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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May 22. 2022

권주(勸酒), 주량(酒量), 저도주(低度酒)

세계에서 밥량보다 주량을 언급하는 유일한 나라

권주(勸酒), 주량(酒量), 저도주(低度酒)     






 펜데믹으로 식당의 영업시간이 제한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만남과 모임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술의 소비량도 많이 감소했다. 그나마 가정에서의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소비감소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영업시간에도 불구하고 식사자리에서는 여전히 자연스럽게 술이 등장한다. 식사자리에서 술이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시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술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 그렇다보니 술자리에서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특성도 있다. 






 각자의 술을 알아서 마시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같이 술을 마시는 상대의 잔이 비어있는지를 신경써야하고 상대의 잔에 술이 없으면 스스로 따라 마시기 전에 상대가 먼저 따라주는 것(勸酒)이 주례(酒禮)가 되었다. 또 하나 전 세계의 술자리에서 같이 마시는 상대에게 우리나라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주량은 얼마나 되세요?’다. 이는 우리만의 독특한 술 문화로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주량에 대한 답을 할 때 일반적으로 기준을 삼고 있는 주종이 있다. 우리가 주로 마시는 소주와 비어다. 성별, 연령에 따라 주량은 각각 다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두 주류의 술을 기준으로 삼아 비어 한 병, 소주 한 병, 소주 1/2 병 같은 식으로 자신에게 던져진 주량질문에 답을 한다.  






 물론 최근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술의 취향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량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때에도 자신이 선호하는 술을 가지고 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막걸리를 기준으로 주량을 말하거나 과실주 중에서 수입산 와인, 증류주 중에서는 위스키나 브랜디, 고량주 같은 고도수의 술을 기준으로 자신의 주량을 말하는 이도 있다.






 여러분의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누군가 물으면 대략 빨간 뚜껑 소주 한 병 정도라고 말한다. 물론 대화하면서 마시다보면 더 마시지만 말이다. 빨간 뚜껑과 파란 뚜껑의 차이는 하나다. 알코올 도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회식 같은 단체식사자리에서도 여성이 참여할 확률이 높았다. 술의 주된 소비층이었던 남성위주의 기호에 맞추어진 제품의 변화기 필요해졌다. 여성들의 술 소비가 늘어나면서 소주 제조사들은 여성의 기호에 맞춘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기존 소주에 물을 좀 더 넣고 알코올도수를 낮춘 일명 ‘저도주’의 시발이었다. 소주의 정체성을 위해 지켜지던 심리적 지지선인 알코올도수 20%는 상업성을 위해 과감히 무시되었다. 이는 그동안 알코올 도수로 주종을 구분해왔던 틀을 깨는 것이었다. 수입와인의 경우 주정강화와인처럼 알코올이 20%가 넘는 제품도 있기 때문이다.  






 광복이전에 주량이 소주 1병이었다면 오늘날은 소주 2병과 같다. 무슨 말일까? 예전에는 소주 한 병 속에 담긴 에틸알코올의 비율이 30~35%였다. 지금에 비해서 알코올도수가 상당히 높았다. 그에 비해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 판매되고 있는 소주 한 병 속에 담긴 에틸알코올의 비율은 16~21% 사이다. 소주에 들어가는 에틸알코올은 주정이다. 회사들은 같은 양의 알코올에 기존보다 물을 좀 더 타서 소주를 만들다보니 같은 양의 알코올로 생산량을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다. 그만큼 회사의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익을 내야하는 기업입장에서는 당연하기에 지적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로 인해 파급되는 불필요한 타이틀이 문제다. ‘세계에서 증류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우리는 사실 알코올보다 물을 많이 마시는 나라다. 소비자들도 순한 술을 찾을 게 아니라 독한 술에 적당한 물을 넣고 희석해서 마시는 현명한 음용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원리는 똑같기 때문이다. 






 순한 소주와 독한 술에 물을 타서 마시는 습관이 차이가 있다면 순하게 생산된 제품에서 소주 느낌을 내기위해 넣는 조미료 정도다. 조미료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술이든 조미료든 과용해서 좋을 것은 없다. 좋은 상대와 주량에 맞는 현명한 음용은 이제 주당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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