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야가 독특하죠?
전에 올렸던 ESG관련 글이 칼럼으로 실리면서
편집해주시는 기자님의 지적을 듣고
주장의 논거가 부족했던 거를 알았습니다.
이에
반성하면서 좀 더 길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이어서 작성했습니다.
반대의견 수렴합니다.
맘껏 지적해주세요...
파란색은지적
초록색은근거
빨강색은질의
민트색은사족
이상입니다.
참고로 검정은 편집통과로 실릴 내용입니다.
[금융의 질풍노도] 또 다른 카르텔 ESG
[*****/이강희 칼럼니스트] ESG는 코로나19 이후 경제계 뉴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단어다. 2020년 초에 본격적으로 언론을 통해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경제계는 물론 학계, 출판계까지 ESG에 대한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이 단어는 코로나19 이후로도 앞으로의 세계 경제 질서를 재정립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다. 수많은 언론이 ESG에 대해 집중 보도한다. 문제는 찬사만 있을 뿐 비판이 없다는 데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칭이다.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적 성과만 따졌던 과거와 달리 비재무적 요소를 포함한 지표로 인식된다. 나름 의미심장하다. 언론과 학계, 시민 모두 동조하는 분위기다.
ESG는 앞으로 수출입을 위한 업무부터 정부의 지원사업, 소비자의 구매선택, 자금유치를 위한 은행과의 거래나 투자유치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제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에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 된다.
다만 이렇게 좋아 보이는 ESG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필자의 불안감은 ESG를 아무런 제약과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대기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기업은 자본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ESG 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기업의 체질을 변화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지출해도 회사 경영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다르다. 실천하고 싶어도 거기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이에 정부도 관련 정책자금 융자나 지원사업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을 위한다기보다 대기업의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목표가 있다. 대기업이 평소 모습답지 않게 중견·중소업체에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는 유럽과 아메리카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완제품이 나오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같은 에너지 생산부터 원료, 소재와 부품의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회사가 ESG기업이 아니면 생산되는 완제품에 대해 제약을 가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 해당 주장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중견·중소기업의 ESG기준 충족없이 대기업만 잘 나서 제품을 만드는게 의미없다는 이야기다. 만약 대기업이 홀로 ESG에 대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물건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 같은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고 생산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직접 만들어 최종 완제품을 생산하도록 새로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관련기술 확보와 인력확보를 비롯해 경영관리를 위한 비용부담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대기업은 앞으로 진행될 ESG에 관련된 기준에 기존의 협력업체들이 만족되는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부족한 자금력과 기술을 보완하는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대기업이 가는 길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원이다. 앞으로 이런 탄탄한 카르텔(규제)이 강화될수록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의 독점 내지는 과점형태를 깰 기업은 점점 나오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추세로 봤을 때 ESG는 전 세계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뜻은 앞으로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는 지구상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ESG의 한 축인 E(환경, Environmental)의 문제는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오늘날의 서구 문명의 성장이 시작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들이 사용한 화석연료와 그로 인해 발생한 CO2는 지구의 대기를 뒤덮어 온난화의 주범으로 언급된다. 서구사회에서 성장한 과학은 수많은 합성물질을 만들어냈다. 그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환경호르몬의 막대한 양은 모두 선진국들이 시초다. 서구 문명사회에서 그들의 성장과 이익을 위해 내뿜어댄 결과물이 오늘날 환경의 문제점들이 부각된 것이다. 후진국, 신흥국은 잘 살고 싶은 마음에 경제발전을 하려고 선진국의 성장모델을 단순히 따라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다며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하도록 하겠다며 ‘게임의 법칙’을 바꿔버린 것이다. 문제는 새롭게 적용하려는 법칙을 위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선진국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만 이제 갓 기지개를 켜는 후진국과 신흥국은 낯선 환경에 적응할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은 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을 거 같다.
자신들에게 불리해진 환경을 무작정 바꾸는 게 새로운 제국주의, 식민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SG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서 이득을 봐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라면 이를 복원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이득을 본 사람이 지불해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기울어진 것이 잘못되었다며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까지 복원을 위한 비용을 내라고 한다면 이는 공정하지 못하다. 환경이 문제라면 환경을 이렇게 만들며 이득을 봤던 선진국들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기 전에 환경으로 인한 피해국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기여를 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진정 전 세계가 같이 살아가야 할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고 지키고 싶다면 ESG라는 기준을 만들기 전에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심정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술지원과 금융지원을 했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높은 기술력을 기준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성장 기회를 강탈당한 것이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려는 국가와 회사들은 새로운 제약을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노력과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 그만큼 성장은 더딜 것이고 기술과 자본력에서 앞선 선진국과 글로벌 대기업은 더 빠른 성장으로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다. 그만큼 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고 더더욱 적은 소수에 의해 우리의 삶이 좌우되게 될 것이다.
비관론이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충분히 봐왔고 느끼고 경험한 일이다. 이를 깨기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참여를 늘리겠다고 한다. 제품의 이익이 소수에 의해 좌우되는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시작된 공정무역. 노동자에게는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급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시작한 운동이다. 초기의 바람과 달리 공정무역의 최대수혜는 역설적이게도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이 더 누리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네이버 같은 대기업의 대주주는 지배구조 개선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영향력을 더 은밀해졌고 더욱 절대적이다. 이제 앞으로 진행될 ESG로 인해 지배구조의 개선은 대기업에게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고 기업의 사회참여는 그들의 이미지가 개선하는 홍보와 마케팅에 활용될 것이다.
