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May Maeng Dec 07. 2022

고생 뒤엔 삼겹살

며칠 전부터 나는 부모님께 누누이 이야기했다. 그날은 꼭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해야 한다고.

으레 부모님 댁에 가면 테라스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게 큰 행복이었는데, 그걸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는 발치 후 주의사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발치 후에 피만 멎으면 먹어도 된다, 약 다 먹으면 술 마셔도 괜찮다고들 하지만 왠지 치아로 하도 고통받았다 보니 주의사항을 치과에서 알려준 대로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도 술을 일절 마시지 않았다. 친구들 맥주 마실 때 물 마시고, 와인바 가서 에이드를 마시고, 야구 중계를 보며 맛도 없는 무알콜 맥주를 마셨다. 그래서 더욱 봉인 해제되는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것은 약간의 고생 뒤에 더욱 달콤한 셈이지. 일단 오전에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고, 조금 늦은 점심으로 삼겹살에 소주를 먹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행복했다.



그날의 일은 (또) 감 따기였다. 감이 어찌나 많이도 열렸던지, 정말 따도 따도 또 있었다. 요건 몰랐지? 하는 느낌으로, 마치 두더지 잡기를 하는 것처럼 안보이던 감들이 다시 뒤돌아 보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한번 해봤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힘든 시간이었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지만 여전히 등짝이 타들어갈 만큼 햇빛이 강렬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도 연신 얼굴을 찡그렸다. 등줄기에 땀이 조르륵 흘렀다. 감을 주우러 다니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자 금방 허리와 무릎이 아팠다.

나는 햇빛을 피해 감나무 아래 그늘로 숨어 들어갔다. 감나무 잎사귀들이 어느덧 색이 변해있었다. 첫 번째로 감을 딸 때에는 날씨도 거의 여름이었고, 잎사귀들도 푸릇푸릇했었다. 그런데,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덧 주황빛을 띠며 물들어있었다. 역시 시간은 말없이도 잘 흐르고, 자연은 표 나지 않지만 가장 꾸준하다. 곱게 물든 감 잎사귀들을 보며 괜스레 단풍놀이라도 온 것처럼 기분이 설렜다.


“가희야! (내가 대답이 없자) 얘는 감 줍다 말고 어디 갔데?”

“힘들다고 징징거리더니만 집에 들어갔나?”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 아빠가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나 여기 있다고 소리 지르며 부모님에게 갔다. 며칠 전 함께 마늘을 심었던 밭 근처였다. 엄마 아빠는 지친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오늘도 가장 힘들어하는 건 나였다.

“이거 좀 봐봐, 마늘 싹튼 거 보이지?”

나는 마늘 밭으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구멍들  아주 소수에서였지만 정말로 싹이 올라와있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과정에 나도 작지만 함께 참여했다는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마늘 싹을 보고 기운이 난 나는 직접 장대를 들고 높이 매달린 감을 따보기도 했다. 엄마가 하는 걸 옆에서 곁눈질로 보기만 하던 작업이었다. 장대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높이 들수록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팔 근육도 일정하게 사용해야 했고, 목표물을 잘 조준해야 했다. 역시 볼 때는 쉬워 보여도, 참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떨어진 감을 주워 담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킬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나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다시 또 저어기 나무로 시선을 돌리며 열심히 감을 조준했다.


오전 동안 딴 감을 한데 모아 놓는 작업까지 마치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슈퍼에 가서 삼겹살을 사 가지고 왔다. 테라스의 테이블에 몇 가지 반찬과, 고기 불판, 수저, 그리고 소주잔까지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치이익- 삼겹살 굽는 소리. 딱 열 달 만에 먹는 삼겹살이었다. 바람은 조금 불었지만 완연한 가을 날씨에 끝내주는 울긋불긋한 배경까지 갖추고 있으니, 삼겹살의 맛은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주. 날을 세어 보니 정확히   만에 마시는 소주였다. 스위스에서도 한동안 이가 아파서 마시지 못했던 술이었다. 엄마 아빠와 잔을 부딪히고 후루룩 소주를 삼켰다. 뒤이어 밭에서  따온 상추에 아빠가 노릇노릇 구워준 삼겹살을 올려 쌈을  먹었다. ,  맛이지. 그토록 먹고 싶어 눈물까지 흘리던  맛이 이거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 맛있는 , 좋아하는  나눠먹는  이런  진짜 행복이지. , 갑자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자기 성찰까지 하고야 말았다. 소주 한잔과 삼겹살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고생 끝의 삼겹살은 더욱이 끝내줬다. 물론 감을 따는 고생이 없었어도, 가을볕에 땀을 삐질 흘리지 않았어도 맛있었을 삼겹살이었겠지만 그 고생은 ‘함께’ 했기에 남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산 정상과 두 다리로 올라간 산 정상의 맛이 다르듯이, 두 다리로 땀 흘리며 올라가 먹는 컵라면 맛이 기가 막히듯이, 함께 땀 흘린 이들과 같이 입김 불어내며 먹는다면 또 그게 그렇게 끝내주듯이. 봉인 해제된 그날, 부모님과 감을 딴 후에 가을 하늘 아래에서 먹는 삼겹살의 맛은 그런 맛이었다.

이전 06화 감말랭이 만들기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가을방학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