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하는 일
에싸위라는 바람의 도시로 불린다. 바위에 부서지는 바람, 서퍼들의 환호를 받는 바람,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람. 에싸위라의 바람은 때론 없던 마음도 만들어내고, 있던 마음도 사라지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정작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꽤나 많은 일을 해내는 바람이 에싸위라의 해변으로, 골목으로, 그리고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바쁘게 다닌다.
에싸위라는 한겨울에도 영상 1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기온만 보면 에싸위라는 겨울에도 그리 두터운 옷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그 날의 바람에 따라 옷차림이 결정되었다. 바람이 잠시 쉬어가는 때이면, 반팔 차림으로도 충분했지만, 바람이 꽤나 활발하게 활동할 때에는 꼭 따뜻한 무언가를 입어줘야 했다.
처음 에싸위라를 찾았을 때는 9월. 불어닥친 바람의 세기에 놀라 기모 후드 티를 샀다. 사실, 모로코의 가을에 얼마나 기모 후드티를 입고 다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모로코에서 지내는 두 달 동안 에싸위라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정말 요긴하게 입었다. 바람 부는 에싸위라에서는 물론이고, 해가 들지 않고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숙소에서 입고, 사하라 사막에서 밤을 보낼 때도 에싸위라 후드의 온기로 버틸 수 있었다.
에싸위라를 상징하는 서퍼와 (에싸위라에서는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낙타의 그림과 함께 ‘에싸위라, 모로코’라고 등에 크게 쓰여있는 후드티였는데, 에싸위라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옷이다. 사실 서울에서 ‘서울, 한국’이라고 크게 쓰인 기념품 티를 입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후드를 입어야만 에싸위라의 바람과 마주하는 게 비로소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모로코를 찾았을 때에는 가을과 겨울의 사이인 11월. 여전히 바람이 덜하고 해가 쨍할 때에는 반팔 차림으로도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언제 바람이 몰아칠지 몰라 에싸위라 후드는 늘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든든하게 후드티를 입고 여러 개의 골목을 지나 에싸위라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성벽에 올랐다. 3년 전에는 공사 중이라 폐쇄되어 있던 곳. 그곳에 올라 높지 않은 성벽에 기대어 바다를 한눈에 담았다. 바람이 거세었다. 머리카락이 요동쳤고, 마음이 울렁였다. 성벽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지긋이 바다를 바라보고, 하늘의 끝에 초점을 두어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 사이를 가득 메운 바람이 앵글 안으로 들어와 나풀거렸다. 해변의 모래를 날리고, 어시장의 소란을 띄우고, 방파제의 테트라포드를 누비고 온 바람이, 곳곳의 살점 하나씩을 지닌 채 그렇게 나풀거렸다.
톡톡한 기모 후드 티의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있어도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거센 바람이었다. 바람에 의해 한 번의 날갯짓으로도 떠나온 집으로 단번에 도달할 것 같은 새들의 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새를 따라 곳곳의 기억들이 함께 날아다녔다. 바닷속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바람이 앗아갔고, 대신 기억의 눈과 귀를 막아 그저 하늘의 언저리에서 하늘거릴 수 있게, 그렇게 바람이 해주었다.
바람에 의해 떠나간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접고, 바람에 실려 다시 돌아올까 싶은 기대감도 감춘 채, 그저 하늘의 끝과 생각의 끝이 만나는 지점을 오래도록 바라볼 뿐이었다. 바람에 마음이 시렸고,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후드 티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게 내 온도를 나누어주었다. 한껏 따뜻해진 바람을 품고 함께 몽글몽글해졌다. 에싸위라 바람의 한가운데에서 그저 모든 것을 바람에 맡긴 채, 바람의 여정을 할 수 있는 한 힘껏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