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책임(Fallback Double Role)의 딜레마
자율주행 기술의 진화는 수년 전부터 자동차 업계를 뜨겁게 달구어 왔습니다. 특히 레벨3 자율주행은 운전자가 손과 눈을 차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기술로, ‘운전 중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스텔란티스가 레벨3 시스템 상용화를 사실상 보류하면서, 이 기술이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닌 사람과 기계가 동시에 책임을 지는 복합적 구조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기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도, 안전성과 소비자 신뢰 확보, 규제 준수라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기업들이 시장 진입을 주저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https://www.carscoops.com/2025/08/stellantis-reportedly-shelves-level-3-autonomous-driving-system/ (접속일 : 2025.8.29.)
자율주행의 본래 목적과 레벨 3의 이중 책임(Fallback Double Role)
자율주행 기술이 탄생한 배경에는 사람의 실수를 줄이자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교통사고의 90% 이상은 운전자의 주의 산만, 과속, 음주, 피로와 같은 인간적 요인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운전을 기계에 맡기면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믿음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벨 3 단계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시스템이 운전의 주체가 되지만, 특정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 운전자가 즉시 개입(fallback)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즉, 사람이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최후의 안전망인 셈입니다. 이 아이러니 때문에 레벨 3는 실무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고, 상용화도 가장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 책임의 문제는 1960년대 샤프의 '주판+전자계산기' 하이브리드 제품 사례와도 닮아 있습니다. 전자계산기가 충분히 정확하고 빨랐음에도 주판을 덧붙여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하려 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이중적이고 불필요한 장치로 인식하며 "전자계산기를 믿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레벨 3 역시 "차가 알아서 운전한다면서, 왜 내가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해야 하지?"라는 소비자 혼란을 야기하며, 이중 책임이 오히려 자율주행 시스템의 신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시장에서의 후퇴 사례: 이중 책임(Fallback Double Role)의 치명적 실패
우버(Uber) – 백업 운전자 구조의 치명적 실패
2018년, 우버 자율주행 시험 차량이 보행자를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은 이중 책임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차량은 자율주행 모드였고, 안전운전자가 탑승해 있었지만, 운전자는 주행 중 동영상 시청으로 주의가 산만했습니다. 결국 시스템과 사람이 모두 실패하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례는 시스템이 맡다가 위급하면 사람이 개입하라는 발상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며, 사람에게 이중 책임을 지우는 구조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사고 이후 우버는 자율주행 부문을 매각하고 철수했습니다.
GM 크루즈(Cruise) – 무인 로보택시에서 후퇴
GM의 크루즈는 한때 무인 로보택시를 상용화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2023년 차량이 보행자와 충돌 후 끌고 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레벨 4 모드였음에도 사고 직후 원격 관제자(remote operator)가 상황을 파악하고 개입하는 fallback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격 관제자가 즉각 개입하기 어려웠고, 이는 사람 대신 원격에서 fallback을 맡기는 방식 역시 신뢰성을 입증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인간에게 이중 책임의 다른 형태를 지우는 방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웨이모(Waymo) – 안전운전자 의존의 한계
자율주행 선두주자 웨이모도 초기에는 항상 안전운전자를 탑승시켰습니다. 연구 결과, 시스템이 경고음을 보내도 사람이 상황을 이해하고 조작에 개입하기까지 평균 7~10초 이상 소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량에서 7초는 이미 수백 미터를 이동한 뒤로, 사람이 개입하는 fallback은 물리적으로 안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는 운전자에게 이중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웨이모는 이후 특정 지역에 한해 안전운전자 없는 완전무인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원격 모니터링이라는 인간 fallback 요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 – 제한적 레벨 3 상용화
현재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레벨 3 상용화를 시작한 메르세데스는 'Drive Pilot'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동 조건은 시속 60km 이하, 고속도로 지정 구간, 낮 시간대 및 특정 기상 조건으로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시스템이 운전을 맡는 동안 사고가 발생하면, 법적으로 제조사(메르세데스)가 책임을 진다는 점을 규제당국에 약속해야 허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 책임으로 인한 법적 공백을 제조사가 메우는 방식으로, 레벨 3를 허용하기 위한 규제적 타협의 결과입니다. 이런 제한적인 조건은 이중 책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닌, 회피 방식에 가깝습니다.
