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만 차리는 포도주는 리스트에서 삭제해야 한다.
인류가 마시던 술중에 가장 역사가 깊은 비어에 버금가는 술이 있다. 바로 와인이라 불리는 포도주다. 포도주의 역사는 꽤나 유구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팔렸다고 알려진 책이 바이블(Bible)인데 종교서적이면서도 역사적인 내용이 담긴 서적으로 불린다. 이곳에 포도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오는 것은 창세기로 노아가 살던 시기다. 기나긴 장마가 멈추고 방주가 멈춘 곳에 노아의 가족들은 정착을 한다. 그리고 그는 농사를 지었다. 바이블에서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포도를 과실로 먹기만 한 게 아니라 이를 가공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잠언, 디모데, 시, 전도서와 같은 구약과 마가, 요한 같은 신약까지 언급되는 과정에서 보면 고관대작만이 포도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포도를 가지고 술을 만들어마셨을 가능성이 있다. 오죽하면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을까?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예수는 이스라엘백성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러 세상에 왔다. 기독교에서 그가 했다고 주장하는 첫 기적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물로 만든 포도주다. 예수가 만든 포도주는 소수의 특정인들에게 먹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일주일동안 지속된 카나의 혼인잔치에 마리아와 함께 참석한 예수는 포도주를 담은 항아리의 바닥이 보이자 모여 있는 많은 이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기적을 행한다. 이 내용을 통해 잔치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시의 포도주가 삶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필수재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보편적인 물품이었던 포도주가 오늘날 물 건너 동양으로 오더니 귀빈대접을 받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모습이 아니라 한중일 모두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국의 경우 유럽의 토양과 포도품종까지 수입해서 포도주를 만들려고하는 과도한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먼 길 온 포도주를 귀하게 대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술의 격을 나누면서까지 올림을 받고 있는 것이 ‘과하지 않나?’라고 지적하고 싶다. 포도주는 만드는 주원료인 포도에는 여러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이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항산화물질로 알려진 폴리페놀 성분으로 분류되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과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는 성분이 많아 섭취했을 때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이미 검증된 것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포도로 만든 것이 모두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포도로 만든 포도주에도 앞서 언급한 성분이 있어 술임에도 건강기능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라고도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일종의 상술이고 말그대로 역설이다. 포도주에는 일반적으로 10~15%사이의 알코올이 포함된다.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결국 포도주에는 우리 몸에 영향을 주는 독과 약이 같이 있는 셈이다. 특정성분을 강화해서 만드는 건강기능식품 한 알에 담긴 영양만큼을 섭취하려면 포도주를 얼마나 마셔야할까?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수많은 회사와 포도주를 만드는 수많은 주조장이 상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정확한 비율은 특정할 수 없지만 포도주를 마셔서 레스베라트롤이나 안토시아닌이 몸에 주는 건강효과를 보기 전에 알코올해독을 하는 간에 무리가 더 빨리 와 우리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성분을 섭취하기 위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핑계(어불성설)다. 그리고 이를 아무렇지않게 표현하는 언론이나 교육프로금램은 책임감 없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하고있는 셈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포도를 먹는 모습이다. 위에 언급된 성분의 대부분은 껍질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껍질은 뱉어내고 속에든 과육만을 먹고 있다. 껍질을 씹었을 때 느껴지는 약간 시큼하고 떫은맛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래서 과육만 먹고 껍질은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껍질까지 넣어 만든 포도주는 몸에 좋다고 마시고 있다. 참으로 역설적인 장면이지 않은가? 이런 모습은 포도를 먹는 것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도주를 마실 때에도 사람들이 술을 대하는 모습에서 너무 격식 있어 보이려는 태도다. 포도주는 산지에서 만들어질 때에는 좋은 술이지만 보관하거나 유통하는 과정에서 변질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화학물질이 들어가야하는 술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흔히 화학주라고 불리는 소주못지 않은 화학물질로 덧입혀진 술이 포도주다. 병에 담기는 순간부터 제품으로 팔리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겪는 온도의 변화와 혹시 모를 미생물에 의해 내용물이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수아황산, 이산화황과 소르빈산 등의 합성화학물질과 함께 담긴다. 특히 아황산의 경우 고대 로마시대부터 포도주에 넣었던 물질로 알려져 있다. 말이 끄는 수레에 실려 생산지에서 정복지를 지나 먼 전장터까지 오랜 시간 이동하는 동안 변질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사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들은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소량이 담기지만 맛과 향에는 영향을 준다. 여기에서 포도주의 맛과 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디켄팅에 대한 언급을 나오게 된다. 그래서 포도주는 개봉 후 바로 마시기보다는 디켄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포도주는 병에서 코르크마개를 제거한 후에도 ‘디캔터(decanter)’라고 불리는 용기에 담아 ‘디캔팅(decanting)’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로는 ‘데캉타쥬(décantage)’라고 한다. 주변 여건이 어려울 경우 잔에 담긴 채 스월링(Swirling)을 거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원래의 디캔팅과 스월링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유통과정에서 포도주에 같이 담겨있던 화학물질이 사라지면 맛과 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 디켄팅은 포도주를 마실 때 술의 맛과 향을 위해 거쳐야하는 필수적인 과정이 되었다. 포도주가 이런 까다로운 술이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멀리하기보다 맛과 향을 느끼기 위해 공부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낭비적인 행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탐구욕을 채우기에 더없이 좋은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나야 제대로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포도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술의 산화(酸化)와 산패(酸敗)를 잘못 인식하는 경우 등 그릇된 지식이 전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연이 만든 포도주의 진실은 하나다. 깊지 못한 학습에서 얻는 오류를 진실인양 주장하는 ‘더닝크루거’효과는 사람이 지식을 사용함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만 최근에 인문학의 열풍을 타고 포도주와 관련된 인문학적인 요소를 공부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겉으로 드러나서 느낄 수 있는 맛과 향도 중요하지만 좀 더 깊은 공부를 통해 얻는 깨달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상석에 모셔놓고 마시는 사람들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나 수입업자와 가끔 술자리를 가지면 오히려 정반대의 내용이 오간다. 포도주는 김치전이나 파전에도 잘 어울리는데 왜 굳이 치즈와 견과, 훈제 연어, 초콜릿 같은 것들만 찾는지 푸념을 놓기도 한다. 술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사람과 함께 했을 때다. 만나는 사람과 대화의 촉매제를 했을 때 말이다. 술이 사람들의 삶에 등장한 것은 사람을 위해서이지 술을 위해서가 아니다. 본말(本末)과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는 이런 현실은 이글을 읽을 정도의 현명함을 갖춘 독자여러분에게는 어울리지 않기에 주종과 상관없이 좋은 사람과 어울리는 술자리를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