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뒷 Boo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eokc Nov 16. 2022

나는 진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떨림과 울림”(김상욱)

"정지한 모든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소리는 떨림이다. 빛은 떨림이다.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현상이다.

전자공학의 절반 이상은 진동과 관련되고, 이공계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보는 물리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려고 한다. 사실 물리는 차갑다. 지구가 돈다는 발견처럼 경험에 어긋나는 사실은 없다. 우주의 본질을 보려면 인간의 모든 상식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



‘알쓸신잡’ 등 방송 출연으로 친숙한 김상욱 물리학 교수, 그가 쓴 <떨림과 울림>을 섬북동에서 함께 읽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반 단출하게 모인 4명의 멤버, 그런데 책을 읽은 소감이 ‘정말 좋았다’부터 ‘정말 싫었다’까지, ‘결론이 허무했다’부터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까지 정말 다양했다. 모두가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의구심을 품고 조심조심 이어지던 대화. 하지만 한 시간 반 만에 우리는 여느 때처럼 편안하게 서로 침을 튀기며 막말을 나누고 있었다.



1.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D: 전자기력부터 발전기의 원리까지(p.165~177)가 제일 재밌었다. 기계치여서 전자기기의 작동원리 같은데 관심이 없었는데, 책에서 쉽게 설명을 해주니 재밌었다. 발전기의 원리, 모든 전자기기가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코일, 축전기, 저항의 조합을 이해하게 됐다. 다만 원자가 92번까지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만, 93번부터는 원자핵에 중성자를 넣어서 핵을 둘로 쪼개는 원자 핵실험 과정에서 추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가학적으로 느껴졌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했는데, ‘과학에 의미 따위 없다, 의미부여는 인간이 한다’는 우울한 결론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K:’잼을 바른 빵을 떨어뜨리면 꼭 잼을 바른 면이 아래로 떨어진다’가 생각난다. 이번이 3번째 읽는 건데, 처음 읽었을 때는 좀 감상적이라고 느꼈고, 두 번째는 책을 구입했기 때문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안 그러면 손해니까(하하). 하지만, 다시 보니 착각이었다. 전혀 모르겠다. 저자가 평균적인 과학 수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공대 학부생 정도는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지.


그래도 흥미로왔던 3가지를 꼽아보겠다. 첫째, 저항은 전기를 빛이나 열로 바꾸는 거다. (그러니 나도 저항하면서 살자). 둘째, 누구는 우주를 보며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누구는 이야기를 만든다. (나는 이치를 깨닫기는 어려울 거 같으니 이야기를 만들자). 셋째, 과학은 태도다. (정치도 좀 그런 검증하는 태도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J: 없다. 요즘 분위기 때문인지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고등학교 때 이과였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전에 관련 책을 읽지 않았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를 것 같은 얘기가 뜬금없이 나오기도 했다. 설명을 잘해주고 쉬운 책도 있고, 어렵지만 제대로 알게 되는 책도 있는데, 이번 책은 어느 쪽도 아니라 추천하고 싶지 않다.


M: 팟캐스트 ‘지대넓얕’ 독실이처럼, 과학 크리에이터들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걸 좋아해서 많이 들었다. 이번 책은 그런 기초적인 설명에서 한발 더 나아간 걸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고, 몰랐던 걸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많았다. 특히 양자 물리학에 대해서는 쉽고 알찬 설명으로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역시 방송인이 아니라 물리학자가 맞구나 싶었다(하하). 다만 팟캐스트에서 소개할 때의 흐름과 책의 흐름이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다.


K: '엔드 오브 타임'이라는 책도 우주에 대한 설명이 비슷했다. 아마 참고할만한 대중 과학서 범위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희귀한 확률을 설명할 때 ‘무수한 동전의 앞면이 나올 경우’를 말하는 것이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때 ‘차가 한 방향으로 가고 반대 편에서 역으로 오는 경우’를 설정하는 등 다 비슷한 것 같다.



2. 우주는 원래 의미 따위 없다. 그러니 우리는?


D: ‘우주는 원래 의미 따위 없다’는 저자의 결론에 힘이 빠졌다. 우리는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또 ‘과학은 태도’라는데, 그 과학적 태도가 과연 내 삶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도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걸 증명은 못했지만 직관으로 알았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직관적이므로 과학적 태도와 안 맞는 것 같다.


추가로, 책에 환원과 창발이라는 내용도 나오는데, 우리는 과학이 아니더라도 뭐든 쪼개고 쪼개서 그 근원을 찾으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작은 단위에는 없었던 의미가 큰 단위에서 생긴다는 거, 그러니 일을 진행할 때 너무 쪼지 말자(고 우리 대표에게 전해달라). 그리고 세상은 물질의 비대칭에서 생겨났다고 하지 않나. 맹목적인 균형유지 욕구를 자제하고 적당히 삐딱해질 필요가 있다(고도 우리 대표에게 전해달라).


J: 전에 ‘코스모스’를 읽고 나서는 커진 느낌, 한 단계 더 성장한 느낌, 책 한 권이 주는 행복이 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느낌.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는 ‘하고 싶은 말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게 뭘까’ 싶었다. 이론, 삶의 방식, 어느 쪽일까? 그게 아쉬웠다.


K: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는 게 허무하다고 했는데, 인간이 그냥 의미를 두는 거라는 문장이 나는 오히려 좋았다. 우주에 의미 따위는 없으니까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고 살면 되지 않나. 거창한 거 필요 없이. 우주는 대부분 죽어있다고 했다. 생명이라는 게 흔하지 않은 거다. 그래서 귀하다. 그러니 나만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책이지만 댄 브라운의 ‘오리진’에서는 결론이 ‘결국 신의 뜻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엔트로피 제2법칙, 이것만 유일한 방향이다.’였다. 나는 그 결론이 마음에 들었다. 허무하다 보다, 그래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M: 나 역시 신을 찾으려고 애썼던 유물론자라서 그런지, 결론이 특별히 허무하게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3. 책의 제목과 방향성에 대해


J를 비롯해 멤버들은 책의 마지막 ‘더하는 글’을 읽고 이 책의 출발점이 <사피엔스>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저자는 <사피엔스>에 대해 ‘인문학자가 쓴 나쁘지 않은 과학책’, ‘역사를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은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피엔스>에 영감을 받아 그에 대한 화답으로 ‘과학자가 쓴 인문학 책’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문학적 연결을 시도한 부분이 책을 함께 읽은 섬북동 멤버들이 가장 아쉬워한 부분이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시사점을 그냥 던지고 마는 것보다는 물리학자로서의 담담한 서술에 집중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M은 같은 맥락에서 책의 제목도 지금처럼 인문학적인 ‘울림과 떨림’보다 정직하게 ‘진동’으로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했지만, 다들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고,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이 책은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다. 나는 물리학자다. 아무리 노력을 했어도 한계는 뚜렷하다. 그래도 진심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vs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대학 2학년 때 ‘역학’이라는 과목에서 한 가지 운동을 분석하며 본격적인 물리 공부를 시작한다. 바로 ‘단진동’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물체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다. 하지만 정지는 사실 단진동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진동을 볼 수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완벽한 정지 상태는 불가능하다.


거리에 서 있는 가로수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까? 정지한 물체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거리의 가로수는 보이지는 않지만 떨리고 있다. 정지한 물체는 모두 진동한다. 당신이 있는 건물도 진동하고 있다. 진동이 너무 작아서 못 느낄 뿐이다.



2022년 11월 5일(토) 오전 10시 30분

'떨림과 울림' by 김상욱

참석자: D, K, J, M (총 4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