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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Dec 29. 2022

엄마의 편생강

이번 가을 방학 동안 난 참 처음 ‘본’ 것이 많다. 먹을 줄만 알았지,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처음 본 것들 말이다. 나는 그것들을 눈여겨봤다. 감말랭이나 곶감, 각종 김치, 엄마의 반찬과 국까지. 잘 씹어 먹고 소화만 시키던 내게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하는 것은 또 새로운 영역의 것이었다.


편생강도 그러했다.


“가희야 심심하면 엄마 편생강하는 거 구경해.”

나는 방에 누워있었다. 생리통이 심하진 않았지만 기운이 쫙쫙 빠지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은 직후 잠에 들랑 말랑 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편생강 만드는 걸 보고 싶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겨우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만성 비염이 있고, 겨울이면 수족냉증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목부터 안 좋아지는 등 후두염 증세가 자주 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생강은 평생 달고 살면 참 좋을 그런 식품이다. 엄마는 그런 날 위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편생강을 만들어줬다.



궁중 팬에 얇게 썰린 생강이 잔뜩 담겨 있었다. 엄마와 함께 껍질을 벗겨낸 생강이 어느덧 얇게 썰려 있었다. 나는 편생강에 설탕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도처음 알았다. 생강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설탕물이 잔뜩 생겼다. 생강은 아주 밝은 노오란 색을 내뿜으며 설탕과 함께 보글보글 끓었다.


“이렇게 끓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결정이 확 생겨. 그럼 잘 휘져어 줘야 해.”

엄마는 계속해서 편생강에 집중했다. 결정이 생기기 전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젓고 있었다. 생강이 서로 엉기지 않게 하기 위함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이고 이번에는 결정이 생기는데 좀 걸리네, 너를 너무 빨리 불렀나 보다.”

엄마는 내게 설탕 결정이 생기는 걸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엄마 나도 할게, 좀 쉬고 있어.”

엄마의 팔이 하도 쉬지를 못하길래, 나는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의 손에서 주걱을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그냥 구경하라고만 하셨다. 내 눈에는 편생강이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사실은 엄마의 팔이 더 들어왔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팔, 힘들거나 지치는 내색 없이 같은 리듬과 속도로 움직이는 팔.


엄마의 팔은 움직이면서 충전이 되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먹을 편생강을 매번 손수 만들면서, 무엇이든 앞으로 더 나으리라는 마음을 담은 충전이었다. 주걱을 휘저을수록 엄마는 더욱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두 눈은 편생강의 결정이 언제 생길까 궁금해하면서, 휘젓는 주걱으로는 엄마의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면서.


사실 생강이 밭에서 갓 뽑았을 때의 향은 참 좋지만, 그리 군침 도는 식재료는 아니다. 어릴 적에는 반찬이나 국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다 생강이 씹히기라도 하면 퉤 뱉어내곤 했다. 지금도 생강을 의도치 않게 먹게 되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편생강도 처음부터 즐겨 먹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입에 딱 넣었을 때는 괜찮으나, 씹을수록 생강의 진한 맛이 온 입안을 메운다. 참 애절하게 맵다. 그래도 몸에 좋다는 걸 스스로 찾아 먹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그런 맵고 쓴 맛쯤이야 가볍게 삼켜 버리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설탕 결정이 생기고 있었다. 엄마는 지금껏 휘젓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팔을 휘저었다. 하얀 설탕 결정들이 생강마다 들러붙었다. 이리 볶이고 저리 볶였다. 순식간에 노랗던 생강에 허연 가루들이 달라붙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는 팬에 있던 생강들을 쟁반으로 옮겨놓았다. 평평한 곳에다가 잘 펼쳐놓고 얼마간 말리면 되었다. 이번에도 또 몇 달 동안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질 편생강이 완성된 것이다.


엄마의 편생강이 정말 몸에 이로운 건, 생강의 효능이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크지만, 사실은 그보다 엄마의 정성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성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우리에게 참 크게 작용한다. 생강이 우리 몸에 줄 수 있는 효과는 그렇게 곱절이 된다.


역시 무엇이든, 그 과정을 보게 되면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엄마의 편생강을 하나씩 집어 먹을 때마다 엄마가 열심히 주걱을 쥐고 젓던 팔을 떠올린다. 손발보다 마음이 훨씬 먼저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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