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플랜 75>가 놓친 퇴장의 품격

by Lucid


나는 오래전부터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시작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끝만큼은 선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플랜 75>의 설정을 처음 마주했을 때, 꽤 오랜만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건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교한 설계도처럼 보였으니까.


초고령 사회, 고독사, 노년의 빈곤.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된 소재들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여기서 감상주의로 빠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국가가 개입해, 일정 나이가 되면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출구'를 제도화한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이건 꽤 정직한 시도였다.


하지만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다. 이 영화는 끝내 자신이 만든 그 정직함을 감당하지 못했다.


설계의 붕괴


주인공 미치코의 망설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노을 아래, 사과나무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며 되찾은 '삶의 의지'.


여기서 정확히 짚어둘 것이 있다. 영화는 미치코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명시하지 않는다. 감독은 그 장면을 의도적으로 열어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모호함이 서사적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의 전체 무게중심이 이미 '삶 쪽'으로 기울어 있다. 관객에게 미치코의 선택을 해석할 자유를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특정 방향으로 감정을 유도한다. 이건 열린 결말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연출이다.


78년을 살아온 노인이 삶의 고락을 몰랐을 리 없다.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몰라서 떠나려 했던 게 아니다. 알면서도, 다 겪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연한 결심을 영화는 너무 쉽게 되돌린다. 이건 위로가 아니라, 서사의 파산이다.


히로무(조카)의 행보 역시 기괴하다. 시스템 내부에서 기능하던 실무자가 갑자기 시신을 탈취해 도주한다. 이건 인간애가 아니라, 영화가 스스로 구축한 세계관을 부정하는 자폭이다. 정교한 현실을 보여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개인의 감정 과잉으로 도망치는 전개는 비겁하다. 결국 영화는 너무 익숙하고 안전한 결론으로 회항했다. '구조보다 감정이 우선이다'라는, 그 맥 빠지는 정답으로.


겨울의 미학, 그리고 서늘한 거부감


나는 나이 듦을 계절로 본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치면 결국 겨울에 도착한다. 겨울은 정리의 계절이다. 덜어내고, 비우고, 조용해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어떤 장면들은 그 흐름을 거스른다. 이미 겨울인데 여전히 봄인 척 고개를 내미는 태도. 그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생경함과 서늘한 거부감이 있다. 70, 80이 넘어서도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삶의 현장으로 치고 나오는 모습은 생명력이 아니라, 타이밍을 놓친 잔여물처럼 느껴진다.


단풍이 들었으면 떨어져야 순리다. 겨울 지나 봄까지 바짝 검게 말라붙어 가지를 움켜쥐고 있는 나뭇잎을 볼 때의 답답함. 노인이 스스로를 진달래라 착각할 때 발생하는 그 기괴한 불일치를, 나는 '품격'이라 부를 수 없다.


감옥에서 나갈 자유를 허하라


물론 이런 생각은 불편할 수 있다. 생명의 신성함을 말하는 종교적 관점이나, 효와 책임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습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의 시선은 지독히 냉혈하게 보일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극복해야 할 악으로, 혹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무책임으로 규정하곤 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본인이 충분히 살았고 이제는 마침표를 찍겠다는 그 결연한 의지를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폭력은 아닌가? 나갈 준비가 된 이들에게 억지로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감옥이다.


내가 말하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다. '충분히 살았다'는 판단은 달력이 아니라 본인의 내부에서 나온다. 100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된다. 30살에 이미 다 살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숫자로 반박할 근거는 없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 나이에 느낀 소진을 우리가 어떻게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이제 그만 퇴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정교하고 편안한 출구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문명사회의 존중이다.


갈무리의 완성


<플랜 75>는 그 출구를 제도화하는 데까지는 갔다. 그래서 더 아쉽다. 끝내 그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반복한다.


낙엽은 결국 떨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 순간이 와야 계절이 완성된다. 이 영화는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다른 의미의 불쾌함으로.


나의 겨울은 부디 이 영화처럼 구질구질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용하고 차갑게, 완벽한 갈무리로 끝맺음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자아라는 환영의 목을 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