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맹 Dec 17. 2022

김장하셨다고요? 존경합니다.

역시나 올 해에도 찾아온 김장철. 지난 11월 초에 김장 날짜를 잡고, 날을 잡자마자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그것도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이 많을 때 함께 김장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집 김장하는 규모는 제법 크다. 우리 집은 4 식구이지만 부모님은 친척들의 김장까지 한다. 이젠 그냥 우리 먹을 것만 하라고 했지만,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여전히 올해에도 어마어마한 김장을 했다.


김장의 날 사흘 전부터 서서히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늘을 깠다. 자그마치 마늘 100개. 와, 정녕 이 많은 마늘을 다 깔 수는 있는 건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엄마 아빠와 뒷마당에서 슬슬 까다 보니 또, 역시 지나고 나면 금방이었다. 마늘은 깨끗하고 하얀 속을 드러냈고, 내게 남은 건 엉덩이와 손가락의 고통이었다.

다음으로는 생강을 깠다. 역시나 우리 집 밭에서 수확한 생강이었다. 생강을 캘 때 진하던 그 향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제각각 모양의 생강을 까기 편하게 쪼개고 껍질을 벗겨내는데, 역시 생강 까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른손이 도대체 요즘 왜 이렇게 안 하던 짓을 자꾸 하는 거냐고 내게 항의했다.


김장의 날 이틀 전에는 무와 배추를 준비시켰다. 무에 대한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셋이서 역할 분담을 확실히 했다. 가장 먼저 아빠가 무를 몸통과 무청을 문리를 시켰다. 그럼 엄마는 무청을 엮었고, 나는 무 몸통을 크기 별로 세 분류로 나누었다. 보관해서 두고 먹을 무들은 신문지에 하나씩 싸 놓기도 했다.

그다음에 이어서 배추를 뽑아야 하는데, 사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뽑다가 포기했다. 배추가 너무 정말 너무 컸다. 왜 이렇게 배추가 실하게 잘 컸는지, 참 무겁고 거대했다. 끼고 있던 목장갑은 배추에 축축하게 젖어들어갔고, 11월 초의 햇빛은 또 왜 이렇게 뜨거운지 온몸에 땀이 났다. 그 와중에 배추를 아빠가 뽑아주면 바로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이고 겉면의 지저분한 이파리들은 떼어냈다. 허리가 아파한 손으로 들고 한 손으로 떼어내려 해도, 배추가 너무 무거워 차마 내 팔근육이 버텨주지 못했다.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성격인데, 하필 또 배까지 너무 고팠다. 난 결국 우거지상이 되어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부모님이 나보고 배추 꼭 뽑아야 한다고 시킨 것도 아닌데, ‘도와드려야 해.’라는 강박 때문이었다. 결국 아빠가 말했다.

“아이고, 이거 아빠가 혼자 해도 충분해. 아빠 혼자 슬슬 해다가 나르면 돼. 작년에도 혼자 다 했는데 뭐. 일단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근데 정말로 나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버렸다. 엄마는 또 엄마대로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빠는 결국 혼자 오후 내내 배추를 모두 뽑아 날라놓았다. 이제 아빠도 연세가 있는데, 나이 생각 안 하고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배추 밭에서 폭발해버린 나 자신이 미웠다.


김장의 날 전날이 밝았다. 아침 7시에 화장실을 갔는데 밖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장실 창문 너머로는 뒷마당이 보이는데, 아빠가 그 아침부터 아궁이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늘 보리차를 끓여 먹는다.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집에 보리차가 없었던 적이 없다. 눈 건조증이 심한 날 위해 내가 부모님 댁에 있는 동안 아빠는 결명자도 듬뿍 넣어서 끓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빠는 아침부터 김장 속에 들어갈 무도 다 닦아 놓았다고 한다. 김장만 끝나면 그래도 올해 큰 일은 끝나는 거니 어서 김장 끝나고 부모님이 제대로 좀 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엄마와 나는 쪽파와 대파를 다듬었다. 역시나 햇빛이 좋았다.

오후에는 배추 절이기를 했다. 배추를 총 80포기 넘게 준비했는데, 배추가 너무 커서 그것도 4등분을 해야 했다. 배추를 가를 때 보니 속도 참 알차게 익어 있었다. 아빠가 배추를 4등분 해서 자르면 엄마가 거다란 고무 대야 세 개에 나누어 배추를 절였다. 어제 내가 잔뜩 힘들어한 탓인지 부모님은 나에게 힘든 건 시키지도 않았다. 나는 옆에서 배추를 집어 주고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는 등의 잔심부름 정도만 할 뿐이었다.



