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앞에서의 짧은 단상
노래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말동무를 해줄 사람이 곁에 없어도 괜찮았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해도 아쉽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들리는 것이 없어도 귓가를 가득 메우는 것들이 있었다. 그 시간에 조금씩 발을 들여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작기도 했고, 동시에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을 만큼 크기도 했다. 그런 풍경은 늘 짧은 시간 매혹적으로 다가와, 아련하게 끝이 났다. 늘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고, 남은 잔상을 담다 보면 어둠에 갇히곤 했다.
하늘 위로 무수한 탈 것들이 지나갔나 보다. 각자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들의 바퀴 자국이 하늘에 고스란히 찍혔다. 각자의 방향을 향하던 것들이 하늘 위에서 제갈길을 찾던 모습조차도 고스란히 찍혔다. 각자가 가진 마음의 질감이 하늘에 작은 웅덩이 여러 개를 만들기도 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지나가 깊게 파인 자국 위로 구름이 살포시 덮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그곳엔 탈 것만이 아니라 작은 발자국들도 여럿 새겨져 있었다. 숨을 죽이고,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던 그 떨리는 순간의 마음마저도 새겨져 있었다. 그중 어느 것은 내가 아는 우리의 발자국이려나 싶어 세심히 하늘 곳곳을 살피기도 했다. 작고 붉은 발자국들은 하늘 위에서 미끄러지듯 흐르다 구름에 턱 걸쳐졌다. 그리고 이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어떤 기억이 흐르다 멈춰 한참을 그렇게 넋을 놓고 있었을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애써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쉽게 놓아버리도 못했던 것들, 큰 노력을 거듭해도 자꾸만 미끄러지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전부 놓아 버려도 결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넋을 놓고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기억이 비로소 흘러간다. 보이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모양을 하늘의 어딘가에 남겨두며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잠식해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서로를 덮어갔다. 서로를 물들이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만져보다가 이내, 애쓰지 않아도 서로에게 닿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색이 맞닿아 전에 없던 빛을 발했다. 서로의 표정을 닮아가며,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얼굴을 내어 보이며 신기해했다. 느껴본 적 없던 출렁거림에 감히 눈을 감지도, 뒷걸음질 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였다.
하늘만 바라보다 문득 내려다본 바다에 하늘보다 더 멋진 하늘이 있었다. 깊은 하늘이, 얕은 바다에 촘촘히 맺혀 있었다. 깊게 서로를 느껴보려 다가가던 것들이 이내 완벽히 닮아가는 모습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을 알기에, 그 작은 시간 동안 금세 서로의 맨살에 닿았다. 얕은 바람에 바다가 뒤척일 적마다 하늘도 뒤척였고, 구름의 그림자가 짙어질 적마다 바다도 제 채도를 잃어갔다. 서로를 확인하지 못할 만큼 어두워지면, 허공에 쏟아낸 남은 목소리가 서로에게 가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매일이 다른 그 모습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매일 같은 자리에서 에싸위라의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있으면 해는 나를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고, 나는 그대로 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눈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겨, 내 몸에는 온통 노을 자국이 새겨졌다. 그것은 손바닥에서 두 뺨에서 귓불에서 서로 뒤섞여, 나는 지는 해의 색을 닮아갔다. 귓가에 온통 해의 노래가 퍼지면 발끝은 가벼워졌다. 해가 하늘에 만들어놓은 자국을 따라 나도 그렇게 조금씩 소리가 없는 움직임을 만들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바다를 향해 그리고 또 다른 하늘을 향해 가는 해를 따라 서서히 이동하며 그의 걸음을 닮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