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지키는 두 개의 심장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자율주행차의 미래는 단순히 운전대를 놓는 편리함을 넘어섭니다. 그 속에는 '신뢰'라는 거대한 약속이 담겨 있죠. 특히 레벨 4, 5와 같은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안전(Safety)과 보안(Security)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아니, 한 생명을 지탱하는 두 개의 심장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EE Times Europe』의 "Autonomous Driving: The Interdependence of Safety and Security" 리포트는 이 중요한 진실을 강력하게 일깨워줍니다.
왜 '보안 없는 안전은 환상'일까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안전'은 시스템의 우발적인 오류나 고장에서 비롯될 수 있는 사고를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보안'은 악의적인 해킹이나 의도적인 시스템 조작 같은 위협으로부터 차량을 보호하는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보안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안전도 없다"는 명제입니다. 아무리 튼튼하게 설계되어 고장에 강한 차라도, 만약 해커의 손에 놀아나 조종당한다면 그 모든 안전장치는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요. 자율주행차는 예기치 않은 '고장(Failure)'과 악의적인 '공격(Attack)'이라는 두 가지 위협 모두에 대비해야 합니다. 마치 강철 성벽을 쌓았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 난 비밀 통로가 있다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차량의 모든 구성 요소는 등록에서 폐차까지 소비자의 사용 전체 생태계에 걸쳐 신뢰가 뿌리내려야 합니다.
생명을 담보하는 신뢰, 어떻게 구축할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신뢰'라는 단단한 갑옷을 자율주행차에 입혀서 두 심장이 튼튼하게 박동하는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설계 초기부터 ‘한 몸’처럼: 안전과 보안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이 둘은 설계의 첫 단계부터 시스템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뼈대와 안전장치를 동시에 설계하듯이 말이죠. 이제 완성차 업체들은 단순한 부품 공급자가 아니라, 설계 초기부터 함께 고민하는 기술 파트너를 원하고 있습니다. 보안 벤더들 역시 시스템의 ‘공동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넘어져도 다시 달리는 회복 탄력성: 자율차는 모두가 이동서비스를 이용하는 탑승객이 되므로 시스템 일부가 고장 나더라도 전체가 안전하게 작동을 유지하는 페일 오퍼레이셔널(Fail-operational) 구조가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멈추는 것을 넘어, 위기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안전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죠. 비상 상황에서 완전히 멈춰 서는 것보다, 비록 속도는 느려져도 안전한 곳까지 이동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 하드웨어의 강건함: 개별 센서나 통신 장치 같은 하드웨어의 작은 오류 하나가 치명적인 판단 오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드웨어 자체에 강건성(Redundancy)과 결함 허용 기능(Fault Tolerance)을 넣어, 하나의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비행기 엔진 하나가 고장 나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것처럼 고장나더라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죠. 인체의 중요한 장기가 두 개씩 있는 것처럼, 핵심 부품은 예비 장치를 갖추는 셈이죠.
• 지속적인 경계와 검증: ISO 26262(Functional Safety), UN R155 (Cybersecurity) 같은 국제 표준 인증, 안전기준은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실시간 탐지, 대응, 로그 분석이 가능한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보안 관리에서 나옵니다. 운전면허를 한 번 땄다고 평생 안전 운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이, 자율주행 시스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 표준화된 시스템의 힘: 카메라, 레이더, LiDAR 같은 자율주행용 이미징 시스템은 표준화된 프레임워크를 따라야 합니다. 이는 센서와 제어 장치 간의 데이터 암호화와 무결성을 보장하고, 시스템 설계 비용을 절감하며 확장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철학적 접근입니다.
• AI의 눈과 귀: 레벨 2 또는 레벨 3 자동차의 경우, 차내 운전자모니터링 시스템은 운전자의 피로도나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필요시 시스템이 개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음성이나 센서 인터페이스를 통해 운전 중 문자 보내기 등 위험한 행동이나 졸음 등 비정상적인 상황을 조기에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죠. 기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똑똑한 협업이 계속해서 중요해질 것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들
물론 갈 길은 멉니다. 여전히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과거의 관성에 따라 변화가 어려워지는 경로의존성 (Path Dependence)에 빠져 오래된 플랫폼에 머물러 있어 새로운 기술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레벨 3 자율주행조차 법적(법적 체계는 이미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험 문제로 상용화가 지연되기도 합니다. 또한 IT 생태계와 자동차 보안 시스템 간의 복잡한 통합 문제도 큰 숙제입니다.
신뢰는 ‘생명’으로 측정됩니다
자율주행차의 개발은 단순히 기술의 정점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신뢰’를 쌓는 과정입니다.
“보안 없는 안전은 없다”는 이 개념은 이제 모든 모빌리티 시스템 설계의 표준이자, 일종의 철학적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 업계는 기존의 폐쇄적인 개발 모델을 벗어나, 소프트웨어 중심의 민첩한 혁신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표준화와 협업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의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율주행차가 진정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의 자유를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약 519만 대의 자동차가 리콜 대상이 되었습니다. 등록된 차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숫자죠. 내년 8월부터 보안 위협을 체계적으로 식별, 방어, 대응할 수 있도록 자동차의 사이버보안에 대한 기준을 신차부터 적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