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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Feb 09. 2020

개념 없이 쓰는 단어 '수제맥주'

그래도 '크래프트 비어'인데 아이디어를 내자

개념도 없이 쓰는 단어 ‘수제맥주’     

 우리나라에 언젠가부터 ‘수제’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면 뭔가 장인정신이 스며있는 것 마냥 공중파방송 프로그램에서 포장을 하다 보니 잘못된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버렸다. 수제도넛, 수제치킨, 수제초콜릿, 수제케이크, 수제가방, 수제코트 등등등 말이다. 심지어 비어까지 수제라고 한다. 직접 손으로 저어가며 만드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기계로 만드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시중에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많은 비어들은 다 공장에서 기계식으로 비어다. 심지어 스스로를 ‘수제맥주’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생산하고 있는 회사들도 공장비어다. 그곳에서는 맛있는 비어를 만들기 위해 여러 기계식 장비를 넘어 각종 전자장비들을 이용해서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고 있다. 원래 아메리카에서 사용하는 ‘크래프트 비어 (Craft Beer)’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제맥주’라고 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형 비어회사들이 만드는 비어와 달리 소규모를 의미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 Brewery)’에서 만드는 비어들은 나름의 철학과 창의, 혁신을 담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그저 탄산이 있는 비어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크래프트의 정신을 마시기 위해 소규모 주조장의 맥주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표현을 고치고 대용할만한 참신한 단어를 찾아야함에도 기존 언론에서 잘못 번역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어긋난 표현으로 홍보되는 것을 배척해야 함에도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은 ‘수제맥주’라는 단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이 모여서 만든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는 2017년 즈음에 ‘한국수제맥주협회’로 이름을 바꿔 버린다. 언론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수제맥주’라는 표현을 바로 잡고 제대로 된 명칭을 홍보해야할 협회에서 오히려 홍보를 위해 단체의 이름을 잘못된 표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것이 과연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를 만든다는 양조인들이 내세우는 창조이고 창의이며 장인정신인가? 그저 비어를 만들어 파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이름을 사용하는 주체의 철학과 정신이 담겨야 한다. 특히 브랜드나 단체의 명칭은 그러한 철학과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조심해야하는 것인데 그러한 창의성 없이 만드는 비어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잘못된 표현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는 정말 대변될 수도 있다.  








 수제와 공장의 차이는 딱 하나다. 바로 버튼이다. 버튼을 눌러서 모든 공정을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만드느냐 아니면 진짜 직접 맥아를 저어가며 물을 붓고 워트를 받아 홉핑을 하고 칠링을 해서 만드느냐의 차이다. 이 둘의 차이는 차이임에도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은 ‘수제’라는 허위광고를 하면서 마치 자기들의 맥주가 수공예로 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 소비자들은 이것에 속지 말아야한다. 그렇다고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에게 기계와 전자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맛있는 비어를 만들되 버튼을 눌러 만드는 비어가 아닌 척하지 하지 말고 정정당당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크래프트 비어인데 체면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0년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비어에 대한 종가세는 종량세로 바뀌어 있다. 대형 비어회사들을 넘고 수입비어를 넘어 우리나라의 비어시장을 선도하려면 신선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불어넣어 소비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 변화되지 않은 모습이 계속 유지된다면 소비자들은 쏟아지는 제품들에 지칠 수밖에 없다. 급격히 성장한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의 수에 비해 그들이 내놓는 비어를 찾는 매니아층은 두텁지 못하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소비층이다. 그렇게 되면 소규모 비어주조장들에게 찾아온 좋은 기회를 ‘죽 쑤어서 개에게 준다.’는 표현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준비를 잘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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