기업 전략: 왜 레벨 3의 이중 책임(Fallback Double Role)을 피하나?
많은 기업이 레벨 3의 이중 책임 딜레마를 피해 다른 전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레벨 2+ 강화: 테슬라, 현대차 등 자동차제작사는 운전자가 항상 주시하는 조건에서 핸즈프리 주행 기능을 강화합니다. 이는 법적 책임을 운전자에게 두면서도, 사고 확률만 낮추는 현실적 전략으로, 이중 책임의 혼란을 피합니다.
레벨 4 직행: 웨이모, 바이두 등은 특정 조건에 한해 안전운전자 없는 완전 무인 서비스를 시도합니다. 이는 fallback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이중 책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전략입니다. 참고로 2013년 구글의 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 테스트에서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운전 훈련이 없는 직원들이 테스트 차량을 이용했는데, 관찰 결과 일부는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노트북을 켜거나 화장을 하는 등 안전과 거리가 먼 행동을 했습니다. 특히 한 운전자는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도중 27분간 잠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주행 보조 기술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반증이지만, 운전자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은 쉽게 지루해하고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에, 주행보조 프로젝트의 전면폐지를 결정했습니다.
레벨 3 보류: 스텔란티스, 포드, 볼보 등은 레벨 3 출시를 보류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fallback을 맡기는 구조가 안전성, 시장성, 책임 문제 모두에서 불리하며, 이중 책임이 야기하는 복잡성 때문입니다.
정책·규제적 시사점: UNECE UN R157 (ALKS) 예시
국제연합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제정한 레벨 3 기술 표준인 UN Regulation No. 157 (Automated Lane Keeping Systems, ALKS) 역시 이중 책임 문제에 대한 규제기관의 불신을 반영합니다. 이 규정은 레벨 3를 허용하면서도 극도로 제한합니다.
조건부 허용: 고속도로 전용도로, 시속 60km 이하, 비상 시 운전자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후 2022년 개정으로 최대 시속 130km이하까지 가능)
운전자 개입 요구: 시스템이 경고를 보내면 10초 이내에 운전자가 제어권을 회수해야 하며, 회수하지 않으면 차량이 스스로 감속 및 정지해야 합니다.
이 규정은 사실상 레벨 3를 "실험적 단계"에 가둬두는 장치이며, 규제기관조차도 사람 fallback의 신뢰성을 확신하지 못해 안전장치를 중첩시킨 것입니다. 이는 이중 책임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정책적 증거입니다.
결론: 레벨 3는 이중 책임의 딜레마에 갇힌 과도기적 기술
레벨 3는 기술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람 fallback의 비현실성, 사고 책임 불명확성, 그리고 이로 인한 보험·규제 구조의 복잡성 등 이중 책임이 야기하는 문제들로 인해 시장에서 확산되기 어려운 단계로 보입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은 두 갈래로 전개될 것입니다.
레벨 2+ 보조 기능 강화: 소비자가 당장 받아들이기 쉬운 안전·편의 기능 중심.
레벨 4 직행: 특정 조건에서 완전 무인화를 시도하며, 사람을 배제하는 전략.
따라서 레벨 3는 장기적으로 “아이러니한 과도기 기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정말로 사람의 실수를 줄이고 신뢰받는 기술로 나아가려면, "사람을 fallback으로 두는 이중 책임 구조"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 레벨 3를 건너뛰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동화 시스템의 속도와 효율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수동 전환'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실패(fail)가 아닌 불가능(impossible)에 가까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