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한다

오늘은 오늘만의 새로운 태양이 뜬다.

by 마음정원사 안나

우리는 보통 과거의 힘에 자주 굴복한다.

중학생 때는 초등학교 때 공부 잘했던 아이들에 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당연히 중학교 때 잘했던 아이들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외고, 과고에서 온 아이들이 당연히 더 뛰어나겠지 생각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진리처럼 떠받들 여지는 수저 이론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부자인 사람이 미래에도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른 흙수저'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이론이다.


근데 13년의 학창 시절과 11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바에 따르면, 과거가 우리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적다. 희한하게 인생의 중요한 마일스톤 앞에서 모든 것은 '0'에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서, 그전에 무엇을 어떻게 했었는지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늘의 나의 행동뿐이었다.

It's You! Stupid!


입사와 동시에 우리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

스카이를 재친 회사의 에이스

회사에 입사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동기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가톨릭 신자로 보였다. 부사장님과의 면담에 함께 들어가는 자리에서 조용히 성호를 긋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매일 아침에 가장 먼저 와서 회의실에서 신문을 읽고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분. 작은 키에 선한 웃음이 만나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실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기로 소문이 났고 임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A+ 인재로 인정받았다. 이분의 학벌은 지방대였다. 명문대 대학원을 2년간 다니기는 했지만 스카이 출신이 발에 치이던 그 당시 기획실 입사 동기들을 떠올려 보았을 때, 확실히 유리한 입장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면접을 통과시킨 이후로는 입사 당시 그 사람을 평가하던 기준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선별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었지 입사 이후에 평가를 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입사 이후에는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을 명료하게 하는지, 과제를 주어진 시간 안에 해결하는지, 문제 상황에서 부드럽게 풀어나갈 유연함이 있는지'와 같은 현재 필요한 해결 능력에 점수를 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 시점부터 누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다시 제로 베이스로 돌아가서 하나씩 돌을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촉망받는 동기는 회사에서 몇 명 안 보내주는 주재원으로 오래 근무를 하다가 경쟁사로 이직해서 지금은 유럽 전역을 누비며 화려하게 경력을 쌓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명문대 임원 비율

예전에 우리나라 삼성전자 임원들의 학벌 통계를 보고 놀란적이 있다. 학벌주의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삼성전자의 임원 530명 중 지방대 출신이 102명으로 20%에 가까웠고, 최종 학력이 상고와 공고인 경우도 5명이나 되었다. (기사 참조) 물론 이것은 2004년 기사라 지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2019년 통계에도 1044명의 임원중 492명(46.9%) 은 국내 대학 비 SKY 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기사 참조) 이 통계는 회사에 입사하고 난 이후에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로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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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경력단절녀

경력이 화려한 자이건 실컷 놀던 자이건 '0'으로 돌아간다

아는 언니가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고시를 하다가 젊은 날을 모두 보냈다. 취업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가 되어 버렸고 이름 없는 작은 회사에 취업해서 소소하게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6년째 집에서 가정 주부로 살고 있다.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시켜놨더니 헛일이라며, 남들은 진작에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화려하게 경력을 쌓았는데 너는 이게 뭐냐고 한다. 근데 주변에 둘러보면 좋은 회사를 다니던 친구들도 아이를 둘 낳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들이 많았다. 화려한 경력을 쌓았건, 그렇지 못했건, 아이의 엄마가 되어 회사를 그만둔 순간 모두 제로로 수렴하고 '아기엄마'로 같은 선상에 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회사에 입사해서 10년간 돈을 벌다가 그만둔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이 모아 놓은 돈까지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 기간 동안 얻고 배운 것들이 있을 테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정 주부가 되는 순간, 그때부터는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물건으로 만들어서 팔아 돈을 벌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을 내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영상으로 올려서 돈을 버는 보람 튜브 같은 사람도 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순간부터 본인이 무엇을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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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내가 목격한 과거를 떨쳐낸 사례들

잘 살펴보면 주변에 인생의 각도를 180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90도 바꿔 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 밖에도,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서 10등 안에 겨우 들던 내 짝은 착실했지만, 뛰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과고에 가겠다고 하니 모두가 비웃었다. 심지어 선생님 조차 괜한 고생 하지 말라며 만류했다고 했는데 열심히 공부하더니 의대에 갔다. 대학교에서는 24시간 과방에 상주해서 인생 다 산 것처럼 폐인처럼 지내던 선배가 있었는데, 맨날 치지도 못하던 기타를 메고 가끔 담배까지 피워서 후배들을 괴롭게 했었다. 한량 중에 한량처럼 보이던 선배가 졸업하고 백수가 되더니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고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행시에 패스했다고 하더라.


회사에서는 사고뭉치인 사람이 있었다. 자료 보고서에는 숫자가 항상 틀리고, 하루 종일 질책하는 임원들을 피해 다니는 것이 일이었던 사람. 근데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더니 자신이 흥미가 있는 부분을 발견해서 일을 척척 해 내고 있다고 한다. 함께 이직한 동료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다른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밖에 지방대학에 입학했지만, 입학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편입에 성공한 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친척오빠, 중학교 때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여신이 되어서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든 친구 등등,, 38년 산 인생에서 직접 목격한 것만 해도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진정으로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매일 새로운 태양이 뜬다"는 말은 알고 보면 빈말이 아니다.


물론 과거에 내가 행한 것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의 행위가 레이저처럼 쭉 뻗어서 현재를 뚫고 미래에 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많이 범하는 사고의 오류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레이저가 '0'으로 수렴하거나, 90도로 꺾이는 상황들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젠 뭐가 되었건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제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나의 작은 행동이 내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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