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내린 폭우에 잔뜩 젖은 신발은 그날 아침까지도 마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젖은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서자마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내 신발뿐 아니라, 주위를 모두 젖게 만들었다. 마땅히 쉬어갈 곳도 나오지 않아 걷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는 절대 멈출 것 같지 않았고, 그날의 길도 절대로 친절을 베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났을 때, 눈앞에 마술처럼 바(Bar) 하나가 나타났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를 바에 들어서자,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곳은 마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바나 카페에 들러 쉴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발 벗기’ 였는데, 그때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테이블마다 아는 얼굴들이 가득했기에 나는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느라 바빴다. 며칠 전 헤어져 소식이 궁금하던 순례자도, 건너 건너 이름만 들었던 순례자와도 서로 반가워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손에는 맥주나 와인이 한 잔씩 들려 있었다. 여기에서 또 저기에서 ‘살룻(Salud)!’이라 외치는 건배사들이 넘쳐났다. 이미 많은 사진을 함께 찍어온 이들이지만, 그날만큼은 또 달랐다. 우리는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사진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표정을 짓기 바빴다. 찍은 사진을 보고 깔깔거리고, 또 한 번 건배를 외치느라 바빴다.
세 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걸었던 것도, 아직도 젖어있는 신발을 신고 있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너 나할 것 없이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려 온 사람들 같았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에 다다라,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오아시스에 비로소 닿은 나그네들 같았다. 그날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기 하루 전이었고, 모두는 마치 크리스마스의 이브를 즐기듯이, 한 해의 마지막에 새해 소망을 빌 듯이 흥분해있었다.
축제와도 같은 그 시끄러운 바에서 우리는 그동안 한껏 움켜쥐고 돌돌 말아 끌어안고 있던 모든 것을 죄다 펼쳐놓았다. 서로의 마음이 아주 조금씩 다를 뿐,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모양인 것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나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걸었던 적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이면 길을 끝내는 후련한 순례자들이 되기보단, 그저 그날 하루의 남은 길에 집중하기로 했다. 걸어온 길마다 각자의 기억들이 촘촘히 맺혀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삼킨 채 우리는 그저 그날의 길 위에 더 많이 우리를 새겼다.
여정을 끝내기 위해 시작했지만, 끝나가는 여정에 기분이 자꾸만 방향을 잃어갔다. 우리는 한없이 느려지기도 했고, 자주 멈춰 섰다. 조금이라도 더 ‘걷고 있는’ 상태이고 싶었다. 가방은 너무나 가벼웠고, 신발엔 날개를 단 것만 같았다. 우리는 길 위를 걷는 듯 날았고, 속삭이듯 노래했다. 함께 걷던 우리는 앞장서서 걷던 누군가가 발견한 펍에 또다시 발을 들였다. 프란젤리코(Frangelico)를 한잔씩 또 두 잔씩 마시고, 최선을 다해 한정된 시간을 누렸다. 할 수 있는 한 크게 웃으며 후회 없이 취해갔다.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우리는 더 이상 젖지 않았고, 함께 걷는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함께 취해가던 그날, 우리는 그렇게 길 끝에 다다르기 직전의, 다시없을 열기를 함께 누렸다. 프란젤리코의 헤이즐넛 향이 입가에서 완벽히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다음 바에 멈춰 섰다.
오직 도착하기 위해 걸어온 이들이 그렇게 자꾸만 멈췄다. 더 이상 시간을 취하는 걸음이 안도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의 걸음이 향하는 곳이 계속해서 멀어지기를 바랐다. 성실하게 한 치 앞으로 다가오는 ‘도착’을, 할 수 있는 한 늦추고 싶은 다 같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