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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Dec 26. 2022

김장 후, 가을 소풍


김장도 끝나고 수확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비로소 숨통이 좀 트였다. 물론, 그래도 엄마 아빠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온종일 움직였지만.

 

김장이 끝나면 함께 놀러 가기로 했다.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목적지는 바다였다. 영덕의 바다로 향했다. 영덕은 상주 부모님 댁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이다.

 

아침부터 설렜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을 소풍이라서도 그렇지만, 사실 바다를 보는 설렘이 컸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그냥 바다 말고, 파도 마구 치는 바다. 서핑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바다 수영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파도가 마구 치는 바다를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스위스에는 바다가 없어서 속상했다. 내륙 국가에 살아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그래도 가까이에 호수가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없이 잔잔하기만 한 호수는 나를 가라앉게 했다. 나는 가라앉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호수에도 파도가 쳤다. ‘해변’이라고 부를만한 장소들도 간간히 있었다. 호수를 휴가철 바다처럼 즐기는 로컬들은 참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나에겐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파도의 부재 때문이리라 싶었다.

 


우리는 영덕에 도착해서 바로 식사를 했다. 이른 점심식사였고, 메뉴는 칼국수였다. 해물이 왕창 들어간. 3인분이 커다란 그릇에 한꺼번에 나왔고, 우리는 열심히 면과 국물을 먹었다. 음식이 조금 짜서 엄청나게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물 칼국수는 바다의 맛이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해변으로 갔다. 사실,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니 그냥 지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변을 찍었다.

 

남호 해변은 작은 해변이었다. 성수기 때에는 캠핑이나 차박을 많이 하는 곳 같기도 했다. 공중 화장실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거센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처럼 울상이었다. 그리고, 귀를 가득 메우는 소리. 바로 파도 소리. 쏴아 쏴아 철썩 샤르르르르, 쏴아 쏴아 철썩 샤르르르르.

 

나는 곧장 해변으로 뛰어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중심을 잡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해변엔 아무도 없었다. 우리 가족만 있었다. 나는 신이 났다. 파도는 우렁차고 거칠게 우리를 반겼다. 바다 앞까지 갔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피하며 열심히도 달렸다. 나는 꿱꿱거리며 잘도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는 느낌이었다. 파도는 내가 내지르는 소리도 열심히 집어삼켰다. 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열심히 달리고, 커다란 바위 위에도 올라갔다. 파도가  바위마저도 삼킬  같아서 금방 내려왔지만.

 

엄마도 신이 난 것 같았다. 나와 엄마는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파도를 쫓아갔다 다시 도망치는 놀이를 계속했다. 그건 참 단순했지만, 파도의 성질이 계속 변하여 종잡기 어려운 게임이기도 했다. 폐에 바닷바람이 잔뜩 채워졌고, 귓가엔 파도 소리가 넘실거렸다. 바다를 자주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파도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해양 산책로를 걸었다. 성수기에는 여행자들이 갈매기 먹이를 사서 주는 곳이어서 그런지 갈매기들이 잔뜩 있었다. 매점은 문을 닫았지만, 어찌 알고 간식을 챙겨 온 이들이 있어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바다 위에 지어 놓은 산책로는 높이가 꽤나 높았지만, 파도가 워낙 세서 그런지 그 높이까지도 물이 튀기기도 했다.

 


우리는 카페도 갔다. 5년 전에 내가 탄자니아에서 일 년을 보내고 막 돌아왔을 때도 가족들과 영덕 바다를 갔었다. 그때 갔던 카페였다. 바다 아주 가까이에 자리 잡은 카페. 그때는 영덕에 카페가 많이 없었는데, 어느새 새로운 카페들이 참 많이 생겨난 것 같았다. 다른 카페를 갈까도 했지만, 옛 추억에 젖을 겸 오래된 카페를 선택했다.

 

카페는 그동안 참 많이도 낡은 채였다. 여기저기 녹이 슨 곳이 많고, 창문의 얼룩은 오래전부터 지우지 않은 것 같았다. 새로 생겨난 카페들과 경쟁하려면 재정비가 필요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5년 전에는 자리 잡기도 힘들어서 네 식구가 바 테이블에 주르륵 앉았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비어있다시피 하였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바다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커다래질 파도를 끌고 오는 바다가, 계속된 굴곡을 만들어 내는 바다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커피 맛도, 풍경 맛도 우리의 김장 노동의 여파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회센터에 들러 광어우럭회를  왔다. 대게가 철이라지만, 생선회가   먹어야  음식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리스트에 대게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보낼 감말랭이 포장 작업을  후에, 우리는 광어우럭회를 먹었다. 매운탕 거리도 가져와서 회를 먹는 동안 끓여 먹었다.


 

깻잎 한 잎, 초장 찍은 회 한점, 쌈장 찍은 마늘 그리고 소주. 이 조합이 스위스에 있을 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며칠을 끙끙 앓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조합대로 먹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온몸으로 그리워하던 맛이었다. 바다도 자주 보고, 이렇게 깻잎과 회 조합도 자주 먹으며 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알고, 또 그걸 자주 하는 삶 말이다.


스스로 오늘도 잘 먹고 잘 지냈다고 여길 만한 행복이 꼭 큰 것이어야 할 필요는, 남들에게 거창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은 걸 보고, 먹고 싶은 걸 잔뜩 먹은 날. 우리의 가을 소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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