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
증기기관과 철이 만난 산업혁명
코크스를 활용해 고열을 얻게 되자 철광석을 이용한 품질 좋은 철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목재로 열을 내 철을 재련했던 시절에는 목재의 가격이 비쌌던 잉글랜드에서 철을 제련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다. 울창한 산림으로 목재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러시아와 스웨덴에서는 이를 활용해서 철을 생산했고 가격도 잉글랜드보다 저렴했다. 낮은 가격으로 인해 잉글랜드에서는 철을 생산하기보다 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크스를 활용한 원료 가격이 훨씬 낮아지면서 러시아와 스웨덴의 철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와 같은 대륙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철은 돈을 끌어왔다. 철의 가격경쟁력이 생기면서 단순한 수출로 돈을 번 것이 아니었다. 철을 이용한 여러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에 런던이 점점커지면서 부족해진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비싼 목재보다 석탄의 수요가 증가했다. 석탄을 채굴하던 광산 갱도가 깊어지면서 그 곳에 물이 고였다. 작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물을 퍼내야했다. 이때부터 사용된 것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비슷한 시기에 세이버리와 뉴커먼은 광산의 물을 퍼내는 최초의 증기기관을 만들어낸다. 이를 보완해 훨씬 강력한 동력을 끌어내는 증기기관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제임스 와트’다.
증기기관은 물이라는 액체가 100℃라는 온도를 만나 수증기라는 기체로 변하면서 부피가 약1,700배로 증가할 때 발생하는 힘으로 작동된다. 기존의 증기기관은 열을 올리고 식히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이때 발생하는 동력을 활용했다. 식은 열을 다시 올리는 과정에서 많은 연료사용과 큰 덩치가 단점이었다. 이를 별도의 ‘챔버’로 보완하고 ‘크랭크’를 통해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연결하면서 연료효율은 좋아졌고 크기는 소형화 되었으며 운동형태의 변환을 통해 다른 분야로 접목이 가능했다. 탄광에 고인 물을 퍼내는 단순한 역할이 아닌 제조업이라는 큰 틀을 만들어냈다. 양모나 면화를 옷감을 만들었던 방적기술의 혁명을 가져왔다.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증기기관은 옷감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했고 가격은 하락했다. 식민지에서 수입 품목이었던 면직물은 잉글랜드의 수출품이 되었다. 바람이나 물을 이용한 풍차와 수차로 밀을 빻았던 제분업의 효율도 증기기관을 만나 생산효율을 높였다.
바다에서는 1845년 잉글랜드에서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 최초의 철제 증기선을 만들어진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증기선으로 대서양을 중심으로 잉글랜드의 브리스톨과 아메리카의 뉴욕을 오가며 여행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육지에서는 1804년 석탄을 실어 나를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지만 레일이 목재다보니 너무 쉽게 닳았다. 속도를 내기에도 어려워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이때 코크스와 증기기관이 만나 단단한 철을 만들어낸다.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사이를 오가는 여객용 철도가 최초로 놓이게 된다. 사람들의 이용이 늘면서 철도의 길이는 꾸준히 증가해 1859년에는 1만km가 넘었고 1890년대에 들어 3만km가 넘는 철길이 놓이게 된다. 걷거나 말로 가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던 거리는 수일 내에 왕복이 가능한 거리로 변했다. 말과 마차로 이용했던 화물은 더 많은 양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한 가격하락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자연에서 얻는 바람과 물이 아닌 물리적으로 발생시킨 동력과 여러 장치들이 움직여 만들어낸 재화는 엄청났다. 풍부한 양을 자랑하던 잉글랜드 석탄은 증기기관과 철을 만나 산업혁명을 낳았고 유럽의 공장으로 자리를 잡는다. 대량으로 생산된 품목들은 유럽대륙을 넘어 팔 수 있는 수요처가 필요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수요와 공급을 위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식민지 건설에 뛰어든다. 이러한 제국주의 정책은 빈부 격차가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자리하는데 역할을 한다. 식민지의 성장 동력이 대영제국의 부(富)의 성장에 기반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