선진국의 ESG가 앞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기후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며 환경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ESG경영을 하라고 수준 높은 기준을 제시할 게 아니라 새롭게 도약을 준비하는 신흥국들에 대한 기술이전과 금융지원이 우선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환경파괴에 대한 범죄를 조금이라도 뉘우치는 마음이있었다면 말이다.
서구 유럽이 만들어놓은 환경파괴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기후협약은 환경파괴를 줄이기 위한다는 포장 안에 그들이 그동안 파괴한 자연에 대한 보상을 해야한다.
*. 작은 기업도 ESG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자칫 승자 독식 게임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시려던 것 같습니다. 위 문장에서 기업의 문제를 국가와 곧바로 연결 지은 부분은 연결성이 약합니다. 특히 “ESG 평가 지표가 없어야 개천에서 용이 나듯 작은 기업도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기업이 환경을 위한 설비를 갖추기 어렵다고 해서 환경이나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추세가 잘못이라고 말할 순 없을 듯합니다. 비판하려는 대상을 명확히 하면 좋겠습니다. ESG를 규제로 표현하셨는데 그렇다면 관련 규제를 시행하는 투자자, 정부가 문제인 것인가요. ->
기자님 지금부터는 제가 생각하는 사족을 달겠습니다.
저는 ESG 자체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은 ESG가 아니더라도 많이 있습니다. 다만 힘 가진자들이 안 할 뿐이죠. (번외지만 아파트값 잡을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이 안 할 뿐이죠. 왜냐? 자신들이 손해보니까요)
ESG자체가 세계화의 일원으로 시작된 카르텔입니다. 언급하신대로 ESG는 제 생각에 패자부활전 없는 승자독식 게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스를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는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성장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민이 노력하고 있죠. 문제는 그 과실은 같이 나누는 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기업의 힘이 세지니까 더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은 조직되어 있지 않아 뭉쳤다가도 바로 흩어지죠. 문제는 기업은 조직화 되어있다는 것이죠. 전경련과 경총, 대한상의 상공회의소 같은 조직들로요. 그리고 견고하죠. 결국 정부도 국민보다 기업의 편을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업이 더 힘세니까요.
그래서 대기업이 하겠다고 하니까 부족한 것을 정부가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노력만으로도 결과가 나오던 시절이 아니라 돈이 무조건 들어가야 이루어지는 세상인데 정부라고 힘이 있겠습니까? 일반 국민 중에 돈 있어서 기업하고 돈 있어서 투자하는 대상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개천에서 이제는 용이 안나올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똑똑한 머리만 가지고도 표지 떨어져간 책 가지고 공부해서 나이제한 없이 사법고시 통과하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싼 등록금 내고 로스쿨 가야합니다. 나이 많으면 로스쿨 입학면접에서 떨어집니다. 기회의 제약이 생긴 것이죠. 로스쿨과 의전원으로 상승의 사다리가 없어진 것이죠. 신분마저도 상승마저도 돈이 없으면 안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제 의견입니다.
저는 이것이 개인에서 기업과 국가에게로 오게 된 포인트를 ESG로 보는 것입니다. ESG가 규제가 아니라면 예외를 둬야죠. 그런데 예외가 생길까요? 아니면 기준이 더욱 강화될까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외를 두는 순간 카르텔은 깨질테니까요.
우리는 어차피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의 비중에 작기 때문에 선진국이 시작하는 새로운 게임에 무조건 참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흐름에 따라야죠. 참여하지 않으면 도퇴되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새로 시작되는 게임에 우리가 선진국과 같이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수준까지 오게 된 데에는 국민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발생할 이익과 과실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기업만 이익을 가져갈 게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자 경제의 구성원인 가계도 나눌 수 있도록 현재와 앞으로의 정부가 과거정부가 놓쳤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 청출어람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스를 수는 없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ESG는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ESG에 대한 찬양을 할 때 ESG가 가져올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언급한 문제점을 경제학자나 교수들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 것은 제가 말씀드린대로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시점에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정부가 우리가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은 조직되지 않았기에 힘없이 휘둘리는 존재죠. 정부가 나서 앞으로 얻게 될 ESG의 과실을 국민에게 좀더 나눠줘도 될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주저리 떠들었는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A4 한 장에 함축해서 담으려니 모든 내용을 넣을 수 없어 줄이는 경우 많고 설명이 부족한 거 인정합니다. 근거가 부족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너무 많은 걸 쓰기에는 기자님 일이 많아지실 듯해서 앞으로 조절하겠습니다. 제가 시야가 독특해서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쇼^^
대한민국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에 1인당국민소득이 67달러로 전 세계 109위였다.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세계은행)에 가입하는 1955년에 82달러로 106위로 최빈국이던 나라였다. 지난 60여 년간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서운 성장성을 보인 덕분에 지금은 1인당 GDP가 31,431달러(2019년, OECD기준)로 전 세계 30위 안에 포함될 정도의 국가가 되었다. 각종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성장성을 가진 나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듯이 국가 간의 계층이동 사다리도 사라져가고 있어 아프리카 지역을 비롯한 후진국들의 성장에는 더 큰 노력과 시간 비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가 ESG 카르텔을 버거워하지 않고 과실을 취할 정도의 체력이 되는 국가로 성장했고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데에는 안도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이 카르텔 안에서 더욱 성장할 것이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부상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ESG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정부와 미래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정부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성과의 과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 단맛을 소수의 대기업이나 이들의 추종세력만이 취하는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있는 국가 구성원들도 맛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기에 분배의 불평등으로 초래된 빈부의 격차를 거울삼아 현 정부가 또 다른 시야의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