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질풍노도 - 자본주의자 트럼프는 빨갱이다.
온 나라가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홍역을 앓고 있다. WHO는 전 세계적인 대유행을 지칭하는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 pandemic)에 대한 선언을 계속 미뤄왔다. WHO에 많은 지원금을 대는 국가가 중국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늦장덕분에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에서 현지시각(한국시각으로 12일 오전 1시 30분)으로 11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WHO의 사무총장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규정하는 공식선언했다.
그 전까지 등락을 반복하던 주가도 이 소식으로 12일부터는 6거래일 동안 반등이 없는 우 하향으로 급락했다. 주가는 2006년부터 시작된 1400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다행히 3월 19일에 1,457.64을 찍고 반등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예전의 위기들은 금융시스템이나 전쟁 등의 이슈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답을 찾아갔지만 지금의 감염 병은 인간의 노력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의 정부들은 감염을 막기 위한 노력과 감염된 국민들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한 경제의 소비 위축과 생산 감소 같은 경제문제를 풀기위해 해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은 무너져가는 내수시장의 소비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돈을 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주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코로나 19’에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17일에 위기대응을 위해 연방정부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어 국민들이 재정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생필품과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도록 연소득이 100만 달러 이상인 고소득자를 제외한 국민에게 현금으로 찾아 쓸 수 있는 수표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와 같은 현금지급은 한 사람당 1천 달러 이상일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3월 25일 기준 우리나라 환율로 계산했을 때 12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어린이에게도 어른의 50%인 5백 달러(한화 약 60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소상공인과 직격탄을 맞아 피해가 심한 항공사 등에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상황에 현금을 지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에도 300달러까지 지급했고 2008년에 서브프라임 사태 때에도 저소득층에게 600달러까지 지급한 사례가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현금을 주는 것에 대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쇼’라고 비난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일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닥친 위기가 심각하다는 판단아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현금 지원을 결정했다. 이러한 재정정책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 1조 2천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환율로 계산하면 1천5백조 원에 이른다. 위기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똘똘 뭉친다는 의회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 정부에서 채권안정펀드 20조원을 비롯해 100조원 이상 규모로 기업지원책을 내놓았다. 중앙정부는 개인에 대한 지원책을 고민 중에 있으나 각 지방정부 중에는 이미 상황에 맞는 ‘긴급재난생활비’를 주민들에게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개인들은 생필품과 먹거리를 구매할 수 있다. 또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수입이 발생하면서 현금흐름이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삶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 이렇게 생활비의 역할을 넘어 나라의 경제와 금융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효과가 있음에도 대한민국 중앙정부는 국민 각 개인에 대한 지원책은 함부로 언급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총선을 의식해서도 아니다. 여론이다. 우리도 미국처럼 국가적위기에 대응하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꽃피워진 나라인 미국에서는 지금 위기 대응을 위해 국민과 기업에 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색깔론을 씌우는 학자들과 언론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대구시민의 상황과 국민들이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최근에 지방의 한 시내버스회사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계약직 기사 20여명의 사표를 받았다고 한다. 기업은 당분간 버티겠지만 퇴사자들은 실업급여가 없다면 당장 굶게 된다. 지금은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단어는 실직자들에게 사치스러운 표현으로 들릴 것이다. 국가는 소수의 있는 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구성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본질적인 문제해결’이라는 논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언급해도 된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를 두고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권할 수 있겠는가? 일단은 수술이든 제세동이든 방법을 강구해서 살려놓고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평소에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도록 권해도 늦지 않다.
지하철 3호선 대곡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시 앉아있을 때 한 시민이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급재난생활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공짜로 돈을 준다는 것에 대해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비꼼이 들렸다. 순간 얼마 전에 국민들에게 돈을 지급하겠다고 했던 미국대통령이 나오는 영상이 떠올랐다. 미국 대통령들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해도 ‘빨갱이’ 소리를 듣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혜택을 줄 때에는 안 듣던 ‘빨갱이’ 소리를 국민들에게 지원하고 지급한다고만 하면 ‘포퓰리즘’과 ‘빨갱이’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와서 대통령을 했다면 이번 정책으로 틀림없이 그도 언론과 논객들에게 ‘빨갱이’라는 평가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일부 지방정부에서 성인에게 지급되는 돈보다 미국의 어린이가 받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과 생존을 색깔논쟁으로만 취급하는 언론과 정치권은 말꼬리 잡는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그들에 의해 파묻혀버린 국민의 삶과 생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고 그들이 존경한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국민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