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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Dec 10. 2022

3일 동안 감을 깎았다.

곶감을 준비하는 날이 다가왔다. 감말랭이를 만들 때처럼 반자동 기계를 이용하여 뒷마당에서 엉덩이와 어깨의 고통을 호소하는 시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이웃집에서 감 깎는 기계를 며칠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자그마치 ‘자동’ 기계이다. 반자동 기계를 주었던 이웃집이었고, 부모님과 가까운 사이의 이웃이라고 했다.


사실 감 깎는 자동 기계라고 해봤자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 크기나 기능도 사실 가늠이 잘 되지 않았고. 그래도 반자동 기계보다는 백배 나을 거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기계를 빌리는 날에 맞추어 감을 몰아서 깎기로 했다. 다른 수확물이나 김장 등의 일정은 감에게 우선순위가 밀리고 말았다.


첫째 날,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은 분주했다. 아빠는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기계를 설치했다. 기계가 커서 트럭으로 날아와야 했고, 전기를 끌어와서 앞마당에서 기계가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했다. 이웃집 아줌마도 오셔서 기계를 쓸 때 알아야 할 주의사항이나 세심하게 안전을 기울여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앞마당에 있는 백구 두 마리는 낯선 기계의 모습과 그 소음에 영 달갑지가 않은 눈치였다.


 깎는 기계만 해도 몸집이 큰데, 옆에 작업대까지   놓이니 흡사 곶감 공장을 가동하는  같았다. 감꼭지 부분을 도려내는 것도 손이 아닌 기계가 담당했다. 곶감을 걸을  있게  삐죽한 꼭지만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이 깔끔하게 제거되었다. 그러면  번째 단계로 박피기의 홈에 맞추어 꼭지를 끼우면 기계가 알아서 돌아가며 껍질을 깎아낸다. 여기까지는 엄마의 역할이었다.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일을 따박따박 아주 일정한 속도로 해내는 기계와, 그런 기계를 쉬지 않고 열심히 가동하는 엄마는 죽이  맞았다.


이해를 돕는 동영상


박피된 감은 작업대로 굴러왔다. 작업대는 내 담당이었다. 나에게 굴러온 감을 검수하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곶감용 감들은 상태가 대부분 좋고, 기계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실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간혹 중간중간 껍질이 미세하게 남은 부분이 있다면 감자칼로 날렵하게 도려내면 되었다.


나를 거친 감은 아빠에게로 갔다. 아빠의 역할은 곶감 걸 곳 세팅과 곶감 걸기였다. 올해에는 곶감 거는 장소를 바꿨다. 아빠가 물색한 장소는 평소 주차장으로 쓰는 구역. 원래의 용도에서 변환을 시켜야 하니 아빠의 센스와 재치가 필요했다. 다행히 그 공간은 동이 트는 이른 아침과 해가 지기 직전에만 빛이 드는 공간이라, 서늘한 곳에서 약 60일을 매달려있어야 하는 곶감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바람으로만 자연건조를 시켜야 하는데, 바람도 잘 들었다. 아빠의 기가 막힌 안목으로 새로운 곶감 걸이 장소가 탄생되었다.


첫 번째 날 우리는 총 1,551개의 곶감을 걸었다. 숫자를 다 셌을 때에는 콧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역시나 한 자세로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쭈그려 앉은 자세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그날은 치킨에 소주를 마시며 우리의 노고를 다독였다.


다음 날, 가을은 더욱 깊어져 있었고 우리의 작업 속도 역시 더욱 빨라졌다. 하루 해봤다고 나도 괜히 능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여지없이 마당에 울려 퍼졌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하려면 거의 소리를 치다시피 해야 했지만, 사실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느라 대화할 겨를도 없었다.


