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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Dec 04. 2022

감말랭이 만들기

테라스에서 햇빛을 잔뜩 받고 있는 감말랭이가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내가 며칠 서울에 다녀온 사이에 만들어진 감말랭이였다. 지나가다 하나를 집어 먹으면 쫄깃한 게 아주 젤리 같았다.

“진짜 맛있다!”

음미하며 꼭꼭 씹어먹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이제 노하우가 생겨서 그래. 처음에는 잘 몰라서 딱딱하고 그랬거든. 지금은 아주 자신이 있다 이거야.”

나는 풉 하며 웃어넘겼다. 그때는 몰랐다. 맛있게 먹을 줄만 알던 감말랭이를, 내가 직접 만들게 될 줄은.


며칠 뒤, 그날은 감을 깎는 날이었다. 며칠 전 땀 흘리며 땄던 감들이 커다란 저장고에서 시원하게 대기를 타고 있었다. 그중에서 곶감으로 만들어질 모양이 더 예쁜 아이들은 따로 두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감말랭이가 될 신세였다.

감말랭이를 만들려면 일단 감을 다 깎아야 했다. 과일 껍질은 바나나 껍질이나 잘 깔 줄 아는데, 감 껍질이라니. 다행히 손으로 전부 다 깎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감 깎는 기계가 있었다. 하지만 자동이 아니라 반자동. 자동일 거면 아예 자동이던가, 반자동은 또 뭐람?

몇 년 전, 부모님처럼 귀촌한 이웃집에서 자동 기계를 새로 구입하면서 필요가 없어진 반자동 기계를 부모님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웃집 아저씨가 손재주가 있어서 직접 만드신 기계라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지, 나는 기계만 보고는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작업 순서는 이러했다. 가장 먼저 아빠가 감의 꼭지와 심지를 도려낸다. 반자동 기계를 다루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가운데가 알맞게 파진 감을 기계에서 뾰족하게 나온 부분에 꼽는다. 그러면 기계가 돌아가면서 감이 함께 돌아간다. 그럼 엄마가 마구 돌아가는 감 몸퉁이에 감자칼을 슬쩍 대는 것이다. 그럼 껍질이 스르륵 벗겨진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감은 나에게로 온다. 나는 마저 껍질이 깎이지 않은 부분들을 감자 칼로 벗겨내고, 성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도려내었다. 이렇게까지가 껍질 까는 작업이다.


우리는 이 날 함께 콘티 박스로 다섯 박스 정도를 깎았다. 난 그날 깨달았다. 감을 깎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일단, 우리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작업을 했다. 무릎, 엉덩이, 허리가 아프다. 그리고 감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저장고 안에서 어찌나 냉장보관이 잘 되었던지, 껍질이 벗겨진 채로 내게 온 감들은 정말이지 얼음 공 같았다. 장갑을 두 개나 겹쳐 끼고도 손이 시렸다. 손이 시리니 온몸이 추워졌다. 게다가 왜 이렇게 미끄러운지, 감을 잡을 때 손아귀의 힘을 잘 조절해야 했다. 감을 잡는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노련하게 감자칼을 쥐는 오른쪽 어깨가 굳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비명을 질렀다.


엄마 아빠는 손놀림이 참 빨랐고 나는 결코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를 돕는다고 이러고는 있는데 괜히 내가 더 시간만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내가 있어 평소에 두 분이서 깎던 것보다 빨리 깎았다고 말해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부모님은 중간에 점심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참 빨랐다. 아빠는 미리부터 해동되어 있던 고등어를 구워 주었다. 집안에서 구우면 냄새 빠지기 힘들다고 테라스에서 구우셨다. 잘 익어가는 고등어 냄새를 맡으며 아, 고등어엔 또 찌겐데, 하고 생각했다. 마침 엄마가 기가 막히게 된장찌개까지 끓여주었다. 부모님이 뚝딱 차려준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힘을 내서 작업을 이어갔다.


껍질이 깎인 감은 분할기에서 4, 5, 6등분으로 잘렸다. 크기에 맞춰서 엄마가 선별하여 분할하였다. 그러면 아빠는 잘린 감을 펼쳐서 건조기 안에 넣었다. 부모님 손발이 너무 척척 맞아서 나는 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뒷정리를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감 껍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감 껍질들을 들쳐 올리는데 마치 미역 줄기를 거둬들이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많은 미역을 만져본 적은 없지만, 미끄럽고 차가운 게 참 그러했다. 어느새 나는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곧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


테라스를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지난번 만들어져 거의 완성되가는 감말랭이를 다시 집어 먹었다. 쫄깃쫄깃 너무 맛있었다. 감말랭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를 알고 먹으니 그 맛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한번 씹을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오늘 우리의 수고로움에 아빠 엄마의 노하우까지 베어 들어간 2차 감말랭이는 또 얼마나 달고 쫄깃할까 기대되었다.


“감 따는 게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맞아, 감 깎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고생했어 우리 딸.”

나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계속해서 아프다고 징징대다가 9시도 안 되어서 방에 들어가 누웠다. 며칠 뒤에는 감말랭이가 아니라 곶감이 될 녀석들의 껍질을 깎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겁을 먹었다. 차갑고 미끄러운 감이 떠올라 괜히 한기가 돌았다. 나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감이 꿈에도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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