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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유지하려는 USA가 몸부림쳤던 역사

한계에 다다른 기축통화의 시간

by 필립일세

기축통화 유지를 위한 USA의 몸부림






열강의 시대에 유럽은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식민지의 재화를 약탈로 빨아들이면서 이를 통해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오로지 유럽의 몫으로만 저장되었다.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으로 부를 이뤄가던 유럽의 열강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뒤늦게 통일된 나라를 형성한 독일제국(이하 도이치)이었다. 이웃의 부유함을 부러워하던 도이치는 이웃의 것을 탐내며 결국 침략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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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 유럽에서 벌어진 두 번의 세계 대전은 국제질서를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USA라는 새로운 강대국을 만들어냈다. 전쟁터였던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있던 USA는 초토화된 유럽과 달리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본토의 피해가 없었다. 덕분에 제조업은 타격을 입지 않고 안전할 수 있었다. 전 세계를 호령하던 제조강국 USA에서 만들어진 물자가 유럽으로 전해졌고 그 대금으로 유럽이 가진 금의 소유권은 대서양을 건너 USA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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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는 전쟁을 통해 전 세계를 장악할 부(富)를 쌓았다. 전쟁 이전에 금본위제를 추구하던 당시 세계 경제에서 기축통화로 군림한 잉글랜드의 파운드가 전쟁을 통해 무너지고 USA의 달러가 기축통화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랬던 USA가 오늘날에 불리는 별칭은 천조국이다. 우리나라 환율로 1,000조 원 이상을 국방예산으로 사용할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USA가 전 세계의 경찰국가로 인정받는 바탕에는 결국 기축통화의 지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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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본토는 한때 에스파냐,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 여러 열강이 선을 그어 차지한 식민지였던 곳으로 독립전쟁에서 승리(1783년)한 이후 땅을 사들이거나 병합하면서 영토를 꾸준히 확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USA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주변에 경쟁할 국가나 세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불어 USA는 안보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갖게 되었고 이런 지리적인 장점은 상호 견제와 경쟁으로 치열한 다툼이 잦았던 유럽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USA는 이민정책을 활용해 혼란스러운 유럽을 떠나온 이들을 정착시키고 노동력을 이용해 제조업 기반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품경쟁력도 유럽을 능가했다. USA의 경제성장이 계속될수록 유럽과의 대등함을 넘어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결과까지 낳았다. 그러던 와중에 발생한 두 번의 전쟁으로 세계 패권은 USA가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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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USA의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를 잡는데 바탕이 되었던 금본위제는 ‘금태환을 불태환(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주기로 한 약속을 안 지키겠다는 것)’하겠다는 USA 정부의 선언(닉슨쇼크, 1971년)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잠시 흔들린다. 거래시장의 근본을 뒤흔든 발표에 국제외환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혼란에 빠졌다. 거래 수단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모든 경제지표가 흔들렸다. 동시에 달러에 대한 기축통화의 지위에 대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때 논란을 일축하고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힘을 실어준 게 바로 석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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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가 사우디(1973.11.8)로 갔다.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간의 4차 중동전쟁(라마단 전쟁, 욤키푸르 전쟁, 1973. 10. 6 ~ 25)이 휴전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키신저는 달러의 명운을 건 은밀한 내용을 사우디와 논의했다. 사우디는 당시에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 간의 정책을 조율하는 국제기구인 OPEC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두 주체 간에 논의된 사안은 사우디와 왕실의 안전을 USA가 보장하기로 하고 OPEC는 석유거래에서 거래대금을 달러로만 받기로 한다. 사우디는 소련과 이스라엘 등 주변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고 USA는 달러의 지위를 확보하여 둘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래였다. 결국 1974년 6월에 두 나라가 군사·경제적으로 협력하는 ‘페트로 달러(Petrodollar)협정’이 체결된다.

석유를 의미하는 페트로(Petro)와 USA의 기축통화인 달러(Dollar)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힘을 합치면서 가능했다. 1970년대 당시 세계에서 작동하는 대부분의 동력 기계에 동력원이었던 석유가 가진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런 환경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했으나 아직도 전세계에서 동력 기계를 움직이는 데에 사용되는 주된 에너지원은 석유다. 어쨌든 이를 통해 USA의 통화인 달러는 석유거래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가 되었고 꾸준히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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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세계는 소리 없이 유지되던 양극체제인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다극화되었다. 정치·외교적인 다극체제와 더불어 에너지를 포함한 정치·외교·안보의 환경과 에너지산업의 변화는 사우디와 USA가 필요에 의해 유지되었던 ‘페트로·달러 체제’마저 더 이상 유지되어야 할 명분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국 2024년 ‘페트로달러 협약’은 더 이상의 효력을 연장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달러는 그사이 강력한 지위를 확고히 했다. 금과 석유라는 교환 필수재로서 역할이 사라지고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신용화폐(Fiat Money)’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여전히 세계의 무역에서 달러는 기축통화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USA가 재화 거래가 이루어지는 제조업 바탕의 산업기반이 아닌 금융이라는 서비스업을 발전시키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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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USA는 제조강국이라는 지위를 유럽과 아시아에 양보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금융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성장시킨다. USA는 금융을 통해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려고 다양한 환경을 적용시킨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국채를 통한 국제수지를 맞추면서 유지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USA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이제 금과 석유가 아니라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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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게 바로 ‘암호화폐(crypto)’라고도 불리는 ‘가상자산(virtual asset)’이다. ‘가상자산’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금이나 석유처럼 눈에 보이는 실물 자산은 아니다. 이런 가상자산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 때문이다. 가상자산은 디지털이라는 환경에서 숫자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디지털을 통해 움직이는 이 숫자가 최근 세상에서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USA는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지금의 달러가 꾸준히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래서 달러와 가상자산이라는 걸 접목하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시당했던 가상자산이 지금은 적자와 국채의 늪에 빠져버린 USA를 살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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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페깅(Pegging, 고정)’이라는 구조를 가진 ‘스테이블(stable) 코인’이 주목받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개념상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의 존재를 그나마 실물 자산과 연계해서 일반인들이 코인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잡아가도록 만들어주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경우마다 조금씩 다르나 일반적으로 그 가치를 달러에 페깅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예전에 아날로그 환경에서 달러의 가치를 올려주고 지위가 유지되는 바탕에 ‘태환’되는 금이 있었다면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달러의 지위가 유지되는데 기여를 하는 것은 ‘페깅’이라는 구조를 가지는 가상자산인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회사는 1코인을 1달러에 페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국 코인을 발행하는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보유하는 달러의 양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USA는 스테이블 코인 회사가 보유한 달러로 국채를 사도록 권하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USA의 국채를 보유할 체력을 점점 잃어가는 일본과 중국과 달리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회사는 USA 정부가 찍어내는 달러 국채를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이 꽤 높다. 이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기여할 새로운 파트너로 코인이 자리하게 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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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이 금과 석유에 이어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는데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전에 무역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경제가 유지되었고 기축통화가 변화되어 왔다면 오늘날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바탕이 되는 자산이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금융이라는 환경을 고도화한 USA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힘의 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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