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1
Agora-광장의 다양한 용도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도시국가(이하 폴리스)의 시민들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던 장소가 있었다.
시민들은 ‘아고라(Agora)’라 불렀다.
폴리스마다 크기는 다르지만 그 중심에 아고라가 있었다.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지역 사람들은 지중해성 기후로 날씨가 좋아 외부활동을 즐겼다.
덕분에 사람들이 외부에서 모여
사소한 사교의 대화부터 폴리스와 관련된 사안까지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대화와 토론이 이뤄졌다.
사안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아고라는 교류와 타협도 이뤄지던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답게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화와 법정을 비롯해서
폴리스를 운영하는 여러 시설이 주변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평상시에 정치인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놓는 연설장소로 활용했다.
때로는 연극이나 음악공연, 종교행사 같은 다양한 문화행사와 모임이 열렸다.
전쟁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징집을 위한 장소였다.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다양한 주장과 의견들이 모이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육도 이루어졌다.
개인의 삶은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한다며 자연주의 철학을 주장한
‘키티온 제논’의 ‘스토아(Stoa)학파’는 아고라에 자리한
스토아에서 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고라는 원래 ‘물건을 산다’는 뜻의
‘아고라조(Agorazo)’에서 파생되었다.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스토아(Stoa)의 주랑의 그늘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상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스토아 외에도 아고라 곳곳에 들어선 상점들이 자신만의 물건을 가져와 사람들과 거래를 했다.
그리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상업 활동은 그리스를 넘어 해상무역으로 커져갔다.
BC 600년경에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인 마살리나와
BC 575년경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하는 카탈로니아 지역인 엠포리온을
그리스의 식민지로 건설하면서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엠포리온은 이오니아지역의 폴리스인 포카이아(Phocaea)가 건설했던 식민지였다.
스페인의 남부지역은 당시의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에 의해 많이 개척되어 있었다.
북부에 위치한 엠포리온에서는
스페인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된 곡물과 그리스의 주요수출품인 도자기를 비롯해
올리브유, 와인이 거래되었다.
농지가 부족해 식량의 보급을 외부에서 조달하던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에게 엠포리온은 중요한 무역거점이었다.
BC 8세기경 이베리아 반도에 건설한 식민지를 시작으로 교역을 시작한 그리스는
근처에 여러 식민지를 건설하고 활동했다.
이후 피레네 지역에서 나오는 광물을 확보와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엠포리온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엠프리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리스는
세력을 더욱 확장해 이베리아반도의 동부해안의 교역을 일시적으로 장악하게 된다.
이로 인해 마살리나 함께 엠포리온은 그리스 서지중해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리스는 해상무역으로
엠포리온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곡물을 들여와
아고라를 중심으로 상점과 노점을 통해 폴리스의 시민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했다.
그 연결고리를 이용해서 아고라에서 거래되는 그리스의 물자들은
다시 식민지로 이동하며 널리 알려졌고 거래되면서 그리스는 풍족해졌다.
여러 폴리스의 아고라는 그리스의 영향력과 함께 성장했다.
특히 아테네의 아고라는 국제적인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그리스를 넘어 페르시아와 카르타고, 페니키아의 상인들이 활발하게 오가며 자신들이 찾는 물건을 거래했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더 많은 거래와 이윤이 발생했다.
아고라는 그리스의 역사에서 다양한 기능을 담당했다.
생활에 필요한 각종물품과 곡물 등의 상거래로 이윤이 쌓여 부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여론이 형성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부과 여론이 형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거래를 했다.
누군가는 정치적인 거래로 명성을 쌓고 권력을 누렸고
누군가는 상업적인 거래로 부를 쌓아 풍요로움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