귓전이 웽웽거리며 정신 사나운 와중에도 모과 향기가 솔솔 났다. 앞마당에 심어 놓은 모과나무에서 나오는 향이었다. 백구 두 마리, 백돌이와 백진이는 여전히 기계 소리를 성가셔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맡은 작업대로는 쉴 새 없이 박피된 감들이 줄줄 밀려왔다. 감은 언덕을 쌓기도 하며 나의 속도를 압박하기도 했다. 어깨 한 번 필 여유, 이 깊은 가을을 감상할 틈 따위는 허락하지 않는 감 더미였다.


둘째 날까지 곶감 작업을 마치자, 헐벗은 감들이 주차장 공간을 가득 메웠다. 촘촘하게, 하지만 서로와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한 감들이 둥둥 매달려 있는 모습이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언제 이 많은 감들이 우리의 손을 한 번씩 거쳐 간 건지 싶었다. 개수를 세어보니 총 3,770개였다. 역시 기계의 힘은 대단했다. 감이 무게가 꽤 나가는데, 주차장 천장이 이 무게를 두 달간 헌신적으로 받쳐주기를, 걱정이 많은 나는 바랐다.


이제 날씨만 도와주면 된다. 우리의 이틀은 이렇게 곶감에 할애했으니, 이제는 자연이 도와줄 차례였다. 당분간 비가 오지 않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좋은 곶감으로 거듭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날은 왕갈비와 전날 먹다 남은 치킨 그리고 맥주로 곶감을 위한 축배를 들었다.



“기계가 있을 때, 남은 감까지 깎는 게 낫겠지?”

결국 다음 날도 우리는 감을 깎았다. 남은 감은 곶감이 아닌 감말랭이 용으로 남겨둔 감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라는 격려는 급격히 추워진 날씨 앞에서 맥을 축이지 못했다. 나는 티셔츠, 긴팔, 후드 집업, 그리고 잠바를 두 개나 껴입고 작업대에 앉았다. 많이 껴입은 탓에 몸은 둔해졌지만 손놀림까지 둔해질 순 없었다. 날이 추워지자 감은 더욱 차가워졌다. 이틀 동안 견디던 얼음 공이 더욱 무자비한 온도로 날 맞아주었다.


게다가 감말랭이 용 감들은 곶감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에, 내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얼음 공 같은 감을 쥐고 감자칼로 열심히 상태 점검을 하다 보니, 정말이지 이러다 손이 얼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너무 추워 울상이 된 채로 작업을 하고 있자 아빠가 걱정이 되었는지 내게 말했다.

“가희야, 추우면 들어가. 엄마 아빠 둘이서 해도 충분해.”

그렇게 말을 하는 아빠 역시 덜덜 떨고 있었다. 아빠야 말로 삼일 내내 저장고에서 감 박스를 꺼내오는 것, 감 껍질이 가득 차면 비워내는 것까지 다 담당하고 있어서 나보다 몇 십배는 힘들 텐데 말이다. 문득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바람이 차서 눈물이 금방 쏙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그래, 가희 너 추우면 들어가서 쉬어.”

엄마도 거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과 앞치마엔 감 껍질 쪼가리들이 잔뜩 튀겨 있었다. 감히 혼자 쉬겠다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니, 내가 킬리만자로도 올라갔다 온 사람인데, 감 깎다 포기할 순 없지.’ 비록 논리적이진 않지만 오기가 생기기엔 충분했다.


셋째 날 감 깎는 작업은 오전으로 마쳤다. 나는 점심을 먹고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소리를 듣고 깨서는 다음 날 아침인 줄 알았다. 내가 따뜻한 집안에서 잠든 사이 부모님은 뒷정리를 하고, 감말랭이 분할 및 건조 준비 작업을 마쳤다. 끝까지 완벽하게 함께 고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루 종일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고생한 부모님과 나는 뜨끈한 어묵 꼬치와 국물로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몸을 따뜻해지며 고생했던 삼일 간의 여정도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우리는 어느덧 차가운 감이 아닌 김이 폴폴 나는 어묵 국물을 닮아 있었다.

한 지붕 아래 저 쪽에서는 곶감이 될 감들이 잔뜩 매달려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말랭이가 될 감들이 들어간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음속에 풍요로움이 살랑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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