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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Dec 13. 2022

아빠와 총각무김치

본격적인 김장철에 앞서 우리 집은 총각무김치를 먼저 담갔다. 모든 재료는 우리 집 밭에서 나왔다. 빨갛게 잘 익은 먹음직스러운 총각무김치를 생각하니 재료 준비도 전에 군침부터 돌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마늘 까기. 저번 겉절이 할 때 알이 작은 마늘을 까며 고생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번 마늘은 그때보다 훨씬 알이 굵었다. 덕분에 마늘이 시원시원하게 까졌다. 하지만 한 손엔 마늘, 한 손엔 칼을 쥐고 오랜 시간 있다 보니 역시나 온몸이 아파왔다. 손바닥부터 시작하여 손가락 마디마디가 전부 저려왔다. 그럴 때마다 마늘과 칼을 잠시 놓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손을 세게 털어줘야 했다. 등도 점점 말리다 보니, 어깨도 목도 풀어줘야 했다. 마늘 까기는 역시나 고된 일이다.


다음으로는 쪽파를 다듬었다. 끄트머리 부분이 누렇게 변해있으면 뜯어내고, 머리 부분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머리 부분에 달린 흙과 지저분한 것들이 말끔하게 제거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직 씻지도 않았지만 새단장을 마친 쪽파들을 한데 모아놓으니 보기가 참 좋았다. 쪽파를 다듬는 건 어릴 때에도 했던 기억이 많아서인지 괜히 익숙했다.


쪽파가  준비될 때쯤에는 총각무가 쌓이고 있었다. 아빠가 금방 밭에서 뽑아온 아이들이었다. 아빠는 총각무를 수확해서 나르고, 이어서 1차적으로 다듬는 작업까지 해주었다. 너무 커다란 이파리들은 1차적으로 아빠에 의해 걸러졌다. 그러고 나면 엄마와 나는 총각무를 보다 깔끔하게 다듬었다. 무와 이파리 사이에 지저분한 부분은 살짝씩 도려내고,  몸통도 보다 깨끗하게 칼로 조금씩 긁어내듯 다듬었다.

이어서 엄마 아빠는 손질이 된 총각무를 닦고 절였다. 전체적으로 초록 초록한 줄기와 이파리들이 절여지며 퍼지고, 그 위로 예쁘장하게 생긴 무들이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남았다. 강인한 무와 유연한 이파리들이 그렇게 어우러졌다.



그렇게 잘 절여진 총각무는 다음날 아빠의 손에 의해 고춧가루를 비롯한 재료들과 함께 버무려졌다. 아주 커다란 고무대야에 잘 절여진 총각무가 전부 담겼다. 그 위로 엄마가 깔끔하게 손질된 온갖 재료들을 넣었다. 고춧가루까지 아낌없이 투척되었다.

고춧가루도 부모님이 직접 기른 고추로 만든 것이다. 색이 예쁘게 날 수 있도록 새빨간 녀석들만 따서 깨끗하게 닦고 건조기에 말린 고추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동네 방앗간에 맡겨서 가루로 빻아진 우리 밭 출신 고춧가루들. 고추 수확부터 그 과정을 지켜본 나에게 부모님 표 고춧가루가 참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아빠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는 열심히 고무대야 속 총각무를 버무렸다. 아빠는 허리를 숙인 채로 열심히 두 팔을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 하자 아빠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라는 말은 아빠가 한 10번 참고 1번 내뱉는 것 같았다.

“아빠 안 힘들어? 내가 할까?”

그러면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는 얘기했다.

“아니야, 이게 얼마나 힘든데. 너는 구경이나 혀.”

그렇게 말하는 아빠가 지쳐 보여 안쓰러웠다.


간을 보고, 색을 보고 하면서 아빠는 총각무들을 아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섞었다. 아빠가 쭈그려 앉아서 섞어야 할 때에는 가뜩이나 안 좋은 아빠 무릎이 걱정되었다. 무릎을 펴고 허리를 푹 수그려 작업할 때에는 허리가 걱정되었고.

그런데, 허리를 숙여 열심히 김치를 섞는 아빠의 옷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고춧가루를 닮은 붉은색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도 보았던 아빠 옷이 틀림없었다. 아빠는 정말 옷을 사지 않는다. 언니가 옷 사라고 용돈을 보내드려도 절대 옷을 안 산다. 엄마가 아빠 옷을 사면 왜 샀냐고 뭐라고 한다. 그런데 또 입기는 잘 입는다. 아껴서.


아빠가 총각무 김치를 하며 입고 있던 옷은 상당히 낡은 옷이었다. 너무 오래 입어서 다 해진 옷. 아빠가 허리를 숙일 때마다 등이 보였는데, 등 부분에 옷 원단이 다 해져서 희끗희끗 살이 보이는 듯했다. 물론, 집에서 작업할 때에는 편한 옷이 최고이고 고춧가루가 팍팍 튀길 수 있으니 깔맞춤을 하는 것도 참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는 딸은 그런 맘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너무 속상했다. 우리 아빠도 새 옷, 멋있는 옷도 입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참 옷 정말 안 사 입는다. 괜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휴 고춧가루가 왜 이렇게 매워.”

나는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고춧가루 탓을 했다.

“그렇지, 이번에 고춧가루 색에 비해서 매운 거 같아!”

엄마가 눈치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간이 완벽하게 맞았을 때 비로소 아빠는 버무리기를 멈출 수 있었다. 총각무가 먹음직스럽고 때깔 좋게 변해있었다. 아빠가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인 채 팔을 휘저었고, 아빠가 또 몇 번이나 무릎을 굽혀서 만들어진 총각무김치일까. 여기엔 얼마나 많은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걸까. 제아무리 단단한 총각무라지만 부모님의 사랑 앞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내가 감히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두터운 사랑으로 총각무가 참 아름답게 익어 갈 것이다.

총각무 상태가 워낙 좋아서, 익기도 전부터 환상적인 맛이 났다. 며칠 뒤가 참 기대되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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