저녁에 엄마는 풀을 만들고 육수를 내느라 바빴고, 나와 아빠는 무채를 썰었다. 아빠는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빠 혼자 어마어마한 무를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며칠 전 아빠는 김장 중에 무채 써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가희는 좀 작은 것들로 하다가 무 작아지면 아빠한테 줘.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해야 해 해!”

아빠는 내가 손을 베일까 노심초사했다. 무채를 써는 채칼이 참 날카로워 보이긴 했다. 무가 아주 쓱싹 잘도 갈렸다. 나는 아빠 말대로 상당히 조심하며, 무 크기가 줄어들면 아빠에게 넘기곤 했다.

“아이고 부녀가 아주 보기 좋네.”

라며 엄마는 우리의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일을 다 마친 후에는 김장 통을 닦으며 대망의 내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드디어 김장하는 날. 새벽 6시 반에 일어났다. 어제 절여 놓은 배추를 씻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김장을 도왔을 때에는 늘 속 싸는 것만 했었다. 그게 김장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절여진 배추를 씻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김장 노동이었다. 엄마가 1차적으로 헹궈서 나에게 넘기면 나는 2차로 헹궈서 아빠에게 넘겼다. 그럼 아빠가 마지막으로 꼼꼼히 다시 헹구고 잘 씻긴 배추를 따로 옮겨 놓았다. 배추 담이 쌓이기 시작했다. 김장을 함께 해온 시간이 긴 만큼 부모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뭐라도 하겠다고 애쓰고 있었고.

무채를 비롯한 속을 만들 때에는 총각무김치 때처럼 아빠가 고생해주었다. 그때와 같은 커다란 고무 대야에 엄마가 준비한 각종 것들을 넣고 아빠는 열심히 쓱쓱 비볐다. 그때쯤 옆 동네에 살고 계신 고모와 고모부도 건너왔다. (고모네는 며칠 뒤에 김장을 했고, 우리 셋은 고모네 김치도 도와주러 갔다. 이른바 김장 품앗이.) 어른들은 세상 가장 중요한 일처럼 간을 보았다.



김장 속이 준비된 후 고모, 고모부, 엄마, 나는 김장 속을 싸기 시작했다. 우리는 테라스 한편에 김장 매트를 펼쳐 놓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빠는 김장 통이 채워지면 빈 거로 바꿔주고, 김장 통을 옮기고, 배추를 새로 가져다주는 역할을 맡았다. 추가로 아궁이에 수육을 삶는 일까지 맡았다.


김치가 정말 너무너무 많았다. 그야말로 김장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싸는 시간이었다. 온몸이 아픈  물론이었고,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사람이 쉬지도 않고 속을 싸고 있는데, 배추는 끊임없이 도착했다. ‘  있어.’ ‘죽겠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치면 온몸이 가루가  것처럼 힘들었다. 그래도 이제  수육에 김치를 싸서 소주 한잔을   있다는 달콤한 희망이  살려 내었다.



올해 우리 집 김장은 역시 끝내주게 맛있었다. 2시간 동안 아궁이 솥에 삶아진 수육은 또 어찌나 그렇게 맛있던지. 흰쌀밥, 김치, 수육, 소주만 놓고 먹었는데 정말 김장의 노고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었다. 고모가 말했다.

“아니 도대체 김치가 매년 이렇게 맛있게 되는 비법이 뭐야, 나도 좀 알려줘 봐.”

“그건 우리 딸도 안 알려주는 비법이야.”

엄마 대신 아빠가 대답했고, 우리는 크게 웃었다. 김치 맛 술맛 고기 맛, 모든 게 완벽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매년 김장을 해내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모든 김치가 탄생되기까지 누군가는 며칠을 고생하고 또 고생했을 것이다. 애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한 해의 김치를 담그는 일. 요즘에야 워낙 사서 먹는 김치도 맛있고, 김장을 해도 또 절인 배추를 살 수 도 있는 만큼 방법이 편해졌다지만 그럼에도 굳이 고생을 하며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 모두를 존경한다.



김치 부자가 된 우리는 참으로 든든하다. 함께 이 든든함을 느끼는 모든 김치 부자들에게 김장하시느라 참 고생 많으셨다고 글을 통해 남겨 본다.

이전 09화 아빠와 총각무김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