애정은 없더라도, 남겨진 힘에 의해 오늘도 천천히 그 자리에서 흘러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움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