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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Apr 01. 2022

전염병, 노동력, 낙수효과

전염병으로 귀해진 노동력은 낙수효과를 불러왔다.

전염병으로 귀해진 노동력은 낙수효과를 불러왔다.  





    

 세균 학자이자 의사였던 

알렉산드르 예르생(Alexandre Emile Jean Yersin)에 의해 

쥐벼룩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을 옮긴다고 알려진 것은 

페스트가 3차 유행하던 1894년이다. 


-아시아 원조설과 유럽 원조설이 있다-. 


페스트는 1차 유행이 있던 고대로마시대에도 

많은 사상자를 낳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346년부터 1353년까지 있었던 2차 유행이다. 


이 시기에는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있었던 인구증가와 도시화 영향으로 

밀집도가 높아진  생활을 하였던 것이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한 원인으로 꼽힌다.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당시 유럽인구의 30~60%가 사망했다고 한다. 


교황이던 클레멘트 6세가 

흑사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2400만 여명이라고 추산했는데 

이는 당시유럽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숫자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인구가 감소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변화가 속출했다. 


전쟁은 사람들의 밀집도가 높다. 


사람의 숫자가 중요했던 전투에서 

피아식별이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자 

전투를 하던 상대들은 

전쟁을 미루거나 종식시켰다. 


전염병은

유럽의 끝을 향해 달리던 몽골을 멈추게 했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도 

그렇게 만들었다. 


페스트로 정신없던 잉글랜드를 침공한 스코틀랜드도 

전쟁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피아식별 없는 공격을 해대는 

페스트로 인해 침공을 멈추어야만 했다. 






유럽의 크고 작은 분쟁이 멈추고 

인구가 감소하자 문명 패러다임이 

기존과 달라진다.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노동의 값어치인 임금이 상승했다. 


사람들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도시로 움직였다. 


자영농은 부가가치가 

좀 더 높은 일을 찾아 농촌을 떠났다. 


영주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지배를 받던 농노들이 야반도주를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일할사람이 부족해지면서

휴경지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영주가 가지고 있던 재화마저 감소하면서 

영주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지자

남아있던 자영농과 농노들의 힘이 커졌다. 


영주가 결정하던 지대는 

점점 낮아졌고 오히려 생산물에대한 배분을 협상하게 된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로 얻은 이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면서 

부(富)가 영주와 지주에서

자영농과 농노에게 이전되기 시작했다. 


일부지역에서는 

농노제 자체가 해체되면서 

중세사회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던 

봉건제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사람이 줄어들고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이 상승하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낙수효과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페스트로 사망하던 사람들 중에는 

재력가도 있었다. 


그들이 사망하면서 남긴 재산은 

여러 상속자들이 나누어가졌다. 


이런 시기에 

노동은 자본을 쌓는 계기가 되었고 

자본가라는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낸다. 


이런 변화는 

길드의 해체도 가져왔다.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무역과 생산을 함에 있어 

귀족과 영주들의 간섭과 횡포에서 보호하기 위한 권익집단으로 시작한 길드는 

시간이 지나면서 각 분야를 독과점형태로 장악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길드의 변질로 

사람들의 외면을 받던 상황에서 

도시지역에서 자본가가 하나둘씩 나타났고

자본의 힘에 밀린 길드조직은 

점차 힘을 잃었다.






 인간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문예운동이 진행되면서 

 르네상스가 촉발되고

 자본가들의 후원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갔다. 


페스트로 인해 발생한 변화에는

 지상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바다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질병으로 더 위험해진 육지를 떠나 장기간 항해를 하면서

 여러 항해로가 개척된다. 


이를 통해 무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가 식민지를 개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배층은 노동에 대한 비싼 임금 때문에 

자신에게 쌓여야 할 부(富)가 줄어든 것이라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새롭게 개척한 식민지에서 

노예를 들여와 

비싼 임금을 줄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욕심이 

새로운 죄악을 잉태하는 순간이다.






 유럽은 전염병이라는 

커다란 시련을 겪지만 

변화를 맞이했다. 


필자 생각으로 

노동의 값어치가 

가장 순수하게 인정되고 존중받던 때였다고 

판단된다. 


갑과 을은 동등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슈퍼 을’이기도 했다. 


부가 골고루 퍼져 

빈부의 격차가 

가장 적었던 때다. 


앞으로 

이런 시대가 

또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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